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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f①] 이희진, 또 다른 품위를 기다리며

2017-08-26 12:41:01

what if...“다른 길을 선택했었다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이 질문. 화려한 스타들이라고 살아오면서 단 한 가지 꿈만 쫓았으랴. 그들의 마음속에 고이 접혀있는 또 다른 모습들을 꺼내보고 싶었다. 단지 말과 글로만 설명되어지는 것이 아닌, 실제 그 모습으로 꾸며진 채로! bnt 기획 인터뷰 ‘What If’는 스타가 꿈꿨던 다른 모습을 실체화 시켜본다. -편집자 주-


[김영재 기자] ‘What If’ 일곱 번째 주인공으로 배우 이희진을 만났다.

박복자(김선아)의 죽음과 죽음으로 시작과 끝을 맺은 JTBC ‘품위있는 그녀(극본 백미경, 연출 김윤철)’. 분명 주인공은 욕망을 낭비한 박복자와 욕망을 절제한 우아진(김희선)이었다. 하지만 백미경 작가는 출연진에게 다음의 말을 전달했다. “모든 분들이 언젠가는 꼭 한 번씩 주인공이 되는 회차가 있다. 그것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 작품을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글을 쓸 것이다.”

명사 ‘작가’와 관형사 ‘허튼’은 서로 상극인 것일까. 말은 현실이 됐다. 평소의 불륜극과 치정극이었다면 가을 낙엽처럼 바스러질 무의미한 등장인물들이 생기를 갖고 정말 주인공으로 거듭난 것. 이 가운데 기자가 꼽고 싶은 제일(第一) 주인공이자 로맨스의 주인공은 바로 김효주(이희진)다. 레지던스 호텔을 소유한 남편을 둔 파워 블로거이자 사모님 모임의 세 번째 혹은 네 번째인 그는 17회에서 띠동갑 연하를 앞에 둔 채 절절한 감정선을 펼쳤다.

핫 초코와 생크림을 벗 삼아 “우린 서로 관계에 대한 기대가 달랐어”라고 이야기하는 김효주를 보면 인륜을 벗어난 사랑이라도, 사랑의 순수함과 절절함은 퇴색되지 않는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과연 불륜을 차치하고 인간의 감정에 집중하게 만드는 일은 작가의 힘일까. 아니면 배우의 힘일까.

‘What If’ 일곱 번째 주인공은 배우 이희진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 그의 시작은 걸그룹 베이비복스(Baby V.O.X.)였고, 어느새 그는 뮤지컬, 연극,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를 섭렵한 어엿한 배우가 되었다. 기자가 이희진과 배우를 연관시킨 첫 작품은 MBC ‘최고의 사랑’이었다. 그래서 ‘What If’ 주인공으로 이희진이 결정되었을 때 기자는 그와의 인터뷰를 희망했던 바 있다. 질문을 건넸다. 최신작 ‘품위있는 그녀’ 이야기부터 배우 이희진의 이야기까지.

사전 미팅에서 만났던 그는 1990년대부터 활동해온 베테랑의 아우라를 말과 표정 그리고 배우다운 감정 표현을 통해 한껏 뽐내며 기자를 주눅 들게 했다. 하지만 그를 만난 모든 취재진이 인터뷰의 서두로 걸크러시의 정반대를 언급한 것처럼 기자 또한 세간이 평가하는 이희진의 정반대를 인터뷰에서 만났다. 그는 ‘What If’의 주제로 도예(陶藝)를 희망했다. 다른 길로서 도예가를 희망한 것이다. 서울 종로구 북촌의 어느 공방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Q. ‘What If’ 참여 소감이 궁금하다.

“첫 미팅 때 당황은 했는데, 미래나 내가 바라는 것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좋았다. 그리고 촬영하는 내내 정말 재미를 느꼈다. 조금 더 내면적인 면을 많이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다. 사진을 찍을 때는 말이 아닌 표정과 눈이 중심이 된다. 그런 점이 좋았다.”

