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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바윗길을 가다(33) 울산암 비너스길 / 나는 비너스를 보았다

2014-09-25 16:17:34

[김성률 기자] 잠실역 1번 출구에서 만난 일행을 태운 차는 시원하게 고속도로를 달린다. 함께 차에 탑승한 이들은 송기훈, 이훈상, 김학석 그리고 기자 이렇게 네 명이다. 기자를 제외하면 모두 경동동문산악회(이하 경동OB)의 OB회원들. 목적지는 설악산, 조금 더 정확히는 울산암의 비너스길이다.

경동OB와 비너스길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1987년 8월13일, 고 송석인 군(39회, 1983년 경동고 졸업)이 고난이도의 바윗길인 비너스길을 등반하다 크럭스 구간인 넷째 마디 등반을 마치고는 추락하여 짧은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이날 등반은 이를테면 그의 추모등반이었고 경동OB와 YB 즉 경동고등학교 산악부의 고등학교 2학년생들 3명과 합동등반을 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경동OB의 송기훈 선생은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 12편 인수봉 아미동길( 젊은 알피니스트를 부르는 행복한 바윗길 / 2011년 3월15일자 기사)편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 후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 29편 선인봉 재원길(알프스에서 피어난 꿈 선인에 잠들다(2011년 10월25일) 기사에 많은 도움을 준 산악인이다. 선인봉 재원길 기사는 고 유재원의 후배들인 경동OB 회원들과 함께 등반하기로 했었지만 사정상 그렇게 하지 못했고 결국 송기훈 선생과는 처음 이야기가 나온 뒤 1년 3개 월여만에 비너스길에서 만나게 된 셈이다.


이훈상(경동고 35회, 1979년 졸업, 경동OB 산행대장)씨는 선인봉 재원길을 직접 개척한 인물이다. YB시절 인수봉과 선인봉의 무수한 바윗길들을 패기와 젊음만으로 온사이트 선등한 기록을 갖고 있는 그는 감히 '시대를 앞서간 클라이머'라고 할 수 있는 선배 유재원의 기상을 생각하며 재원길을 개척했다. 등반을 그만 둔지 20여 년 만에 다시 산으로 돌아온 이훈상. 63킬로그램으로 바위 위를 훨훨 날던 그의 체중은 이미 90킬로그램이 넘어있었다고 한다. 등반을 다시 시작한 그의 몸은 그러나 눈에 띄게 지방을 털어내며 산사나이의 모습을 다시 닮아가고 있다.

휴게소에서 밤참으로 우동을 한 그릇씩 비운 일행은 밤11시에 설악산국립공원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일행은 안개비가 뿌리는 산길을 쉼 없이 올라 울산바위 마지막 매점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미리 비박지에 도착한 경동OB와 YB회원들은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현장에는 경동고등학교가 배출한 걸출한 산악인 유학재(경동고 36회, 휠라스포트 기술고문) 씨도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는 겨울 토왕폭에서 장난삼아 빙벽등반을 하다 등반 신기록을 세우는가 하면, 스푼을 두들겨 하켄으로 사용하고 대못을 펴서 등반용 장비 훅으로 만들어 등반에 성공하는 등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운 것도 아닌데 그의 글은 글 쓰는 이들의 손을 자못 심각하게 떨리게 만들고 생동감 있는 사진은 전문사진작가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다재다능한 그의 능력은 곧 영화로도 만날 모양이다. 1997년에 있었던 한국산악회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가셔브룸 4봉(7,952m) 원정대로 참여할 당시 그가 직접 촬영했던 필름들이 14년 만에 새롭게 단장하고 다큐멘터리 영화로 개봉을 준비중이기 때문이다. 등반당시 세계의 산악계가 격찬한 등정기록을 담은 영화는 박준기가 감독을 맡았다. 제목은<우리는 그곳에 있었다>.


