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뷰] ‘해빙’ 문신남 정도원 #단역의_가치 #7년의_숙성

2017-03-11 00:44:34

[김영재 기자 / 사진 백수연 기자] “이제는 단역이 두렵지 않다”

영화 ‘해빙’의 제목은 꽃피는 봄 얼음이 녹으며 시체들이 떠오르는 작품의 시놉시스를 함축하고 있다. 더불어 숨겨진 진실이 해금(解禁)된다는 중의성을 가지고 있다. 이미 많은 뜻을 담고 있는 타이틀이지만 기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얼음이든 진실이든 무엇이든 녹는 과정에서 한 신인 배우는 그의 연기 열정을 풀어낼 기회를 얻었다고.

여기 ‘해빙’에서 수면 내시경 도중 환자의 살인 고백을 듣고 고민을 거듭하던 변승훈(조진웅)의 손에 처음으로 선홍색 피를 묻혔던 등장인물이 있다. 열정을 풀어낼 작은 기회를 얻은 배우 정도원이 공연한 문신남이다. 관객에게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물일 수 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영화에 얼굴을 비추며 극의 진행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보탬을 더했다.

배우 정도원. 경상북도 포항 출신이며, 1980년생으로 올해 나이 만 36세다. 그는 지난 2010년 영화 ‘아저씨’에서 박 형사 역으로 연기를 시작했던 7년 차 배우이기에, 신인 배우라는 호칭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약 스무 편이 넘는 필모그래피 작품 중 대다수는 단역으로, 그렇기에 그는 아직 만개 전의 꽃이며 신인 배우다.

최근 진행된 bnt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도원은 ‘해빙’의 문신남 역할은 우연이라는 두 글자에서 비롯된 기회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정도원의 겸손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회는 분명 준비된 자가 아니면 찾아오지 않는다. 전작의 통편집이라는 불행은 ‘해빙’에서는 인연이라는 행운이 되어 그에게 닿았고 필모그래피 속 당당한 한 줄이 되었다.

“차기작을 위해 ‘해빙’ 제작사로 프로필을 내러 갔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늦어서 이미 접수가 마감됐더라. 동료와 함께 밑에 내려가서 음료수 한 모금 마시는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해빙’과 나의 인연은 끝나는 듯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샘솟으며 무슨 용기인지 제작사를 재방문했다.”

“인연이라는 것이 참 신기했다. ‘해빙’의 제작 실장님이 영화 ‘손님’의 제작 실장님이더라. ‘손님’은 내게 있어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극의 흐름상 통편집을 맛봤고, 김광태 감독님도 이 점을 아쉬워하셨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결국 그 영화 덕에 내 프로필이 제작사에게 전달됐고, 이후 이수연 감독님의 오디션을 거쳐 문신남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흔히 배우들은 인터뷰에서 조연과 주연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연과 주연 사이에는 개인의 견해에 따라 차이나는 가치의 무게 대신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존재한다. 바로 출연 시간이다. 그리고 조연보다 비중이 낮은 단역에게는 시간을 논하는 것이 사치일 정도로 아주 짧은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정도원은 그럼에도 문신남에게 개성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워낙 등장 시간이 짧았기에 이는 관객에게 주는 만족보다 개인의 연기 충족을 위한 인물 연구였겠지만,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그의 겸손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지금의 자리에서 충실하면 더 나은 배역을 맡을 것이라는 그의 행간을 읽을 수 있었다.

“이수연 감독님이 문신남 캐스팅 배경으로 말씀하셨던 것 중에 의외성이 있었다. 생긴 건 강해 보이지만 말은 편안하게 하는 부분이 주는 나의 의외성. 여기에 착안해서 문신남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나쁜 일을 떠나서 그 일이 일상인 사람. 설명하기 힘들지만 인물에 편안함을 주고 싶었다. 원래 전형성에 부여된 의외성을 좋아하는 편이다.”


어쩌면 의외성은 정도원의 인생을 SNS에 올린다면 해시태그로 적어 넣기 좋은 단어다. ‘#의외성’처럼 말이다. 그의 첫 작품은 영화 ‘아저씨’ 박 형사 역으로, 개봉 당시 정도원의 나이는 이미 서른을 넘어선 상태. 혹자는 서른이란 매진하는 일의 성과를 차차 인정받는 나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포스터 하나에 감명 받은 후 인생의 의외성에 도전했다.