Q. 먼저 ‘품위있는 그녀’ 이야기를 해보자. 8월5일 16회가 전국 시청률 10%(닐슨 코리아 기준)을 기록했고, 이 가운데 주역 김효주를 연기했다. 인기를 실감하는지?

“내가 솔직히 그런 것에 많이 무디다. 그래서 잘 못 느꼈다. 그런데 주변 분들이나 기자 분들을 뵈면 굉장히 디테일하게 말씀을 하시더라. 예전에는 ‘그 드라마 재밌다, 웃기다’가 전부였는데, 이제는 하나부터 열까지 디테일한 이야기를 많이 말씀해주신다. ‘와, 이게 굉장히 임펙트도 강하고, 화제성이 많은 드라마구나’라는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김)효주라는 캐릭터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여쭤봐 주시는 것을 보고, ‘우리 드라마가 한 명 한 명이 살아있을 만한 화제성을 가졌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돌아다니면서 실감했다.”

Q. 레지던스 호텔을 소유한 남편을 둔 파워 블로거 김효주를 연기했다. 김효주는 남편의 호텔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간 큰 여자다. 캐스팅 배경이 궁금한데?

“감독님을 뵈었는데, (김)효주 역할은 어떤 강단이 필요하고 세야 하는데 당신께서 생각하신 기준에 부합되지 못해서 ‘괜찮을까?’라는 걱정을 하셨던 것 같다. 대본 이야기가 오가면서 굉장히 많이 물어봤다. 거기에서 마음이 조금 움직이셨더라. 예를 들어 ‘효주는 강남 자부심이 뼛속까지 강한 스타일인데, 이게 태어날 때부터인지 혼자 만들어서 온 건지를 모르겠다’라고 여쭤봤다. 감독님께서 ‘거기까지 생각을 못해봤다’라며 웃으시더라. 이후 따로 명단이 올라갔고, 보조 작가님의 추천과 함께 백미경 작가님께서 ‘좋다. 반은 너를 믿고 반은 이희진을 믿겠다’라는 뉘앙스로 나를 캐스팅해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Q. ‘품위’는 있지만, 그럼에도 인륜(人倫)의 혼잡합은 지울 수 없다. ‘불륜’이 만연한 작품이다. 브런치 모임의 남편들에게 불륜은 일상이고, 오경희(정다혜)는 차기옥(유서진)의 남편도 모자라 양다리를 걸린다. KBS2 ‘사랑과 전쟁’과 일부 아침 드라마의 클리셰가 연상된다.

“아침 드라마 느낌을, 대본 네 권을 들고 리딩 했을 때는 못 받았다. 대신 ‘그냥 불륜 주제로 가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상류층에 관해서 궁금해 하는 점을 우리가 긁어줄 수 있고, 사이다 같은 드라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면 할 수록 대사가 솔직히 유치하지 않았다. 그리고 백미경 작가님의 멜로 드라마들이 있기 때문에, 그 힘을 믿고 있었다. 굉장히 섬세하시다. 여장부시면서도. JTBC ‘사랑하는 은동아’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굉장히 섬세하셔서, 언젠가는 분명히 풀어주시겠다는 믿음이 강했다.”


Q. 연출을 맡은 김윤철 PD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대표작은 MBC ‘내 이름은 김삼순’. 시청률을 떠나서 아우라가 큰 연출자다. 이 밖에도 MBC ‘케세라세라’,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등 숱한 화제작을 연출했다. 아우라가 큰 연출가이기에 기대감이 컸을 듯하다.

“감독님 성향을 모르고 작품에 들어갔는데, 미팅 때 조금 느꼈다. 나에게 거의 90도 가까이 숙여서 인사를 해주셨다. ‘굉장히 오랫동안 연예인 생활을 하셨고, 지금 몇 년 정도 되셨다고 들었다’라고 나에게 말씀해주시더라. 내가 감독님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먼저 대접해주시고 대외해주시더라. 감사하다고 느꼈다.”

