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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통사람’ 손현주, 특별과 평범의 사이 그 어디쯤

2017-03-22 19:39:39

[이후림 기자] 비범한 평범함이 매력적인 배우 손현주.

겨울과 봄 사이, 지칭할 수 있는 계절의 단어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온도를 기억한다. 사실 봄, 여름, 가을, 겨울보다 더욱 매력적인 건 계절 사이 존재하는 그 미묘한 온도들이다. 봄을 기다리는 사이의 길목에서 그 미묘한 온도를 또렷이 기억하게 해줄 것 같은 보통, 중간이라 매력적인 배우 손현주를 3월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손현주는 1989년 연극배우로 데뷔,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브라운관에 첫 등장했다. 유수의 작품들을 지나며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 자리 잡은 그는 2012년 SBS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을 통해 그 해 S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이어 첫 주연 영화 ‘숨바꼭질’에서 560만 관객을 동원, 연이어 ‘악의 연대기’ ‘더 폰’까지 흥행에 성공시키며 ‘손현주 표 영화’라는 수식어까지 만들어냈다. 그가 2년 만에 주연으로 스크린 복귀를 알린 작품은 바로 영화 ‘보통사람(감독 김봉한)’. 그는 이번 영화에서 그 시절 가장 보통의 사람 성진 역을 맡아 특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보통에다 중간이지만 특별한 영화 속 성진이란 캐릭터와, 비범한 평범함을 내뿜는 배우 손현주는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는 듯 했다.

Q. 영화는 1987년도를 배경으로 한다. 실제 대학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 때의 정서가 남아 있어 시나리오가 더욱 와 닿았는지 궁금하다.

“그렇다. 하지만 우리 영화가 80년대를 대표하는 건 아니다. 어떠한 사건에 대한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뿐이다. 80년대는 현대사로 보자면 격동의 시기가 맞다. 가장 큰 화두는 등록금 인상에 대한 화두, 독재타도 구호가 분명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모르고 넘어가는 대학생들도 있었다. 70년대와 80년대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 70년대는 숨죽이던 시대였다면 80년대는 조금 풀어졌던 시대였다.”

“그래서 단편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 것이다. 80년대를 대표한다는 게 아니고 그 사건에 대한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다만 나는 대학 때 정극을 주로 해서 문예창작과 사람들과 친했다. 때문에 사회적 분위기에 민감했다.”

Q. 80년대란 시대적 배경 때문에 촬영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80년대를 배경삼아 찍을 수 있는 거리가 많이 없더라. 우리가 이번에 찍었던 거리들이 대부분 재개발, 재건축 지역들이었다. 현대극은 재촬영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한 번 찍을 때 찍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찍고 나왔다. 영화 속에 나오는 부산에 위치한 우리 집 터도 겨우 사수한 거다. 은평경찰서는 옛날 거라 빨리 부숴야하는데 촬영 때문에 그렇게 못했다. 그래서 서둘러 찍어야했다. 은평경찰서는 우리가 찍자마자 없어졌다.”

Q. 마음이 급하기도 했겠다.

“시간이 없으면 밥시간을 줄여야한다. 은평경찰서를 다시 지을 수 없지 않나. 우리 영화가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스태프들, 배우들 모두 불평불만 없이 잘 마무리 짓게 돼 감사하다.”

“우리 ‘보통사람’ 배우들이 다 착하다. 약속시간만은 잘 지켜주자고 부탁했는데 그걸 지키지 않는 배우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참 유쾌하게 촬영했다. 착하고 좋은 배우들을 만났다. 김상호 씨는 개인적으로 정말 만나고 싶었던 배우다. 정만식 씨 같은 경우에도 지나가다 만났는데 ‘당신 한번 만나고 싶다, 같은 앵글에 담겨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만식 씨가 ‘절 왜요?’ 그러더라. ‘정만식 씨 좋아하니까’라고 대답했다.(웃음) 만식이랑 상호를 만나서 재밌게 촬영했다.”