목에 길게 건 슬링줄에 즐기는 간식인 오징어를 꿰어 차고 등반을 하는 산악계의 기인 아닌 기인이면서도 YB후배들을 위해 그동안 애지중지 모아두었던 열여섯 개의 배낭을 가족들과 함께 빨아 말려서 수통, 릿지화와 함께 기증했다는 유재학의 스토리는 들을수록 재미있고도 감동적이다. 그에 대한 풀스토리는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그가 미국에서 가져왔다는 ‘타닌제거기’에 와인을 따르자 ‘샤르르륵’ 신기한 소리를 내며 잔을 채운다. 내일 캠 회수기를 준비하라는 송기훈 선생의 충고에, 미처 장비를 준비 못한 대원들이 캠회수기를 찾는 사이 그는 이내 젓가락 하나로 캠회수기를 만들어 내는 신기(神技)에 가까운 기술을 보여줘서 일행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토종 등반장비 메이커인 트랑고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경험이 있다. 나이와 달리 개구쟁이 같은 풍모의 유학재 씨는 어릴 적 코를 다쳐 약간 높은 비음으로 구수하고도 재미있는 산악 경험담을 풀어놓으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좁쌀 막걸리 딱 한잔만”으로 시작된 설악의 밤은 이내 막걸리 큰 통 여러 병들을 쓰러뜨리며 깊어가고 있었다.

등반을 위해서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다섯 시에 기상을 했지만 아직 안개가 자욱하다. 산채비빔밥으로 이른 아침을 먹고 날씨가 조금 개이기를 기다려보지만 어쩌면 비가 내릴 것도 같다. 등반이 적이 염려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놀아도 바위 앞에서 놀아야 한다”는 이훈상 씨의 지론에 따라 행동식으로 ‘특제 약밥’을 배낭에 챙겨 넣고 울산바위로 올라간다. 오늘 등반은 두 개의 팀으로 나누어 비너스길과 계단슬랩길을 오르게 된다.


3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 마주한 장엄한 울산바위는 삼형제바위로 일컬어지는 적벽과 장군봉 그리고 무명봉과 함께 설악을 대표하는 클라이머들의 메카다. “금강산에서 열리는 전국바위콘테스트에 참가하려고 멀리 울산을 떠나 먼 길을 올랐다가 너무 힘이 들어 경치 좋은 설악에 그냥 머무르게 되었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울산바위는 해발 873미터에 2.8킬로미터로 길게 이어지며 크고 작은 암봉 30개를 빚어 놓았다.

울산바위는 단일암벽으로는 국내 최대의 규모다. 등반가능한 바위의 폭은 약 600미터이고 등반고도는 약 200미터. 바윗길은 비너스길 이외에도 난이도에 있어 그 이상 이라는 인클길(5.12a), 인클주니어길(5.11b)을 비롯해서 경대길(5.9/A0), 요반길(5.10d), 은벽길(5.11b) 등 30개에 이른다.

그밖에 울산바위에는 거의 모든 바윗꾼들이 한번은 가고 싶어 하는 돌잔치길(5.11b)과 하나되는길(5.9), 나들이길(5.7) 등 릿지코스가 자리 잡고 있다. 울산바위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바위와 바윗길들이 모인 풍성한 돌의 잔치가 매일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우리가 등반할 비너스길은 1974년도에 김동욱, 박일환, 유기수 씨 등이 개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너스길은 모두 여섯 마디에 200미터의 크랙과 침니로 구성된 상급자용의 바윗길이다. 최고난이도는 5.10c에 불과하지만 강인한 체력과 담대한 심장이 없이는 결코 선등을 설 수 없는 바윗길이다. 단순한 비교는 어렵겠지만 혹자는 “암장실력으로치면 5.12급은 되어야 비너스길을 선등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비너스길의 바로 오른쪽에는 울산암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인클길이 자리 잡고 있다. 인클길은 언제 오를 수 있을지 등반도 전에 욕심부터 내본다.


이 바윗길에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왜일까? 비너스길 여섯째 마디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나신으로 엎드린 채 풍만한 엉덩이와 늘씬하고도 탄력 있는 다리를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비너스와도 비견할만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사람들은 이 바위를 처녀바위라고 부른다.

