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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방 ‘미생’ 혹독한 현실, 가슴 짠한 삶을 담았다(종합)

2014-10-17 22:04:56

[김예나 기자]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작’이었다.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무엇도 이룬 게 없단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미생’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래서 무엇이든 끝이란 걸 봐야만 한다.

10월17일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미생’(극본 정윤정, 연출 김원석) 1회에서는 치열하고 각박한 ‘갑’들의 세상에 내던져진 ‘을’의 대표주자 임시완이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은 요르단에서 펼치는 장그래(임시완)과 서진상(송재룡)의 추격전으로 강렬하게 시작했다. 추격 도중 교통사고까지 당했지만 서진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쫓아가는 장그래의 비장한 표정, 그 위에 덧입혀진 스피디한 음악은 극의 전개에 긴박감을 더했다.

여기에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심장한 장그래의 내레이션이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다시 등장한 장그래는 목욕탕에서 일급을 받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장그래는 대리운전 손님에게 “젊은 놈이 열심히 뛰면서 돈을 벌어야지. 편하게 운전하면서 돈을 쉽게 먹느냐”는 독설까지 들으면서도 한 마디 하지 못하는 고달픈 청춘이었다.

이것이 곧 현실이라 받아들이고 사는 장그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대기업 종합상사에 입사하게 된 것. 고졸 검정고시 출신 군대 미필자인 그에게는 세상 모든 것들이 낯설기만 한 그에게 어머니는 “너가 학교 다닐 때 얼마나 공부를 잘 했느냐, 넌 하나를 알려주면 백을 아는 애였다”라고 웃어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깜깜 그 자체였다. 자신의 십대를 고스란히 바둑에 쏟아 부을 동안 세상 사람들의 스펙은 날로 화려해졌고, 장그래는 복사 하나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어린 아이 같은 존재였다.

어리숙하고 멍한 모습에 회사 동료들은 서서히 무시하기 시작했고, 김동식(김대명) 대리는 장그래에게 “나이 26살 먹을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기에 할 줄 아는 게 하나 없는 보기 드문 청년이냐”며 비꼬아 댔다. 이에 장그래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그러게요. 26살이 될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요. 난”이라고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이후 장그래는 조금씩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도는 파악하게 된 것.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였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 밀려드는 복사 업무 등이 그를 혼란스럽게 하던 와중에 안영이(강소라)라는 대단한 존재가 장그래의 눈에 띄었다.

안영이로 말 할 것 같으면 완벽한 외모, 당당한 태도 그리고 정확한 업무 처리 능력에 외국어까지 능통한 에이스 중의 에이스였다. 장그래는 “체면도 위신도 자존심도 멋도 생각할 때가 아니다”라며 밑도 끝도 없이 안영이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이런 장그래에게 안영이는 “혹시 마마보이냐.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느냐”며 싸늘한 독설을 날렸고, 장그래는 “나 그렇게까지 바보 아니다”라고 부정했지만 처한 현실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게 슬플 따름이었다.

어딜 가나 장그래에 대한 수군거림의 연속이었다. 동기 인턴들은 ”하버드라도 나왔나보다, 아니면 빽이 좋은건가“라며 비아냥거려댔고 ”걔 여기 못 있는다. 이 빌딩 어디에라도 걔가 있을 자리가 있겠느냐“며 험담을 해댔지만 장그래는 그저 모른 척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할 뿐이었다.

어린 시절의 장그래는 어땠던가, 그는 회상했다. 과거 장그래에게도 무언가에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을 터. 과거 그가 미친 듯이 프로 바둑기사 입단을 준비하던 그 시절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에게 마지막 바둑기사로서 내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을 때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돼 사망했고 이후 모든 게 ‘끝’ 났다.

장그래는 “나는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너무 슬프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으로 나왔고,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라는 독한 말로 더욱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렇게 치열한 세상에 던져진 이상 그는 살아남아야만 했다. 또 다시 여기서 ‘끝’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 그런 그에게 오상식(이성민) 과장이 나타났다. 자신의 뜻대로 일처리가 되지 않아 얼굴이 시뻘게진 그는 세상에 찌들대로 찌든 전형적인 워커홀릭이었다.

오상식 과장은 어리바리한 장그래가 맘에 들지 않았다. 첫 대면에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탐색에 바빴고, 오상식 과장은 “너 나 홀려봐라. 뭐 팔 수 있느냐”라고 제안했다. 이에 장그래는 “지금까지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너 같은 놈들의 노력은 변별력이 없다”는 싸늘함이었다.

설상가상 동기들의 따돌림으로 장그래는 파견된 공장 냉동차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야 말았다. 뒤늦게 다른 직원들의 철수 소식을 접한 장그래는 망연자실했고, 동기들은 “미안하다. 신고식이었다”는 장난기 가득한 말로 장그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냉혹한 현실세계에 장그래는 또 한 번 스스로에게 외쳤다. “난 열심히 안 해서 세상에 나왔고, 버려진 것이다”라는 그 말은 시청자들의 마음 한 편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장그래가 비련하거나 불쌍하지는 않았다. 그저 ‘미생’일 뿐이니까. 아직 채워지지 않은 그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더욱 기대해 본다. 언젠가는 끝이 날 것 아닌가. 그 끝이 무엇이든 간에 장그래에게 있어서 하나의 완성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한편 ‘갑’들의 전쟁터에 던져진 ‘을’의 고군분투,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우리 회사원들의 눈물 겨운 우정 이야기를 다룬 ‘미생’은 매주 금, 토요일 오후 8시40분 방송된다. (사진출처: tvN ‘미생’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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