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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돌연변이’ 이천희, 또 한 번 뛰어넘은 한계

2015-10-21 21:04:25

[bnt뉴스 이린 인턴기자 / 사진 백수연 기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반달눈에 순진하고 어리숙한 미소를 띈 배우 이천희에게 이제 장르와 배역의 한계는 중요치 않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굳혀진 ‘허당 천데렐라’도, 전작 영화 ‘개를 훔치는 방법’에서의 철없는 욕심꾸러기도 ‘돌연변이’에는 없었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한경닷컴 bnt뉴스는 영화 ‘돌연변이’(감독 권오광) 속 상원이 진짜 기자가 된 것처럼 배우로서 한 뼘 더 성장한 이천희를 만날 수 있었다.

22일(오늘) 개봉한 ‘돌연변이’는 제약회사의 생동성 실험에 참가한 청년 박구(이광수)가 생선인간으로 변한 후 일약 스타가 됐다가 세상에서 퇴출될 위기를 겪는 이야기.

앞서 ‘돌연변이’는 제40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뱅가드 섹션을 비롯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 부문에 공식 초청돼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불러 모았다. 그렇게 현재 우리의 모습을 처절하지만 감동적으로 그려낸 ‘돌연변이’에게 많은 호평이 쏟아졌다.


그리고 N포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청년 실업, 줏대 없는 언론을 향한 일침, 대중들의 냄비근성, 만연한 개인주의까지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다룬 ‘돌연변이’ 외에도 이천희는 유독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과 가까이에 있었다. 하지만 이천희는 사회적 문제에 먼저 접근하기 보다는 그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중점을 뒀단다.

“‘돌연변이’는 사회문제라기보다 휴머니즘 영화인 것 같습니다. ‘남영동 1985’ ‘개를 훔치는 방법’도 처음 대본을 봤을 때 ‘대중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딸아이에게 이런 영화를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남영동 1985’는 이 이야기를 다루는 것보다 선배님들, 감독님과 작업을 해 보고 싶다는 게 컸었어요. 그리고 찍으면서 이 문제를 너무 까먹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죠. 사람이 사람을 고민하는 것에 대한 각성이 들더라고요.”

극중 이천희는 생선인간이 된 박구를 취재해 정직원이 되려하는 인턴기자 상원 역을 맡아 눈앞의 실리와 기자로서의 정의,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갈등한다.

“솔직히 전 취업 문제 같은 현장들을 잘 몰랐어요. 하지만 점점 작업을 하면서 ‘이런 문제가 있겠구나’, ‘젊었을 때 잘 흘러와서 내 나름대로 성공했어. 행복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저 역시 이 상황이 닥쳤다면 똑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요? 역시 하면서 배우고 느끼고 관심을 더 갖는 것 같아요.”

“기자라는 직업이 중요한 것보다 상원은 가장 하고 싶었던 것, 정의로운 사람, 사회 약자들의 편에서 돕고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방법이 기자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 역할로 나중에 상원이 뭘 하고 싶었는지 깨우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이천희의 이미지는 유독 바르고 착하고 때 묻지 않았다. 특히 배우로서의 이천희는 흰 도화지에 색색의 물감을 칠하듯 맑게 펼쳐진다. ‘돌연변이’의 상원 역시 감정적인 캐릭터임에도 이천희만이 구현할 수 있는 안정감으로 관객들의 공감과 함께 상원의 감정선을 이끌어 갔다.

“상원은 좋은 사람이에요. 자기만의 좋은 신념이 있다는 게 좋지만 그걸 모르고 살죠. 자기에 대해 잘 모르는 인물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움도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구로 인해 자신을 찾으면서 할 수 있는 것들도 찾아가는 아이예요. 그래서 사실 구를 이용하는 느낌이 안 들었어요. ‘맞냐, 안 맞냐’의 판단을 하는 게 아니지 않나요? 모든 건 그렇게 시작되는 것 같아요. 온전히 구의 편에 있는 애가 아니었지만 구를 인간으로서 대해주며 그와 가장 소통할 수 있었던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이와 더불어 이천희는 생선인간 박구로 분장해 실제 모습이 단 한 컷도 나오지 않은 이광수를 극찬했다.

“안타까웠어요. 왜했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무도 그 얘기를 물어보지 못했어요. 차마 못 물어볼 정도로 너무 힘들어 보였습니다. 미안하고, 숙연해지는 분위기였어요. 생선 탈을 쓸 때 광수가 힘들지 않게 모두들 나섰죠. 만약 제가 한다면 ‘진짜 못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영화가 나오고 이광수 씨가 고생한 것들을 영상으로 보니 정말 좋은 판단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광수 씨가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박구를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이천희는 ‘돌연변이’로 첫 장편 영화에 도전한 권오광 감독과의 작업도 특별하다고 밝혔다. 그는 “감독님은 고구마같은 분”이라며 당시 권감독과의 호흡을 떠올렸다.

“투박하지만 섬세한 분이에요. 맨 처음 대본만 봤을 때 ‘이런 소재를 갖고 이렇게 글을 쓰신 분은 누굴까’싶어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세련된 느낌, 날이 서있는 느낌, 자기 생각이 또렷한 사람일 것 같았는데 고구마 같으시더라고요.(웃음) 유쾌하고 기본적으로 재밌는 사람이에요. 굉장히 좋은 감독님이라고 생각했어요. 복잡한 감정의 정도를 잘 캐치해주시고 잡아 주셨습니다.”


그의 아내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천희는 지난 2011년 9살 연하의 배우 전혜진과 화촉을 올렸다. 이천희에게 그에게는 늘 버팀목이었다. 그리고 전혜진은 ‘돌연변이’에서 내레이션 출연으로 든든한 내조에 나섰다.

“아내가 ‘개를 훔치는 방법’ 때부터 제가 선택하는 작품들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흔들리지 않고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응원해줬어요. 애매모호한 감정선들이 표정 안에 묻어 나야하는 연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건데 좋았다고 했습니다. 왜 촬영하면서 행복하면서도 고민을 많이 했는지 알 것 같다며 칭찬해줬어요. 늘 고마운 존재죠.”

사회적 문제를 따뜻한 감성과 뭉클한 깨달음으로 담아낸 ‘돌연변이’. 그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배우하길 잘 한 것 같다”며 미소를 지어보이는 이천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유독 이 작품은 ‘많은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도와주고 있구나, 이 사람들 없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상원이 이야기로 끌어갈 수 없었겠구나’ 싶었어요. 앞으로도 좋은 작업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느껴졌습니다.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연 즐거운 영화였어요. 토론토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는데 기분좋고 행복하더라고요. ‘배우하기 잘했다’라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느껴졌습니다. ‘저를 믿어줘서 고맙다’고 감독님께 얘기했어요. 또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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