“노량진에서 재수 생활을 했는데 참 힘들었다.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자정(0시)까지 꼬박 공부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포스터를 길에서 봤는데, 갑자기 울컥하더라. 포스터 속 송강호 씨와 이병헌 씨의 눈빛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재수 끝에 경희대 공대에 들어갔지만 나를 매진시켰던 것은 연극 동아리였다. 결국 제대 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편입했다. 연기를 배워도 모자란데 편입을 위한 영어 공부만 하고 있으니까 혼란스러운 맘이었지만, 노력 끝에 정원 1명의 주인공이 됐다.”

“사실 ‘아저씨’ 캐스팅은 모든 것을 포기했기에 가능한 기회였다. 연극영화과 졸업 후 오디션을 계속 봤지만 모두 떨어졌고, 어느새 내 나이 서른이었다. 그래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표준말 대신 사투리 연기를 했는데 거짓말처럼 그게 통하더라. 그때는 내가 캐스팅의 정답을 깨달은 줄 알고 기뻤지만, 돌이켜보면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정도원은 데뷔작 ‘아저씨’ 캐스팅을 하늘의 뜻인 운수였다고 말했다. 이는 그의 겸손함에서 비롯된 자조적 표현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정답일 수도 있다. ‘아저씨’에 이은 영화 ‘체포왕’ 때만 하더라도 그의 비중은 배우 이성민 옆에서 동등하게 얼굴을 비추는 조연이었다. 그러나 영화 ‘밀정’ 전까지 그는 약 열 편의 영화에서 단역을 맡았다.

“출발이 쉬웠다. ‘아저씨’와 ‘체포왕’을 거치면서 자신감이 넘쳤다. ‘그냥 하면 되는데 왜 다들 겁부터 먹지?’라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 뒤로 단역만 계속 하니까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힘들어지더라. 주변에서는 단역에 방점을 찍었지만, 내 시선은 언제나 조연이던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내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영화 ‘마담 뺑덕’에서는 대사도 하나 없이 병풍 역할 외에는 할 게 없는 이미지 단역을 맡았다. 화면에 거슬리면 안 되고, 단적인 예로 주머니에 손 넣고 있으면 손 빼라는 얘기만 듣는 그런 역할을 맡으니까 어떤 생각 하나가 스치더라. 더 내려갈 곳도 없으니 여기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영화 ‘밀정’을 만났다.”


‘아저씨’가 연기 시작점이었다면 ‘밀정’은 정도원의 터닝 포인트였다. 누적 관객수 약 750만 명을 기록하며 역대 순위 31위를 기록한 이 흥행 대작에서 그는 영화를 관람했던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며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한 장면의 신스틸러였다.

배우 엄태구가 극중에서 우마에를 연기하는 정도원의 뺨을 장갑으로 때리는 신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으로, 여기서 엄태구의 연기가 불이었다면 정도원의 연기는 한겨울의 얼음처럼 차가워서 관객들의 심장 박동을 강렬히 뛰게 만들었다. 누구 하나 물러설 것 없이 대치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왜 단역에 머물렀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

‘밀정’으로 주목 받았던 당시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에게 당시의 소감을 묻자 “무덤덤했다”는 다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저씨’로 시작된 이른 성공은 분명 독(毒)이었지만, 약 6년의 시간 동안 정도원은 그 독약에 내성을 기른 듯했다. 오히려 그는 ‘밀정’으로 받았던 관심은 연기의 목적과 단역의 중요성을 깨달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무덤덤했다. 대신 ‘밀정’ 이후 쏟아졌던 지인들의 연락과 관심 덕분에 연기란 나를 향하는 일이 아닌 관객들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밀정’ 덕분에 회사도 들어갔다. 하지만 쾌재를 부르진 않았다. ‘이런 길을 가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지금 이 순간이 나의 미래를 보장하는 지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뺨을 맞을 때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은 즉흥 연기였다. 맞으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고민했고, 그것이 빛을 발했다. 솔직히 작은 역할을 소중히 다루지 않았던 적도 있다. 그러나 ‘밀정’을 통해서 나의 연기 고민이 단역에도 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이제는 단역이 두렵지 않다. 내가 몰라봤을 뿐 사실 단역은 분명한 역할이다.”

