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인플루언서는 멋지다! 행복 제조하는 그들의 스토리] 연중기획. ‘이유이 인플루언서’ 폐 절제수술 완전극복 섹시백콘테스트 수상+수중모델+화가+힐링 애견카페.. 모델 화가 CEO, 인스타 15만 틱톡 76만. 엔터테인먼트사 운영, 그녀의 성공스토리는 끝이 안 보인다

2021-11-18 15:25:03

[김기만 기자∙팀장 kkm@bntnews.co.kr]

드라마틱한 인플루언서가 있다.

92년생 30세로 아름답고 강단 있고 멋짐이 뿜뿜 배어나오는 ‘이유이 인플루언서’

처음 봤을 때는 천상 여자로 보이는 다소곳한 외모였지만 인터뷰를 해보니 10년간 소설책 분량의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처음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극심한 공황장애와 수면장애에 시달려오다가 갑작스레 간접흡연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병으로 20살 꽃 다운 나이에 폐 절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20대 받아들이기 힘든 가히 절벽에 까지 몰린 것이다. 그런 그녀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유명 인플루언서가 됐고 또한 화가와 CEO를 겸하고 있다.

CEO도 보통 CEO가 아니다. 인플루언서 14명이 직원으로 있는 ‘인플루언서 엔터’ 회사의 CEO다.