Q. 맡는 작품 속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한꺼번에 외우려고 하면 못 외운다. 자주 만나고 부딪히는 사람부터 외워야한다. 모두가 다 힘들지만 그 중 조명팀이 굉장히 힘들다. 조명 무게가 엄청나게 무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기를 많이 사줘야한다.(웃음) 사달라는 만큼 많이 사줬다. 우리 ‘보통사람’ 팀은 회식을 많이 했다. 우리 매니저는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회식은 부서별로 한다. 오늘은 촬영팀, 다른 날은 조명팀, 이번에는 분장, 미술, 이 후엔 분야별로 했으니까 이제 다 모여서.(웃음) 사람들이 나중에는 다 피곤해하더라. 그래도 끝까지 같이 가서 술 먹고, 회식하고 그랬다. 술이 목적이 아니라 재미가 목적 아니겠나. 그렇게 이야기하다보면 이름을 금방 외우는데, 또 금방 까먹는다. 같은 사람을 늘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잊어버리면 그때부터 또 다시 외우기 시작하는 거다.”

Q. 영화 속에서도 아버지 역할로 나오지만, 실제 아버지이기도 하다.

“우리 딸은 올해 대학에 입학했는데 딸이 모니터를 제일 잘 해준다. 시나리오는 나보다 먼저 보기도 한다. ‘숨바꼭질’을 딸이 먼저 봤다. 실제 집에서의 모습은, 권위는 이미 버린 지 오래다.(웃음) 동네 아저씨보다 못하다. 그냥 아주 친하게 지낸다. 내가 살가운 편이다. 지금 우리 아들이 아주 험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중2, 질풍노도의 시기다. 그 아이에게는 더욱 친밀하게 하려고 노력한다.(웃음)”

Q. 그렇다면 아버지 연기를 하면서 실제 본인의 아버지 모습을 적용하기도 했나.

“그렇다. 우리 아버지도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었다. 내가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오케이,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하셨다. 지금은 아프시지만 나랑 친했고, 지금도 친하다. 내가 지금도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가 산보 가자고 하면 우리 형은 싫어했는데 나는 항상 따라나섰다.”

“지금껏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건 아버지 영향이 크다. 아버지가 하셨던 것들, 설거지, 빨래, 밥 등, 내가 지금 집에서 하는 것들이 아버지가 해왔던 모습이라 낯설지 않은 거다.”

Q. 특별히 적용된 장면이 있나.

“특히 아버지의 모습이 적용된 장면이 있다기보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살아왔던 모습이 내 안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장면이 아니라 아버지가 내 안에 있는 것. 그런 성향들은 잘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그대로 보고 배운 거다. 내 안에 아버지가 통으로 들어와 있는 거 아니겠나.”


Q. 손현주가 생각하는 보통사람이란.


“80년대 그 당시로 보자면 중산층의 보통 아버지들이 월급봉투를 가져다주고, 통닭 사오고, 그런 게 평범한 사람 아니겠나. 하지만 지금 보통사람이 뭔지 정의를 내려 보라 한다면 못 내리겠다. 과연 어떤 사람이 평범하고 보통인 사람인걸까. 과거에는 중산층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산층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지금은 중산층이 있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답이 길어질 것 같다.”

Q.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봤으면 좋겠나.

“‘보통사람’. 보통보다는 사람냄새가 나는 영화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 보통, 평범한 사람보다 어떤 사람인지를 들여다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사람의 향이란 게 있지 않겠나. 그 향이 짙게 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란 작은 바람이 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보통이란 말을 반기지 않으면서 그렇게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특별함을 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넌 특별하니까’란 말을 태어날 때부터 들어왔고, 또 듣기를 갈망한다. 때문에 ‘보통’이란 단어가 주는 모순은 상당하다. 그 기준 또한 애매모호하다.

보통이면 어떻고 특별하면 또 무엇이 대단할까. 손현주의 말처럼 모든 사람의 향(香)은 다르다. 보통이든, 특별하든, 분명하지 않은 그 기준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어떤 향이 나는 사람인지, 그 특별한 소신을 가지는 것 아닐까. 비범한 평범함을 가진 배우 손현주의 짙은 향이 날 앞으로의 모든 길에 기대가 모아진다.

한편 영화 ‘보통사람’은 3월23일 개봉,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사진제공: 오퍼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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