단역도 분명 배우의 집중도에 따라 가치 있는 역할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정도원을 보니 대중이 주목했던 ‘아저씨’와 ‘밀정’ 대신 그 밖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뇌리 속에 남는 역할이 무엇이 있는지 묻자 그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듯 잠시 시선을 한 곳에 집중했고, 이내 영화 ‘더 킹’과 ‘장기왕: 가락시장 레볼루션’을 꼽았다.

“배우는 인물의 이미지 구현을 생각해야 하지만, 이미지 단역은 제작진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전부다. 반항을 해야 성장할 수 있는 위치니까 가라앉을 거 같은 불안감 때문에 그간 이미지 단역들은 나의 생각을 투영했는데, ‘더 킹’에서는 반대로 시키는 대로 했다. 그동안 몰랐는데 오히려 이미지 구현이 쉬워지는 장점이 있더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간, 심지어 슬리퍼마저 빨간색인 컴돌이 노숙자 역을 맡았던 ‘장기왕: 가락시장 레볼루션’도 기억에 남는다. 기존과 다른 결의 영화다.”

반짝 성공 이후 6년의 하강 그리고 ‘밀정’과 ‘해빙’까지. ‘아저씨’가 우연이었다면 ‘밀정’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는 전진 중이다.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과 ‘7년의 밤’에서 ‘해빙’과 마찬가지로 짧지만 의미 있는 단역으로 출연할 것이라고 차기작을 밝힌 그는 조심스럽게 송강호를 인터뷰 말미의 화제로 꺼냈다.

“최근 송강호 선배님이 출연하시는 영화의 오디션을 봤다. 송강호 선배님은 연기를 옆에서 연기를 꼭 지켜보고 싶은 배우다. 비중 있는 역할로 캐스팅을 희망 중이다.”

마지막으로 마치 한 토크쇼의 단골 질문처럼 정도원에게 연기란 무엇인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이에 그는 신뢰감을 주는 배우가 싶다던 과거 인터뷰와 달리 “현장에서 자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 대답을 내놓았다. 음지에서 실력을 쌓는 것보단 현장에서 소통하고 싶다는 그의 마음은 이미 촬영장을 향해 달려가는 듯 보였다.

“지금까지는 음지에서 칼을 갈며 현장에서 한 방을 선보이고 싶었다면, 이제는 현장에서 밥 먹고, 자라나는 배우가 싶다. 대학교 은사님에게 ‘너 지금 잘하고 있어. 배우는 현장에서 자란다’는 말씀을 들었다. 40을 보고 캐스팅 했는데, 현장에서 100을 발취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기회를 계속 찾고, 구하고, 만들고 싶고, 어쨌든 현장으로 가야겠다.”


인터뷰 중간 정도원은 코미디 연기도 잘할 거 같다는 질문에 “과거 연극했을 때 폭력배나 사채업자 역할은 무대에서 내 전공이 아니었다”며, “전형적 인물 대신 사람을 드러내는 역할을 맡고 싶다”고 소원해 기자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마 화려한 시작점과 괄목할 만한 터닝 포인트를 지난 정도원이 미래에 마주하는 길은 성공을 뜻하는 ‘꽃길’이나 영화제의 레드 카펫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폭력배를 비롯한 영화 속 상투적 인물은 앞으로도 꾸준히 그의 필모그래피를 장식할 것이다.

그러나 정도원은 저력 있는 배우다. 시작이 화려했기에 과정의 지지부진에 지쳐 포기할 법도 했지만, 이미지 단역에서 신스틸러로 도약했던 이력이 그것을 증명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속담은 곧 백(百) 술을 뜬다면 배부를 수 있다는 말이지 않을까. 배우 정도원은 앞으로도 단역의 소중함을 알기에 현장으로 달릴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경험 속에서 계속 성장할 것이다. 미래가 기대되는 배우 정도원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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