Q. 김윤철 PD는 현장에서 어떤 연출가인지 궁금한데?

“대본에 나와 있는 서브 텍스트부터 ‘...’ ‘느낌표’까지 다 디테일하게 보신다. 대본에 있는 그대로 하신다. ‘왜 점이 여기는 하나고, 여기는 두 개고, 여기는 세 개지? 왜 느낌표가 세 개나 있지?’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그런데 다 이유가 있더라. 아무래도 작가님의 이유를 100%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조금만 대사가 틀려지면 감독님께서 신을 다시 가셨다. 굉장히 철두철미하셨다. 김용건 선배님께서도 김수현 작가님과 김윤철 감독님 딱 두 분을 거론하셨다. 분명히 이유가 있기 때문에 당신께서도 그렇게 연기를 하셨다고 덧붙이셨다.”

Q. 연기의 기본은 대사의 재현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요즘에는 ‘깐깐하다’라고 배우 분들이 표현을 한다. 하지만 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별로 놀랍진 않았다. 앞으로도 더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대본에 있는 대로 대사를 하다가 뭔가 안 되면 그것을 바꾸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런데 나는 대사를 완벽히 표현해주는 것이 가장 연기를 잘할 수 있고,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다시 작품 이야기로 돌아오자. 1회 브런치 신에서 김효주는 다음을 이야기한다. “공공기여금이 자그마치 1조 7천억 원이에요. 그게 강남 거지 어떻게 나라 거예요? 거기다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다 강남구 몫인데.” ‘불륜녀’ 이전에 뼛속까지 강남 자부심이 스며든 ‘강남녀’다. 어떻게 그려내고 싶었는가? 연기 주안점은?

“나는 딱딱딱 씹어서 연기를 한다. 그런데 (김)효주가 굉장히 센 애고 개성도 넘치고 이러다 보니까 내가 그런 말투를 쓰게 되면 조금 천박해 보일 것 같더라. 표현이 과대하게 부풀어지는. 그래서 내 말투대로 했다. 특히 효주는 실생활처럼 연기를 해야 됐기 때문에 대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해야 될 말인데 외워서 하는 것이 티 나면 안 되니까. 늘 항상 하는 말처럼 하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보면 대사를 가지고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택시’를 보면 역할을 위해 금수저 지인의 조언을 얻었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다. 또 궁금한 것은 과연 돈이 ‘품위’를 만드는 것일까? 이희진의 생각은?

“처음부터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들은 생색은 안 낸다. 여유가 있다. 그리고 똑같은 돔 페리뇽 로제 샴페인을 먹었을 때 그들은 ‘너 샴페인 좋아하잖아. 먹자’라고 이야기한다. 괜찮은지 물어보면 ‘왜? 너 좋아하는 거잖아. 먹자’라고 하지 생색을 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로렉스 시계를 차고 다녀도 ‘응, 시계’라고 하지 특출하게 생색내지 않는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다 보니까 내가 의식을 하게 되더라. ‘얘 왜 이래?’라고. 정말 여유가 있는 사람은 특별히 혜택을 받거나 보호 아래 있다는 인식을 잘 받지 못한다. 항상 그랬기 때문에.”

Q. 품위가 일상이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렇다. 굳이 뭐 강남 사모님 (김)효주처럼 화려하게 입고, 귀걸이 주렁주렁 달고 다니지 않는다. 말할 때도 생색내지 않는다. ‘미디어에 나오는 것처럼 과장되게 하면 웃길까?’라고 물어봤다. ‘하지 마. 희진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부모님 손에 의해서 그렇게 자라 왔을 뿐이야. 네가 느꼈을 때 우리 재수 없었어? 힘주지 마’라고 이야기하더라. 친구들 덕분에 효주 역할을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더불어 그 코드가 감독님께서 의도하신 것이랑 잘 맞아 떨어졌다. 효주가 대사가 세다. 그렇기에 감독님께서 감정을 더 실거나 발음을 세게 안 해도 된다고 하셨다. ‘와 괜찮다. 감독님이랑 마음 맞았네’라고 좋아하면서 연기했다.”


