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bnt's pick] ‘한입만’ 김규호, 연기에 손을 들다

2018-09-30 13:25:42

[김영재 기자 / 사진 bnt포토그래퍼 윤호준] “다양성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뭐야? 뭐야?” 모두가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 수군거림이 적막을 깨는 지진이라면, 진원에는 모델 김규호가 있었다. 디자이너 김서룡 쇼에 서는 것을 갈망해온 그였다. 하지만 오디션은 의상 피팅이 전부였고, 머릿속은 워킹을 미처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으로 가득 찼다. ‘내가 모델로서 좀 아닌가?’ ‘내 이미지가 선생님에게는 별로였나?’. ‘아, 안 됐구나’란 직감이 가슴을 저몄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다만 망설일 여유가 없는 것은 분명했다.

그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선생님. 저 워킹 잘합니다.” 박장대소로 화답한 김서룡은 정성껏 김규호의 워킹을 지켜봤다. 김규호에게 기회란 쟁취의 대상이다.

웹 드라마 ‘한입만(극본 방유정, 연출 백민희)’의 등장인물 박경찬은 모델 겸 배우 김규호가 쟁취한 또 하나의 기회다. 원래 그는 하은성(김지인) 남동생 하태성 역을 목표로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하지만 제작진은 김규호의 중저음 목소리를 눈여겨보고 그에게 박경찬 연기를 제안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는 최대한 뻔뻔하고 능청스럽게 지정 대사를 박경찬스럽게 풀어냈다. “오디션 합격하고 나서 ‘이번이 기회구나’ 생각했어요. 평소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답답한 면이 있죠. 박경찬 캐릭터로 짜릿함을 느꼈어요.”

전 여자친구 은성의 말을 빌리자면 박경찬은 “꼽등이만도 못한 호로자식”이다. 임수지(서혜원)는 그를 두고 “저런 애들은 또라이라서 최대한 안 엮이는 게 좋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은성과의 대면에서 박경찬은 그의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바람피운 후 잠수 탄 과거는 잊은 채 질투를 버젓이 드러내는 박경찬은 “우리가 헤어진 게 내 탓 같지?”, “너 겁나 빨리 질리는 스타일이야”란 대사로 화면 너머 시청자의 공분을 샀다.

‘인간적으론 A급이지만 남친으론 F급인 초 바람둥이 똥차남’. 제작진이 홈페이지에 기재한 박경찬 소개글이다. 배우는 “시청자 분들께 욕먹을 각오하고 찍었다”며, “악역이고, 바람둥이 캐릭터다. 내심 욕먹길 바랐다”고 했다.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우리 헤어졌어요’ 함께한 배우 이범규 선배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죠. ‘형 저 이렇게 하면 어때요? 나빠 보여요? 착해 보여요?’ ‘더 나쁘게 해봐!’. 하하. 계속 ‘더 나쁘게’를 추구했어요.”

1회 등장 신도 난관이었다. 게걸스러운 연기에 다양한 껌까지 씹어야 했다. “은성이 상상 신이 있어요. 혓바닥 날름거리면서 게걸스럽게 스킨십을 표현하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어려웠어요. 껌 씹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때 껌을 한 5가지 씹어봤어요. 어느 껌이 더 잘 늘어나는지, 제가 표현하려는 거에 어떤 껌이 부합하는지 알아봤죠.”

극중 인물과 얼마나 비슷한지 묻자 “100% 다르다”란 손사래가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경찬 캐릭터는 뻔뻔하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나쁜 남자잖아요. 저는 연애할 때는 상대방에게 올인하는 편이에요. 오죽하면 상대방이 질릴 정도죠.”


구부정한 자세를 지적받은 어린 김규호였다. 그 어린 아이는 동네 모델 학원에서 자세 교정 수업을 받았고, 형 누나들이 걷는 모습을 보고 모델에 이끌렸다.