그동안 수도 없이 들었던 그길. 바로 울산암 비너스길 첫째 마디 앞에 선다. 선등은 김학석(경동고 38회, 1982년 졸업), 세컨은 이훈상, 3번은 '가셔브룸의 사나이' 유학재, 4번이 기자 5번이 박성호(50회), 말번은 이성종(41회, 1985년 졸업, 경동OB 부등반대장).

첫째 마디의 등반선을 찬찬히 살피던 김학석 씨는 아직까지 젖어있는 바위도 아랑곳 하지않고 과감하게 첫째 마디를 출발한다. 빌레이를 보는 이훈상 대장의 자일을 빼는 손길이 과감하면서도 섬세하게 느껴진다. 오랜 등반 경력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이다. 이훈상 대장은 다소 불편한 발의 상태 때문에 릿지화로 등반한다. 유학재 씨는 몸이 가볍다. 살살 바위를 잡는가 싶더니 바위를 달래듯하다가 금방 첫째 마디를 종료하고야 만다.

드디어 기자의 차례. 아직도 차갑게 젖어 있는 바위를 잡고 출발은 하였는데 홀드가 약간 흐르는듯하고 발재밍이 만만치 않아 한두 번 미끄러지는 등 쉽게 출발을 못한다. 출발은 했지만 바위를 잡고 뜯기가 쉽지만은 않다. "과연 5.9의 난이도가 맞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첫째 마디. 그래도 큰 어려움이 없이 등반을 마치고 빌레이를 본다.


둘째 마디. 대형 캠을 주렁주렁 매단 김학석 씨가 선등으로 출발한다. 어제밤 "비너스길을 온사이트로 선등하는 기분이 어떠냐. 떨리지는 않으냐"고 물었더니 "떨리는 것은 전혀 없고 비만 내리지 않으면 무조건 등반은 하고야 만다"고 답한다. 아마도 심장이 두 개 정도는 있는 모양이다.

침니를 출발하면 침니 중간에 볼트가 하나 나오고 크랙을 열심히 뜯다보면 후등자 확보와 선등자 빌레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양호한 테라스가 나온다. 등반거리는 약 30미터. 난이도는 5.10a이지만 고도감과 함께 한 두 단계는 더 힘들게 느껴진다. 둘째 마디를 끝내니 손가락에 상처가 나기 시작한다. 박성호 씨에게서 스포츠클라이밍 테이프를 빌려 처음으로 손등에 테이핑이란 것을 해본다.

셋째 마디는 비너스길 여섯 마디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다고 평가되는 구간이다. 처음에는 침니를 따라 오르다가 오버행을 지나 반침니로 등반해야 한다. 반침니 구간에는 반드시 캠을 설치해야 한다. 하기는 이곳뿐만이 아니라 등반 중간에 안전과 후등자를 위해서라도 캠을 여러 곳에 설치하는 배려가 필요한 구간이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 발과 손을 열심히 재밍하다보니 손가락 발가락이 다 아파온다. 셋째 마디는 기자의 실력으로 도저히 자유등반이 어렵다. 부끄럽게도 유학재 씨가 설치해놓은 슬링줄들을 잡고 등반을 마친다.



넷째 마디. 난이도는 5.10a이지만 등반거리가 50미터에 이르고 수직절벽에 가까운 등반선은 그야말로 고도감이 대단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완력이 필요한 구간이다. 그래서 이 구간이 사실상의 크럭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넷째 마디는 볼트따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벽이 바짝 서있어 퀵드로우를 잡고 오른발을 볼트에 올려놓기가 쉽지 않다.