Q. 박복자(김선아)의 내레이션을 빌리자면 “자신의 이름을 하루라도 알리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파워 블로거 김효주. 남편에게 받지 못하는 사랑을 불특정 다수를 통해 얻는 것일까?

“처음에는 그냥 자기 자랑 하는 것 좋아하고, 치장하기 좋아하고, 그냥 자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자랑에 미친 캐릭터라고 느꼈는데 연기를 하면서 어느 순간에 봤더니 꼭 (김)효주가 슬픔을 표현하거나 비참함을 표현하기 전에 블로그를 본다. 그리고 사진을 올리고 흐뭇해한다. 화면을 끄면 조증 걸린 애처럼 바뀌고. 솔직히 촬영하면서 느꼈다. 자기 만족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관심병인. 관심병으로 누가 나한테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고, 누가 봐줬으면 좋겠고. 그러다 보니까 오늘 블로그 방문객이 몇 명인가를 확인하고 굉장히 즐거워한다.”

“(김)효주 캐릭터를 보면서 나는 내 연예인 생활이 많이 떠올랐다. 나도 예쁜 사진 없나 이러고 보는데, 현실은 정작 말도 안 되는 운동복 바람에 머리 하나로 묶은. 그것이 어떻게 보면 내 자신 아닌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블로그와 효주를 연관 지은 것은 감사한 일이다.”

Q. 최적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맞아 떨어진.

“그렇다.”

Q. 김효주는 불쌍한 인물이다. 남편 서문탁(김법래)은 김효주에게 “내처럼 당당하게 피는 게 낫제. 애란이가 당신한테 고맙다카더라”라고. 밥상에 앉아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으면서 내연녀의 감사를 당당히 본처에게 전하는 남자다. 조금 전에는 ‘강남녀’의 주안점을 물었다면, 이번에는 불륜에 상처받는 아내 연기를 묻고 싶다. 김효주 또한 맞바람을 피우긴 한다.

“나랑 (김)효주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나는 바람 피우는 것도 너무 싫어하고, 연애하는 스타일도 내 남자만 바라보고, 내 남자가 시키는 것은 다 한다. 다 퍼주고 올 인 한다.”

Q. 김효주와 이희진은 대척점 위의 두 사람이다. 힘들었겠다.

“솔직히 감독님한테 말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불륜 연기는 자신이 없다. 성향이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 언제까지 내가 원하는 것만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래, 대리 만족을 해보자. 체험을 해보자. 한번 해보자.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때 내가 어떤 감정인지 한번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확실히 김법래 선배님이랑 연기할 때 처음 느끼는 감정이 다가오더라. 내가 또 상대방이 바람을 피우면 나한테 안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모르면 마음 편하니까. 화목하니까.”

Q. 극중에서 차기옥도 모르면 마음 편하다는 말을 내뱉는다.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만약에 걸리더라도 난 죽었다 깨어나도 이혼을 안 한다는 마인드기 때문에, 이런 고지식한 생각을 갖고 이 캐릭터를 하기에는 버거웠던 것이 사실이다. 굉장히 버거웠는데, 다행히 백미경 작가님께서 외면을 한 채 효주한테 대사를 해달라고 적어주셨다. 남편과 대사를 할 때 감정적으로 많이 와 닿을 수 있었다.”


