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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진작가 강영호 “순수예술? 내 자신을 찾는 과정일 뿐”①

2011-06-29 01:19:46

“진정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들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나이 마흔이 넘어서 깨달았다. 그때부터 거울을 보기 시작했고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내 중심, 내 정체성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현아 기자] 국내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며 꾸준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는 사진가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그 손꼽히는 사진작가 중에서도 ‘춤추는 사진작가’, ‘흡혼(吸魂)의 드라큘라’와 같은 독특한 별명만큼 눈에 띄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사진작가 강영호를 만났다.

1999년 영화포스터 ‘인터뷰’를 통해 데뷔한 그는 ‘파이란’, ‘집으로’ 등 100여 편의 영화 포스터와 1200여 편의 지면광고를 촬영했다. 그의 스튜디오 곳곳에 걸려있는 최진실, 전지현, 장동건, 배용준 등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의 사진들이 그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영호 작가는 2010년 커머셜작가라는 타이틀을 등에 지고 순수예술사진 전시를 가졌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초상 사진을 모아 꾸민 그의 첫 순수예술사진전은 감성적이고 섬세한 그의 작품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었다는 평을 들었다.

그로테스한 모습부터 여성스러운 모습까지 99가지 모습으로 분장한 작품 속 그의 모습은 몽환적이면서도 고독해 보였다. 강영호 작가는 “사진은 원래 고독한 작업이다. 외로워 보일 수 있지만 외롭지는 않다. 모델을 따로 두지 않은 것은 내가 찍고 싶은 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를 찍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상업사진이든, 예술사진이든 작가는 언제나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의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상업사진을 찍으면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우리 예술합니까?’이다. 왜, 예술 좀 하면 어때서?”라고 말하며 날 쳐다봤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자 그는 “이런 연예인들이 대부분이다. 작가는 나인데, 그림은 자기들이 그리고 나더러 셔터만 누르라 한다”고 덧붙였다.

모델이 그러란다고 그럴 분이 아닌데, 말했더니 그가 당연하다는 듯 “당연히 그렇게는 못하지. 나는 순간을 그대로 잡아내는 리얼리티 작가가 아니다. 나만의 상상력으로 사진을 ‘연출’하는 것을 좋아한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기보다 적극적으로 사진을 만들어낸다. 인물사진도 아주 가까이서 머리를 만지거나 표정을 연출한다. 내가 생각한 그림이 나와야 그게 내 작품이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의 사진에는 늘 스토리가 묻어있다. 강영호가 찍었던 故 최진실의 영정사진만 봐도 그 사진 한 장에 그녀의 이야기가 모두 녹아있는 느낌이다. 그렇게 많은 사진을 찍어오면서 스스로 지치지는 않을까 물었더니 그는 “자신의 중심이 없으면 그렇게 된다. 자신의 중심이 똑바로 서면 그럴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진이든 예술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매너리즘이다. 실제로 매너리즘의 진정한 의미를 알면 그것이 부정적이지 않다. 매너리즘이란 극한으로 어떤 것에 몰두하는 것이다. 요즘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면서 사진을 포함한 예술분야가 애매하게 흘러가고 있다. 예술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매너리즘, 즉 몰입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의 매너리즘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맨 처음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 또한 매너리즘이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혹은 해야 한다는 극한의 상황이 주어지면 매너리즘에 빠진다. 내가 중심이 없을 때에는 외부에서 모티브를 찾아 나섰다. 그게 바로 사랑이다. 여자친구를 예쁘게 찍어서 칭찬받고 싶은 한 가지 마음이 나에게 사진을 잘 찍게끔 만들었다. 자기중심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허한 마음을 사랑으로 충족시키려고 한 것이다”라고 털어놨다.

말하는 도중 나에게 조심해야 할 남자타입에 대해서 얘기하던 그는 다시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다 여자친구와 헤어지자 여자친구 대신 날 칭찬해 줄 사람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돈과 명예, 유명인사와의 친분과 같은 세속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것 또한 내 중심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 내 중심은 내 스스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강영호 작가는 “진정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들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나이 마흔이 넘어서 깨달았다. 그때부터 거울을 보기 시작했고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내 중심, 내 정체성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라며 자신을 소재로 한 첫 번째 사진전에 대해 설명했다.

직접 음악에 맞춰 거울 앞에서 춤을 추며 사진을 찍는 퍼포먼스를 보였던 그의 첫 사진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롭게 각인됐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본질은 남들과 다른 것이다. 때문에 늘 어떤 것을 보여줘야 하나 고민한다. 내 한계를 벗어나고 싶다. 내 한계는 스튜디오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있는 그대로를 촬영하는 것이 어렵다. 내 식대로 있는 그대로를 잡아내는 것, 그게 내 다음 목표다”라고 다음 사진전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사진출처: 강영호 사진전 '턱을 기르는 왕'(좌측), 영화 '파이란' 포스터(우측 상단), 영화 '인터뷰' 포스터(우측 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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