그녀의 버라이어티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먼저 요즘 많은 20대 초반의 MZ들은 인플루언서를 꿈꾼다고 합니다. 이유이님은 주로 어떤 분야에서 인플루언서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현재 브랜드 광고모델 패션모델 등을 하며, 틱톡과 인스타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어요.
국내 수중모델 활동도 하며 다방면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 지금 운영하는 회사는 어떤 회사이며 직원들 중에도 인플루언서들이 어느 정도 계신가요?
“지금 운영하는 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엘픽엔터테인먼트’이고요. 현재 14명 정도의 인플루언서가 활동 중이며, 디제이겸 타투모델, 뷰티모델, 패션모델, 여행유투버, 복싱선수, 주짓수선수, 보컬 등의 아티스트들로 다양하게 이루어져있는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사실 엔터를 꿈꿔오지는 않았었는데, 제가 어머니의 반대로 회사를 들어가지 않고 항상 혼자 활동하며 모든 걸 하고 혼자서 이 자리에 왔는데요,
참 힘든 일도 많았고, 맘 다치는 일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후배들이나 지인들을 많이 도와주기 시작했었는데 코로나를 시작으로 많은 친구들이 일을 하지 못하고 꿈을 꾸는 것조차 버겁고, 힘든 일이 되었었잖아요.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남들 입에 조금 더 쉽게 오르내리고 남들의 평가로 인생이 좌지우지 되는 이 분야의 세계에서는 사실 실력이 좋다고 버틸 수 있는 것도 운이 좋다고 버틸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멘탈도 중요하고 주변에서 돈으로 해주는 서포트가 아니라 정말 그 사람의 실력을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필요하고. 실력은 기본이고 운도 따라줘야 하는데 설령 그렇게 이름을 알렸다고 하더라도 잠깐의 휴식과 이슈가 이 아티스트를 기억에서 지울 수도 있거든요.”
- 코로나로 인해 터전을 잃은 후배들 양성에 큰 축.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서 그리고 인맥이 없거나 마음이 약해서 생계를 위해서 꿈을 버려야만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 중 제가 아끼던 한 후배가 그랬고요. 그 친구를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주다가 보니 회사 없이 선배로서 도와주고 지켜줄 수 있는 한계의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를 위해서 회사를 차리게 되었어요.
저희 회사에 있는 친구들은 전부 다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들이라고 생각해요. 아티스트라고 해서 모두가 잘하는 게 있는 건 아니거든요.
누구나 태어나 처음 맞이하는 삶이 새롭고 어렵고 무섭듯.. 저희 아이들도 그래요.
다만 그들이 갈 수 있는 길을 좀 더 깨끗하고 편하게 갈고 닦아주고 성공을 위한 희생과 노력이 아닌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희생은 하지 않기를 바라요. 본인들이 잘하는 걸 하길 바라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는 없겠지만 본인이 본인을 사랑하기를 원해요.
그래서 차린 후 가장 많이 가르치는 것이 ‘자신감과 창의성 그리고 본인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찾아주기, 마음의 힘듦 덜어내는 법, 에티튜드 등의 인성교육’을 가장 많이 시키고 있고, 즐기는 법을 위주로 교육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두웠던 아이들도 많이 밝아지고 세상도 아이들을 좋게 받아들여 주셔서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지난 10년 동안 드라마틱한 삶을 사셨다고 들었는데 자세하게 이야기 해 주시죠.
“저는 사실 제 인생이 드라마틱 하다고는 생각 안해요. 누구나 각자의 삶이 있고, 같은 일을 겪어도 어떻게 이겨내고 견디느냐의 차이가 있듯, 그저 제 인생이 조금 견디기 힘든 부분들이 몰려있었다고 봐요.
정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부모님인데 제가 남들보다 아빠랑 사이가 정망 좋았어요. 주말에는 친구들이 아니라 가족들이랑 놀 정도였고, 엄마랑도 노래방도 다니고 데이트도 다니고 , 아빠랑 카페를 다니며 디저트 여행을 하고 아빠랑 정말 친구 같았는데.. 19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사고가 있었죠.”
- 갑자기 찾아온 가장 사랑한 아빠의 부재와 힘든 일들.
“당시에 오빠는 군대에 있고, 엄마도 몸이 안 좋으셨을 시기라서 혼자 아버지를 보내드리게 되었어요. 후에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장례를 치르고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이었는데 제가 정신력이 강한 편이기도 하고 큰 일이 생길수록 침착하게 해결부터 하는 타입이다 보니 제 마음을 바라 볼 시간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는 성형이라는 문화도 없었고, 제가 좀 어릴 때부터 성숙한 외모에 혼혈 같은 외모였어요. 지금은 성형으로도 화장법으로도 이국적인 느낌의 사람이 많아졌지만 그땐 정말 제가 이국적인 외모였거든요.
그러다보니 어렸고 철없던 시절에 학교에서 따돌림도 좀 당했었어요. 친오빠와 친구들이 저를 예뻐하고 그러다보니 학교 선배들도 저를 예뻐해 주셨는데 그게 좀 어린 친구들 사이에 상처를 받게 됐었어요.
제가 미술을 하며 짧은 시간 내에 배운 것 없이 예술중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는데 연예계의 꿈과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은 부분도 있어서 입학을 포기하고 인문계를 갔거든요.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에 친구들에게는 재수 없는 아이가 되어있었던 것 같아요.
남들이 가고 싶어서 몇 년을 준비하는 걸 지 실력 보겠다고 테스트 본 아이처럼 낙인이 찍혀있었는데 저한테도 그 선택은 너무 많은 상처와 힘든 마음으로 한 선택이었는데 당시는 그런 부분을 낙제한 친구들과 나눌 수 없었거든요.
그 마음들을 차곡차곡 풀었어야 하는데 그런 시간을 보내지 못하면서 어린나이부터 공황장애가 있었어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이를 조금 먹고 알게 되었죠. 공황장애가 굉장히 심하단걸요. 그런 와중에 제 전부였던 아빠가 하늘에 별이 되고, 준비 없이 보낸 아빠는 엄마에게는 부분기억상실을, 오빠에게는 마음의 병을 남기고 가셨죠.

