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나 홀로 디자이너 '엘보튼' 도전기 ①

2009-05-31 19:32:02

이진윤 디자이너는 국내 신진 디자이너의 새로운 바로미터를 꿈꾼다.

고집스러운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자존심은 지키되 국내 패션 시장이 봉착한 허들을 넘어 세계 패션의 중심으로 나갈 수 있는 시크릿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2년 전 서울컬렉션을 마지막으로 잠적했던 그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자신의 작업실에 다시 나타난 이유도 더 높이 날고 싶은 뚜렷한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움직였지만 결국은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바둥거렸던 ‘국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날갯짓을 그는 지금 막 시작했다. 바로 신진 패션 디자이너의 새로운 로망으로 부상한 망고 주최의 ‘엘보튼(El Botn) 패션 어워드’가 그 이유다.

그는 2번째를 맞는 ‘제2회 엘보튼 패션 어워드’에서 전 세계 수천명의 디자이너 중 최종 10명의 후보에 꼽혔다. 그리고 단 한 명의 그랑프리를 가리는 최후의 레이스를 한 달 앞두고 있다. 이 10명의 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수상자나 다름없고 이미 이 10명에게는 1만8000유로(약 3600만원)의 상금이 주어졌다. 아시안 디자이너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일.

현재 이 10명의 디자이너 가운데 유러피안이나 아메리칸이 대부분이며, 뉴질랜드 국적의 한국계 한 명을 제외하고 아시아인으로는 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어워드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아마추어 전이 아니라 2회 이상의 컬렉션 참여 경력이 조건으로 붙은 준 프로들의 경연장이다. 이번에 참여한 디자이너들 중 일부는 이미 세계적인 편집숍에 자신의 브랜드를 판매하고 있을 정도다.

무엇보다 엘보튼 어워드가 주는 매력은 30만 유로(약 6억원)라는 적잖은 상금도 물론이지만 한국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느끼는 한계상황을 돌파할 ‘보물 지도’가 주어진다는 면에서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렵다. 이 어워드의 그랑프리는 우승 자체만으로도 이름을 띄울 수 있으며 망고의 후원으로 유럽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할 수 있다. 또한 망고의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자신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으며, 원한다면 망고 사 입사도 가능하다. 망고와의 콜래보레이션 작업도 물론이다.

작년 4주 남기고 1회 엘보튼에 도전, 고배
이 어워드는 수 천명의 응시자 중 망고위원회에 의해 50명의 결선 진출자를 고르고 다시 여기서 10명을 걸러 최종 우승자 1명을 가려낸다. 엄격하고도 공정하고 신중한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데 영국의 세인트 마틴 스쿨, 이탈리아의 마랑고니, 프랑스의 프랑수아 모드, 벨기에의 엔트워프, 스페인의 수페리올 등 세계적인 5개의 패션 스쿨이 후원함으로써 강력한 산학연계를 과시하며 유럽 패션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수년간의 서울컬렉션 참가, 보따리를 싸들고 참여했던 파리 프레타포르테와 미국의 매직쇼 참가, 동대문 쇼핑몰에서의 영업적 성과 등을 통해서도 언제나 봉착했던 주제인 ‘과연 글로벌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한방에 해결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말 그대로 ‘기적’을 꿈꿀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그가 이 기회를 부여잡고자 하는 의지는 당연하다.

최종 레이스를 준비하는 그를 만나기 위해 다시 찾은 그의 가로수길 작업실은 고즈넉했다. 원래 두 대의 미싱이 세간살이의 전부였지만 지난 3월 촉박해진 일정 때문에 미싱이 하나 더 늘었다. 불과 2년 전만해도 그는 이 작업실에서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진윤은 이미 대학생 때 ‘파티진’으로 일약 촉망 받는 스타 디자이너 반열에 올랐으며, 21세기 우수 인재상 대통령상 수상을 시작으로 각종 콘테스트에서 대상 등 6개 부문의 상을 수상했다.

제2회에 도전 … 최종 10위권 안에 들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홍대앞과 가로수길 등 국내 매장 운영과 더불어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파리 프레타포르테 수주 박람회 참가 등 외국 시장 진출에도 열정을 보였다. 쌈지돈을 털어 서울컬렉션에도 부지런히 참여했다. 어린 디자이너치고는 참으로 치열했다.

학업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 홍익대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는 진지하게 ‘패션’을 받아들였으며, 진정성이 깃든 패션을 제품으로 완성하고 싶었다. 그는 다양한 영역에서 스스로를 담금질했지만 열릴 수 있으리라 믿었던 많은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기사제공: 패션비즈 함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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