Q. 김효주는 띠동갑 연하와 남편의 호텔에서 불륜을 저지른다.

“솔직히 연하를 안 좋아한다. 부담스럽다. 나보다 어린 사람은 뭔가 보호해줘야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어떻게 저 핏덩어리랑 사귀어?’라는 생각이 강하다. 미안하더라. 똑같이 사랑을 해서 한 10년을 연애했는데, 저는 마흔이 됐고 상대방은 서른이 되어 있으면 앞길을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한 살이라도 어리면 남자로 안 보인다. 내 성향이랑 정말 안 맞는다. 미치는 줄 알았다. (웃음)”

Q. 10회에서 김효주는 차기옥에게 다음을 이야기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나도 남자 만들었지.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요? 남자 생겨 보면 남편 맘? 완전 이해가 가. 설레거든요. 젊은 남자. 그 남자가 나한테 주는 호르몬 밸런스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시작은 유희였다. 그런데 결국 김효주는 내연남에게서 사랑을 느낀다. “우린 대체 뭐니? 우리 연애한 거 아녔어?”라고 반문하기까지 한다. 오경희는 성형외과 의사인 내연남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알고 ‘똑 부러지게’ 행동한다. 하지만 김효주는 사랑을 찾고 앉았다. 공감이 갔는가?

“100% 공감 갔다. 대본을 받았을 때는 이렇게까지 깊게 감정을 줄지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상대 배우와 대사하면서 내가 너무 비참했다. 집중을 해서 같이 호흡을 하다 보니까 너무 비참하더라. 감정이 쌓여 있는 것을 사실 못 느꼈다. 하지만 남편은 바람 피우면서 나를 무시하고, (김)효주는 연하남에게 ‘돈 줄까? 차 사줘?’라고 얘기하고, 이러면서 점층적으로 굉장히 많은 감정이 쌓였나보다. 감정이 확 올라오더라. 솔직히 촬영하면서 감독님에게 눈물 걱정을 했다. 웃으시더라. 울어야 된다는 생각만 하면서 촬영했는데, 감정이 너무 복받쳤다. 이희진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관심 받고 싶고, 보호 받고 싶고.”

Q. 17회 카페 신이 슬펐다. 오랜만에 내연남을 만나 옷을 선물하고, 다음을 말하는 김효주. “고마워, 기석아.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내가 덜 비참해. 차 마시자 우리. 핫 초코에 생크림 듬뿍 맞지? 네 취향이 그렇잖아. 커피에 시나몬 많이 넣어야 되고. 넌 내가 카페에서 뭘 주로 마시는지 아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지? 우린 서로 관계에 대한 기대가 달랐어. 내 잘못이야. 내가 혼자 너무 많이 갔다.” 보는 입장에서 참 먹먹했다. 촬영할 때 어땠는지?

“밤새고 나서 오전 6시? 7시? 해가 뜬 아침에 찍었다. 솔직히 비몽사몽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우는 신이 아닌데도 대사를 하면서 눈물이 나더라. ‘이 감정은 또 뭐지? 이러면 안 되는데.’ 그냥 불쌍했다. (김)효주가. 효주는 아닌 척을 많이 한다. 앞에서 울 수도 있는데 꼭 뒤에서 울고, 센 척 하고. 그러다 보니까 더 불쌍하게 느껴졌다. 다른 분들도 불쌍하게 느꼈고. 백미경 작가님께서 효주의 성격이나 감정선을 섬세하게 써주셨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아서 후회가 된다.”

Q. ‘핫 초코에 생크림 듬뿍’ 같은 대사는 시청자 본인도 모르게 공감을 불러 모은다. 새삼 백미경 작가의 필력을 확인하게 되고. 배우 본인도 느끼셨다고 하고. 작업을 회상하자면?

“백미경 작가님은 촬영할 때 단 한 번도 뵈었던 적이 없다. 연락을 안 하신다.”

Q. 리딩 때도?

“리딩 때는 첫 스타트를 해야 되기 때문에. 그때 그런 말씀을 하셨다. ‘어느 드라마나 주인공은 있고, 조연이나 두 번째도 있다. 그 주변 사람들이 움직여줘야 주인공들도 대화가 되고, 더 돋보일 수 있다. ‘품위있는 그녀’에서도 주인공이 있지만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이 번갈아가면서 언젠가는 꼭 한 번씩 주인공이 되는 회차가 있다. 나는 그것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 작품을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글을 쓸 것이다. 그건 꼭 믿어달라.’ 회식 때도 작가님이 그 말씀을 또 한번 하시더라. ‘(김)효주 꼭 주인공 되는데, 뒷부분에 있다. 그러니까 감정선 잘 끌어달라’라고. 그 말씀에 눈물이 터졌다. 감사하더라. 주인공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신다는 점이.”