그 다음 해에 저는 갑작스런 폐수술을 받게 되었어요. 원래도 호흡기가 약했지만 많은 스트레스와 간접흡연을 견디기에는 마음이 많이 무너지면서 몸도 무너졌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금연구역이라는 것이 없어서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담배를 피웠으니까요. 그 후 다른 병이 있는 환자들도 잘 사는데 나는 이겨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노력했지만 보란 듯이 세상은 2번의 수술을.. 저에게 더 안겨 주었고.
당시 함께 한국에서 일하던 회사는 저희 엄마한테 불치병 환자랑 뭘 할 수 있겠냐는 상처를 꼽고 저는 잠깐 무너졌던 것 같아요.
퇴원하고 세상에 서있을 때,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어요. 그렇게 좋아하던 운동은 더 이상 할 수 없었고, 친구들과 카페도, 식당도 가기가 힘들었죠. 담배연기가 있는 곳은 무조건 피해 다니고. 횡단보도에 신호가 얼마 안 남았을 때 뛰는 것조차 할 수 없었어요.
밤마다 지옥 같은 시간 이었어요. 병원에서 누워있을 때에는 나가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거든요. 나와서는 정말 모든 걸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더 이상 노래도 할 수 없다는 말에 엄마 모르게 매일 밤 숨도 못 쉬게 울었던 것 같아요. 수술 후에는 우는 것조차.. 건강을 위해 참아야 했기 때문에 눈물도 참는 법을 배웠고, 남들 앞에서 숨이 차지 않아 보이는 법을 늘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아파도 안 아픈 척, 건강해보이기 위해서 모든 걸 노력하면서 모델일을 했어요.
그러면서 많은 스폰 제의도 받고, 거절하면 앞길도 막히고 정말 상처 받는 일들 투성이었지만.. 믿어주시는 엄마 덕에 그 힘든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고 대회에서 수상을 여러 번 했어요.”
- 찾아온 공황장애와 국내 최초로 수중모델 도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뮤직비디오도 화보도 많이 찍을 수 있었고, 해외활동도 활발히 하며 지냈는데 공황장애가 점점 심해지면서 힘든 시간들이 점점 늘어났어요. 그래서 이 마음을 이겨내 보고자 수중모델도 시도했어요.
주치의도 반대할 만큼 위험하고 힘든 시도였지만 수중스튜디오 대표님께서 정말 많이 도와주셔서 처음 연습하던 날 물속에서 12시간을 나오지 않고 연습했어요.
집에 가면 코피를 쏟고 목에서도 피가 나고 귀에서도 피가 나고.. 피부는 짓무르고 또 짓물렀고 모든 게 힘들었지만 해양공포증이 있어 물고기나 생물이 사는 물이 아닌 물속에서 혼자 고요히 있을 때마다 눈물이 나도 물에 흘러가는 시간들이 저한테는 조금 위안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이유이 어렸을 때 모습과 중학생 때 모습