유학재씨의 등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기자도 레더(사다리)를 이용하여 등반하기로 한다. 아래볼트에 짧은 사다리를 걸고 오른 발을 사다리에 올린 다음 다리를 밀어 바로 선다. 다음에는 윗볼트에 긴 사다리를 걸고 올라타서 아래 사다리를 회수한 다음 다시 윗볼트에 짧은 사다리를 건다. 이렇게 볼트따기 구간이 끝나면 왼쪽 바위로 트레버스를 해야 한다. 넷쩨 마디의 크럭스 구간이다. 왼쪽 바위로 가까스로 넘어가게 되면 여기부터는 아직도 남은 힘을 모두 써버릴 수 있는 장쾌한 레이백 구간이 나온다. 그러나 정말 장쾌한 기분이 들까? 위를 보면 한숨이 나오고 아래를 보면 아찔하기만 하다.

등반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되는 초보시절, 바윗길 취재를 따라 나섰다가 등반이 미숙하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자 "염병한다"는 욕아닌 욕까지 들어야했던 기자는 등반인원이 여섯 명, 1인당 두 시간을 등반시간으로 잡는다는 비너스길에서 혹시라도 등반에 지장을 줄까봐 혼신을 힘을 다해 레이백을 뜯는다. 그러나 레이백 3분의 2지점이 끝나자 숨가쁨이 몰아친다. 마침 서있을 수 있는 공간이 나와 그 자리에서 바위에 머리를 처박고 긴 호흡을 몰아쉰다. 더 쉬고싶지만 힘을 내서 마지막 남은 레이백 구간을 마치니 양호한 확보점이 나타난다.

이제 크럭스 구간은 모두 돌파하고 다섯째 마디와 여섯째 마디가 남았다. 다섯째 마디는 거리 30미터의 난이도 없는 완경사 슬랩이어서 별 어려움 없이 올라 갈 수 있다. 그리고 여섯째 마디에서 5미터 정도의 크랙을 잡고 올라서면 비너스와 진한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된다.


길고 늘씬하면서도 탄력 있어 보이는 비너스의 다리, 즉 길게 뻗어있는 두개의 크랙길은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기자는 그 다리를 붙잡고 일어날 수 없었다. 넷째 마디 등반을 마치니 비가 후드득 떨어졌고 시간은 이미 오후 7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유학재 씨가 잠시 고민하는듯하더니 선등자와 의견을 교환한 후 등반종료를 선언했다.

비너스는 이날 자신의 모습을 살짝 드러내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다 멀리서 찾아온 낯선 이방인과의 포옹은 결코 원치 않았던 것일까? 비너스길 크럭스 구간은 모두 마쳤지만 곰바위가 기다리고 있는 정상까지 치고 올라가지 못한 것은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안전이 우선인 것을.

짙은 안개 속으로 하강을 하는데 역시 울산암을 등반하고 있는 경동산악회 YB팀의 힘찬 구호가 들려왔다. ‘케이 락!(K ROCK)!’ 회원들이 서로를 부르는 구호의 외침이었다. 한쪽에서 ‘케이 락’을 외치면 다른 한쪽에서 다시 한 번 ‘케이 락’을 불러 응답한다. 이 구호는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안전을 다짐하는 그들만의 등반구호다.



경동OB는 YB인 경동고등학교 산악부가 있어 행복하다. 나어린 후배들은 60대가 넘은 대선배를 스스럼없이 형이라고 부른다. 손주를 볼 나이가 된 큰 형들도 한참 어린 후배들의 형 소리가 그리 싫지만은 않다. 어딘가 더 젊어지는 느낌이다.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모여서 하나가 되어 뒹굴고, 산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그들. 산에서 든든한 '빽'이 있는 젊은 YB가 욕심나고, 내일의 희망을 담은 보배와도 같은 후배들이 있는 OB가 부럽다.

장장 40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그들을 하나로 묶은 자일이 다시 또 내일로 굳건히 이어지기를, 저 멀리 알프스로 고 유재원의 추모등반과 창립 50주년 기념으로 아마다블람 등반을 준비하고 있는 그들의 계획들이 모두 순조롭게 이어지기를 바라며 비너스길을 뒤로 한다. 다시 또 힘찬 외침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케이 락~!’ ‘케이 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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