Q. 분량의 아쉬움은 없었을까?

“그나마 나는 많이 나왔다. 아예 빠지는 경우는 19회 한 회 밖에 없었다. 한 번이라도 스쳐 지나가고, 말을 하더라 (김)효주가. 그리고 오지랖이 넓은 효주라서 (김)희선이 언니의 (우)아진이를 도와주다 보니까 더 나오고. 아무래도 사전에 찍은 분량이 많기 때문에 많이 드러냈다. 대사를 하다가도 ‘흡’. 분명 뒤에 대사가 더 있는데 잘리고, 통으로 날아가고. 이런 경우가 많아서 배우들이 실질적으로 책을 들고 찍은 분량보다는 너무나 적다.”

Q. 14회에서 강남 사모님들은 서로의 신세를 한탄한다. 이 가운데 “사랑 따위 내 팔자에 없나 봐요”라는 김효주의 말에 우아진은 “왜 사랑이 없겠어요. 난 분명히 있을 거라고 봐요. 진정한 사랑을 제 때 만나기 힘들어서 그렇지. 그런 거 보면 사랑도 정말 타이밍인 거 같아요”라고. 사랑은 타이밍이다. 사실 인생 자체가 타이밍이다. 제 때에 맞는 사람과 기회가 만나 성공을 이룬다. 이희진에게 타이밍은 언제였는가? 혹시 지금일까? 감히 생각하던대.

“나는 운이 좋다. 작품 복도 많고. 감독님과 작가님을 참 잘 만난다. 시청률이 높은 작품을 참 많이 했다. 다 대박이 났다. 한두 작품 빼고는 참 운이 좋게도 시청률이 좋았다. 작품도 좋았고. 그때마다 ‘무슨 운이 있지? 행운이 있지?’라고 자문하곤 했다. 그간 해야 될 역할을 못했다. 여성의 성숙함과 노련미? 농이 안 들어서 아직까지 못했다. 이 한 템포만 조금 더 성숙하면 연기적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감독님들에게 더 많이 연락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단계를 못 넘고 있었다. 힘들었다. 하지만 ‘품위있는 그녀’를 통해서 여성스러움도 어느 정도 보여줬고, 엄마, 아내, 불륜 등 내 나이에 맞는 캐릭터를 입은 것 같다.”

“마흔을 앞둔 나로서는 이번이 제2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타이밍을 만난 셈이다. 배우들끼리 말한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된다.’ 물이 들어왔다. 노를 어디로 저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죽어라 젓고는 있다. 지금까지의 연기 생활을 돌이켜보면 이번이 타이밍이다. 최고의 타이밍. ‘품위있는 그녀’는 내게 전환점을 만들어준 작품이다. 그래서 남들은 천박하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는 캐릭터지만, 나에게는 그 천박도 타이밍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한 마흔을 맞이할 수 있을 듯하다. (웃음)”

▶[What If②]로 이어집니다.
[What If①] 이희진, 또 다른 품위를 기다리며
[What If②] 이희진, 운명 같은 우연을 만나다

기획/진행: 김강유
인터뷰: 김영재 기자
촬영: 윤호준 bnt포토그래퍼
스타일링: 유어툴즈 최미선, 이슬기 디렉터
의상: 오리엔탈 무드 블랙 원피스(하피러브즈잇), 플라워 프린트 생활한복(무낙), 주얼리(엘렌스타), 슈즈(스타일리스트 개인 소장품)
헤어: 박호준헤어 주니 원장, 윤지 코디
메이크업: 뷰티르샤 문하나 아티스트
장소: 인클레이주(inclay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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