- 주변에 사랑하는 여러 명의 친구들과 동생이 또 별이 되어 버리고..
“물속에서 연습하면서 눈물을 조금씩 내보내다 보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고, 덕분에 수중모델을 하면서 저는 저를 또한번 안아줄 수 있었어요.
그러던 중 갑자기 친동생같이 살아온, 아니 저희한테는 친동생이고 막내인 혈연동생이 하늘의 별이 되었어요. 아빠가 돌아가신지 딱 십년 째 되던 해에 저는 또 하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고, 그 해 가장 친하고 사랑했던 여러 친구들이 스스로 별이 되는 시간들이 생겼어요.
가족들은 갑작스런 동생의 사고에 또한번 마음이 무너졌고, 너무 힘든 시간이 계속 되었어요. 그러다가 코로나까지 터지고 너무너무 힘든 시간들이였지만 저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늘 믿어주시고 올곧은 교육을 해주신 부모님 덕에 정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딱 고를 수 있는 몇몇의 친구들이 있는데 정말 고맙다고 꼭 말해주고 싶네요.
너무너무 고마워.. 너희가 있어서 나는 이겨낼 수 있었어~ ㅠㅠ”
- 친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고마운 사람들에게..
너무너무 사랑하는 내 반쪽 율아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늘 내 옆에서 산소호흡기가 되어줘서 너무 너무 고마워.
나한테 행복이 뭔지 알게해 준 내 쌍둥이 동족이 너가 있어서 늘 나는 삶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어 정말 정말 고맙고 사랑해~
내 든든이 유진아
늘 힘들 때 옆에서 안아주고 다독여주고 늘 나를 믿고 따라와 줘서 너무 너무 고맙고 사랑해 힘든시간 우리 같이 잘 이겨냈으니까 앞으로도 같이 잘 이겨내자 !
나의 천사 나의 요정님 혜영이
곧 결혼 앞두고 내 힘든 시기를 항상 힐링시켜주고 나한테 고맙다고만 해주는 너한테 내가 더 고마운 게 많아 늘 힘들 때 힐링시켜줘서 고마워 오빠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
오빠도 너무 감사해요^^
현상아
긴말하지 않을게 내가 아플때마다 누구보다 늘 꾸준히 달려와 줘서 너무 고마워!
정훈아
긴말 안하고 우리 힘들 때마다 서로 옆에서 든든히 20년이나 있었는데 늘 고마워 ...
광호오빠
오빠만 생각하면 눈물이 흑흑ㅠ
오빠 늘 친오빠보다 더 옆에서 잘 해줘서 늘 들어주고 늘 안아주고 괜찮다고 해줘서 아프면 죽 해주고 너무 유명한 쉐프님의 손으로 해 준 타락죽 나 영원히 못 잊어 진짜 오빠 동생 챙겨줘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진짜 진짜 사랑해요 ~~
민호야
민호가 누나 힘들 때 써준 쪽지랑 더위사냥 정말 평생 누나가 가슴에 새기고 있어 많이 힘 들텐데.. 믿고 따라와 줘서 잘해줘서 너무 고마워.
엄마가 사랑한다. 아들~
내사랑 내새끼 내딸 같은 우리 제이드~
민경아 언니가 힘들 때 같이 울어줘서 아니 네가 더 언니보다 울어줘서 너무 고맙고
네가 가장 힘든 시기에 언니 믿고 언니 옆에서 잘 이겨내줘서 너무 고마워 앞으로 더 좋은 일 많이 있을거야 정말 정말 사랑해 ^^
천신이모
이모 이모를 만나서 정말 마음에 있던 응어리가 풀려서 처음으로 눈물을 쏟아본 갓 같아요.
어떤 부분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이모의 마음에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이모가 신경써주신 마음 덕에 지금의 저도 조금은 더 힘을 낼 수 있고 앞으로도 그 마음으로 감사히 살거에요.
이모 늘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제가 정말 많이 사랑해요~~
엄마
늘 나 믿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실어줘서 고마워요. 지금은 엄마가 너무 마음의 병이 깊지만 나 늘 그 때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어.
정말 정말 나 변함없는 꾸준한 사람인 거 알지 엄마가 나 독사같다고 했잖아 바위처럼 그렇게 늘 있을거야. 너무너무 많이 미안하고 고마워.
늘 엄마가 행복하기를 바라요.
나 늘 여기 있다는 것만 기억해줘 사랑해!!!!!
- 수중모델을 하신 내용이 재미있던데 어떤 내용인가요? 그리고 에피소드가 있다면.
“하게 된 계기는 최혁수 작가님과 소니 광고 촬영으로 몽골을 갔을 때, 제가 티는 안냈지만 공황장애와 슬럼프로 한창 힘들 때였는데, 최 작가님께서 권해주셔서 시도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재밌더라고요. 지금 제가 이 회사를 차린 이유의 제이드를 그 때 처음 알게 되었죠.
물속에서 친해진 사이에요. 물속에서 저랑 눈만 마주치면 그 친구가 너무 좋아하고 웃더라고요. 물속에서 저를 굴리기도 하고 저랑 물속에서 정말 실력이 안되서가 아니라 웃겨서 웃느라고 물 진짜 많이 먹었어요.”

