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영화, 스타일을 말하다] 60년대 뜨거운 청춘들이 외치다, 피스!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

2014-03-18 11:15:26

[김진현 기자] 한 해 한국에서만 ‘록 페스티벌’이라는 이름 하에 벌어지는 축제가 10여 개가 넘는다. 젊음과 일탈,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이러한 페스티벌의 시초는 1969년 미국 뉴욕 남동부 우드스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실제 기획자인 엘리엇 타이버의 자전 소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1960년대 미국은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던 시기.

이에 탈사회적 성향을 가진 ‘히피족’들이 젊은 층들 사이에서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들은 기성세대의 가치에 맞서 새로운 시대정신(Peace)을 내세우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차림새에서부터 기득권층과 확연한 구분을 두었는데 남녀 할 것 없이 길고 터벅한 머리를 고수했으며 챙이 넓은 모자나 깃털 장식의 헤드피스, 에스닉풍의 원피스나 조끼 등을 주로 입고 다녔다. 또한 샌들 혹은 맨발차림으로 거리를 활보 했으며 면 소재의 의상을 주로 착용 했다.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은 이러한 히피 문화를 배경으로 그들이 표출하고자 했던 이상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탄생과정을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헐리웃에서 가장 독보적인 아시안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이안 감독이 직접 메가폰을 잡았으며 섬세한 연출력과 참신한 소재로 제 62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되기도 했다.

억압된 자유와 인간성을 본연의 것으로 되돌리고자 했던, 물질주의와 배금주의가 만연했던 사회 풍토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되찾고자 끊임없이 저항 했던 ‘히피족’. 그들의 젊음과 이념적 가치가 발현됐던 1969년 우드스탁으로 떠나보자.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이 평론가들 사이에서 유독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유는 1969년 당시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완벽히 재현했기 때문이다. 특히 의상을 담당했던 조셉 G 올리시의 공이 컸다. 그는 무려 50곳의 빈티지 매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아라베스크 문양의 티셔츠나 롱 스커트, 찢어진 청 스커트 등 60년대 옷을 공수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주인공을 포함한 엑스트라)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대를 혼동케 할 정도로 완벽한 히피 스타일링으로 극에 몰입도를 높였다.

형이상학적인 패턴이 돋보이는 옷부터 마치 인디언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커팅라인의 레더 조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와 소재가 결합된 의상들은 관객들의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또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던 히피족들은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 인위적 손질이 배제된 헤어스타일로 그들의 감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순수한 영혼’을 우상시 했던 그들은 샌들이나 맨발을 선호했고 상의를 탈의하거나 아예 옷을 입지 않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딱히 제약을 두고 스타일링을 하진 않았지만 히피여성들은 보통 밑위가 긴 부츠컷과 잔잔한 플라워 패턴의 블라우스를 매치하거나 오리엔탈적인 느낌이 강한 면 소재 티셔츠와 롱스커트를 함께 착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이에 더해 자신이 손수 제작한 뱅글이나 헤드피스, 두건, 모자 등으로 각자의 개성을 표출했다.

성의 경계를 불명확하게 여겼던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남성 패션도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그들은 여성에 비해 조금 더 자유로운 탈의가 가능했으며 사이즈가 큰 팬던트 목걸이나 덥수룩한 수염으로 가공되지 않은 남성미를 풍겼다.
(사진출처: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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