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나 홀로 디자이너 '엘보튼' 도전기 ②

2009-06-01 19:15:33
이진윤은 지금 과거의 영광과 열정을 뒤로한 채 ‘스페인’이라는 유럽 패션의 변방을 바라보며 패션 용병의 길을 자처했다.

‘제1회 엘보튼 패션 어워드’가 아니었으면 그는 지금쯤 영국 런던의 비비안웨스트우드 하우스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스스로 약속한 진정성이 담긴 패션을 하고 싶어 국내에서의 모든 활동을 접고 해외에서 진로를 모색하던 중 지난해 비비안웨스트우드에 지원했으며, 마침내 면접을 통과하고 최종 입사 허락을 받았다. 그는 조용히 한국을 떠날 참이었다. 전화번호도 바꾸고, 매장과 사무실도 내놓았으며, 차도 팔았다. 지인들과는 서서히 연락을 끊었다. 초라하지 않게 조용히 잊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비안웨스트우드 입사를 앞둔 시점에 엘보튼 패션 어워드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접속한 인터넷에서 본 30만유로의 상금과 다양한 특전이 보장된 망고 패션 어워드는 한순간에 그를 매료시키고 그의 꿈이 됐다. 세계에서 응모한 수천명의 디자이너 가운데 50명을 뽑고, 또 그 가운데 10명을 뽑아 1명의 그랑프리에게만 30만유로를 준다는 내용도 솔깃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망고가 가진 유통 채널을 판매 루트로 활용할 수 있고 시상식에 전 세계 프레스들이 취재를 온다는 사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그를 전율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도전했다. 결심이 서자 어워드 최종 마감을 4주 앞두고 서둘러 응모 준비를 시작했다.

비비안웨스트우드 입사 티켓 포기하다
그는 반신반의했다. 비비안웨스트우드 입사를 앞두고 있었으며, 너무 늦은 시점에 시작한 것이어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확신이나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밀어붙였다. 결국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참여한 ‘제1회 엘보튼 패션 어워드’에서 그는 50위권 안에 드는 결과로 만족해야 했다. 이 어워드 참가를 계기로 지난해에 한국을 떠난 그는 런던으로, 런던에서 스페인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짐을 풀고 다시 작업실에 주저앉았다. 짧은 시간에 허겁지겁 만든 작업이었기에 실망도 크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시간을 갖고 촉각을 곤두세워 모든 에너지를 손끝으로 담아낸다면 승산이 있는 게임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망고 어워드를 준비하면서 그는 디자이너 본분을 향한 성공의 실마리 하나를 풀었다. 그 실마리는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 6개월 만에 다시 열린 이 어워드에 또다시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자신감이 생긴 그는 모든 것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 길이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자멸의 충동일지라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안 되더라도 런던발 비행기표를 또 다른 가슴 한 구석에 숨기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정진했다.

‘제2회 엘보튼 패션 어워드’에서 그는 10명의 최종 후보에 뽑혔다. 그러나 정작 망고측에서 10명의 최종 후보로서 그랑프리를 준비하라는 통보가 왔을 때 그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세계적인 패션하우스에서 새로운 디자이너의 세계를 경험할 것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또다시 도전을 시작할 것인가.

섬세한 손맛 발휘한 미니어처로 1단계 성공

결국 그는 후자를 택했다. 그가 생각하는 패션 디자이너는 모름지기 자신의 이름을 내건 패션하우스를 이끄는 것이다. 그 스스로 자신의 본분을 알았기에 선택은 쉬웠다. 한때 잘나가던 신진 디자이너 이진윤이 아니라 패션의 변방 대한민국의 신진 디자이너로 세계를 겨냥한 외롭고 바보스러운 그의 도전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50명에 들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부담감이 있다. 무엇을 보여줘야 할까. 어떻게 해야 유럽의 전문가 심사위원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서양 사람들과 확실하게 차별화한 작품을 보여줄 수 있을까. 방향이 확실해졌다. 바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섬세하고도 완성도 높은 손맛이었다.

그는 10명의 최종 후보 리스트 때 제출한 ‘오로라 아우라’란 포트폴리오를 통해 한국인의 손맛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가 선보인 손맛은 다양한 재료와 버무려 일러스트, 도식화, 소재 개발을 토대로 미니어처로 작품을 제작해 제출했다. 이 미니어처의 완성을 향한 피말리는 준비 시간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아주 미세한 작업이었기에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이 소요됐다. (기사제공: 패션비즈 함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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