- 화가에 대한 생각은 언제부터 하게 되었나요? 그리고 화가활동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를.
“어릴 때 아무래도 대상도 놓친 적이 없고 좋은 학교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다 보니까, 어머니는 제가 미술을 하길 바라셨는데, 정적으로 가만히 앉아서 할 성격도 못되고 나름 상처도 많다보니 18살 이후로 그림을 쳐다도 안 봤어요. 그런데.
양동원이라는 무브망갤러리 대표가 제가 친한 오빠거든요. 그 오빠가 저를 한 4년을 설득한 것 같아요. 그래서 국내에서는 정식데뷔를 2019년에 처음 했는데,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마마에서 첫 데뷔전을 하게 되었죠.
많은 분들께서 그림을 좋게 봐주셔서 수익금은 기부도 하고 하면서 지내고 있고 2월 달에 개인전을 작게 준비하고 있고요. 내년 페어에도 또 참여할 예정입니다.”
- 다시 인플루언서 이야기로 돌아가서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며, 어떤 철학이 필요할까요?
“다른 것보다 본인만의 색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고 남의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본인의 마음가짐과 다짐이 중요할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져버리지 않을 겸손함도, 남의 혹평이나 악평에 내가 같이 싸우지 않되, 나를 지킬 수 있고.
나를 위한 말 정도는 예의 있게 할 수 있는 당당함과 마음이 필요할 것 같고, 삶의 욕심을 버릴 줄 아는 마음이, 인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이야기한다면?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제 병에 대해서 처음 공개가 지인들과 SNS에 돌았을 때가 어떤 모델이 제가 수술한 것도 가족이 별이 된 것도, 제가 겪은 이 모든 상처들이 거짓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아픈 사람이 저렇게 열심히 촬영하고 매일 웃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고, 사람들은 제가 힘들어하면 힘든 척한다. 괜찮은 척 하면 거봐라 거짓말이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병원 기록까지 다 떼서 보이콧까지 하시고 고소 준비하시고 저와 가족이 받은 상처가 정말 너무 컸죠.
그들이 그랬을 때도 속상했는데 한 번 연애를 하면서 어떤 분이 저한테 왜 거짓말을 하냐고 하더라고요. 그 때 정말 손에 꼽게 처음으로 너무 행복하게 연애하고 사랑을 하던 와중에 그 말을 듣고.. 그래서 정말 자료까지 다 보여주려고 기록까지 다 뗐다가 참고 헤어졌죠.
증거가 있는 일들을 보여준다고 해서 제가 받은 상처가 지워지지는 않을 테니까.
심지어 증거를 보여주니 증거를 보여줘서 본인은 이런 아픈 사람들의 일들은 안 궁금한데 제가 본인을 힘들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스트레스로 한달 간 안면마비가 왔었어요.
그 시간이 정말 제게는 가장 어렵고 힘들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매체에 보여지는 모습의 이유이를 사랑하는 거지. 정말 저라는 사람의 아픔까지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낄 때, 저는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밝아 보이더니 알고 보니까 애가 너무 우울하다거나 왜 맨날 자기 앞에서만 안웃냐’고 할 때 마음이 무너지는 가장 큰 순간들인 것 같아요.
저는 그들 앞에서 안웃는 게 아니라 그저 그 부분도 제 모습이고 일을 하지 않는 제 시간에는 힘듦도 속상함도 조금은 드러내고 상대방에게 오늘은 이래서 피곤하고 힘들었다는 걸 공유하는 건데 그게 제게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라고 할 때 , 대체 나는 어떤 사람이여야 하는지 너무 속상해요.
이 모든 부분도 밝고 쾌활한 저도 못난 부분도 저에요 여러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진짜 별 게 아니었는데 제가 얼마 전에 정말 마음이 좀 힘들었거든요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고 병원을 다니면서 더 힘들었는데 조금 안 좋은 일이 겹쳐서 속이 상했던 일이 있었어요. 근데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저한테 ‘말해줘서 고맙다고 힘들었겠다면서 고생했다’고 말해줬는데 그게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뭔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늘 해주던 그 말이 정작 저한테는 제가 못해줬었던 것 같아요. 그 순간이 평생 잊혀 지지 않을 것 같아요^^"
긴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리고 30여년 기자생활을 해본 기자 입장에서 잘 안 우는데 눈물이 글썽였다.
이제 갓 30에 거의 ‘왕 인플루언서’가 된 이유이씨. MZ세대이기도 한 이들 인플루언서는 이제 가장 영향력과 공신력을 겸비한 우상이 되었다.
요즘 20대 초반이 꿈꾸는 직업 중에 인플루언서와 쇼호스트와 같은 대중들과 소통을 잘하고 리드를 해주는 직업이 가장 많다. 이들은 기존 방송이 아닌 틱톡 인스타 유튜브 같은 SNS와 영상으로 스타가 되기를 희망 한다.
이유이님을 인터뷰하면서 이들이 왜 인플루언서를 꿈꾸는지 이해를 했다. 그리고 이유이님이 어려움을 돌파하고 극복해내는 것을 보면서 MZ세대들의 돌파력에 감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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