갑자기 모델이 되고 싶다는 아들의 꿈에 부모님은 반감을 가졌다. 난데없이 모델이라니. “부모님께 ‘내가 이렇게 달라졌다. 나 모델 너무 하고 싶다’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데뷔 쇼 초대권을 드렸어요. ‘솔리드 옴므 25주년 컬렉션’이 제 데뷔 무대인데, 그때부터 어머니 아버지께서 절 응원해주셨죠.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이름 앞에 ‘모델’과 ‘배우’가 양립한 건 스무 살 때 일이었다. 홍보팀에서 웹 드라마 ‘우리 헤어졌어요’ 오디션을 제안했고, “맨땅에 헤딩” 하는 심정으로 연기와 부딪혔다. “감독님 ‘레디 액션’ 한마디에 공기가 바뀐다는 게 뭔가 짜릿했어요. 모든 사람이 제 대사 한마디에 집중하는 것도 짜릿했고요. 그리고 다른 배우 분들과 같이 호흡하며 말로, 제스처로 행동하는 게 모델 일과는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연기를 연구하고 싶어졌죠.”

김규호의 DNA에는 아직 모델 김규호가 더 짙게 배어있다. “패션 쇼 워킹 버릇이 드라마 촬영할 때 느껴지더라고요. 제 부족인 거 같아요. 완전히 박경찬에 이입했다면 그러지 않을 텐데 몸속에 남아있는 버릇이 나오는 듯해요.” 모델 출신 배우라면 모두가 롤 모델로 꼽는 차승원(YG엔터테인먼트)은, 또한 김규호의 롤 모델이다. 같은 YG케이플러스 소속인 김규호는 아직 그의 이상향을 만나지 못 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꽃미남’ 일색인 모델 출신 연기자 가운데 김규호의 색은 어딘가 차승원의 그것과 닮았다. 보다 남성답다.

중저음의 그가 입을 열었다. “전부터 차승원 선배를 너무 좋아했어요. 넘치는 카리스마, 그와 상반된 코믹함까지. 선배님처럼 다양성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2016년 5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육군 신병교육대대 훈련소에서 조교 생활을 한 김규호의 차기작은 10월 열리는 ‘2018 S/S 헤라 서울패션위크’다.

그는 “군 생활을 2년 동안 하면서 무대에 너무 많이 목말랐다”고 갈증을 호소했다. “군 내무실에서 TV를 틀 때마다 아는 사람이 나오는 거예요. (권)현빈이도 나오고, 채널을 돌리면 패션 쇼 채널도 나오고. 무대에 너무 서고 싶더라고요.”

길게만 느껴진 1년 9개월의 시간은 김규호의 자신감을 앗아갔다. “회사 오니까 너무 예쁘고 잘생긴 후배들이 많아서 ‘큰일 났다’ 했어요.” 하지만 그에겐 디자이너가 인정한 워킹이 있다. 인터뷰 때 김서룡 디자이너의 이름이 자수로 새겨진 셔츠를 입고 온 그는 “지금까지 인연이 닿아 쇼에 설 수 있어서 너무 감사드린다”고 은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악바리다. 전역 후 홀로 15kg 감량에 매진한 것은 물론, 달리기는 게으르지 않은 그의 중요 일과다. 아르바이트를 본업과 병행하는 이유는 그의 자립심에 의거한다. “미래를 위한 적금이라고 생각해요. 나름의 노력이죠. 손 벌리고 싶지 않아요.”

더불어 늘 더 나은 김규호를 희망한다. 6년의 시간 동안 만족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그는 말했다. 김규호에겐 ‘이만하면 됐다’가 없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만이 있다. “‘한입만’으로 많이 배웠어요. 앞으로도 더 많이 배울 생각이에요.”

데뷔 쇼 ‘솔리드 옴브 25주년 컬렉션’은 김규호가 초심을 다잡도록 돕는 기억의 방아쇠다. 그렇다면 복귀작 ‘한입만’은 그가 두 번째 초심을 새긴 기억의 이정표다. 방아쇠와 이정표 사이에서 그는 손을 들었고, 기회는 또 한 번 올 테다. 김규호가 또 한 번 손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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