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나 홀로 디자이너 '엘보튼' 도전기 ③

2009-06-01 19:15:43
10명의 최종 후보에 오른 뒤 그랑프리를 향해 뛰고 있는 지금도 그는 하루하루 시간을 쪼개가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

상금의 일부를 과감히 투자해 손맛을 살린 테일러링을 주말마다 다시 배웠다.
디자인의 기본이지만 그 동안 간과했던 패턴에서 봉제까지 기초부터 다시 배우면서 고착된 관습의 허울을 벗고 진정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과정을 차근차근 다시 밟았다. 이브생로랑의 스모킹 수트는 남성복을 알아야 재단할 수 있는 것이고 베라왕의 총천연색 드레스들은 서양 복식사를 알아야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데님을 넘어 캐시미어 실크 가죽 등 그 동안 컬렉션에서 조금씩 선보였던 다양한 소재와 수입 소재들을 재단해 옷을 짓고 있다. 의상 제작의 핵심은 기본으로부터의 출발이다. 그가 제안하는 컨셉이 바로 이 점이다.

인체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보호 및 보정 기능을 위해 속옷을 입고 코르셋을 착용하는 기본에 착안했다. 그리고 재킷의 완벽한 테일러링을 위해 안감과 겉감 사이에 말총 마 울 등 다양한 패드와 심지를 넣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옷과 옷, 겉옷과 속옷 사이에 공간을 표현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인체를 완벽하게 이해한 뒤 코르셋과 보디컨셔스를 바탕으로 새롭게 만들어낸 볼륨이 그의 촉각을 자극했다. 그는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의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지난해 런던에서 지내며 작품과 ‘코르셋’을 찾기 위해 그는 런던의 도서관을 뒤졌다. 한 달 동안 도서관에 상주하며 1950~1960년대 코르셋의 아카이브와 사진, 문서 등 모든 자료를 모았다.

더불어 한국의 멋을 시각적으로 재해석했다. 갓과 상투의 공간에서 보여지는 시스루를 블랙 오간자 특유의 테일러링으로 완성하고 옛 여인들의 머리 장신구인 떨잠으로 키네틱 아트를 표현했다. 프린지와 오간자 속에서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또 팬츠의 패턴은 허리를 강조하고 엉덩이 부분에 풍성한 실루엣을 주어 팬츠 하나로 여성스럽고 섹시한 멋을 낼 수 있는 입체 패턴은 이번 어워드의 준비 과정에서 얻은 최고 성과물이었다.

파티진(Party Jean) 스타에서 패션 용병으로
그는 또다시 해야 할 일과 디자인 사고의 전환을 맞고 있다. 즉 ‘아름다움’에만 집중했던 지난 시절의 이기적인 미의식에서 벗어나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쌍방향 미의식을 추구하게 됐다. 그는 이제서야 소비자의 마음을 읽게 되었다고 말했다.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제품은 쉽게 잘 만들어야 하는 과정과 유니크한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지 섬세한 터치가 관건은 아니라는 점을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두 차례의 어워드를 준비하며 그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 자신감만 있었던 과거를 돌이켜 보았으며, 정신없이 변하는 사회의 혼돈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성장하는 방법도 알게 됐다. 바로 디자이너로서 거듭된 반성과 성찰, 다짐이었다. 이진윤 디자이너가 첫 번째 실패를 무릅쓰고 ‘엘보튼 패션 어워드’에 재도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울퉁불퉁 다졌던 패션 디자이너의 길에 또 하나의 ‘길’이 되겠다는 것이다.

진정성 깃든 패션 제품 완성을 꿈꾸다
외국 패션계에는 배커라는 직업이 있다. 바로 젊고 유능한 디자이너의 스폰서를 말한다. 능력은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젊은 디자이너를 발굴해 시장성이 있는 브랜드로 키워내는 사람들이다. 이들 배커는 컬렉션이 열릴 때마다 바이어들과 함께 새로운 스타들을 발굴하기 위해 세계 5대 컬렉션을 돌아다닌다.

마치 길거리나 오디션으로 예비 스타를 발굴해 톱 스타로 키워내는 연예 매니지먼트와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스타 시스템의 주도를 기획사와 디자이너 누가 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미 검증된 해외 브랜드만 들여오고 검증된 디자이너와의 콜래보레이션에만 관심을 보이는 국내 패션 브랜드와 백화점 색깔에 맞는 완사입이 아닌 매장 임대에만 주력하는 국내 백화점 유통의 왜곡된 현실이 수정되지 않는 한 이진윤 디자이너와 같은 패션산업의 빅팀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모두가 한국 땅을 등질 것이다. 이러한 암울한 대한민국 패션의 현주소에서 세계 시장을 향한 이진윤 디자이너의 도전은 앙팡지고 옹골차다.

실력으로 세계의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과 경쟁하고자 유럽행 비행기표를 끊은 디자이너 이진윤은 스스로 이번 어워드에 임하면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자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푸른색이 될지 붉은색이 될지 그 역시 결과는 알 수 없다. 다만 한국 패션의 현실에 좌절하는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과 대학에서 공부하는 패션 학도들에게 ‘이런 길도 있다’라는 새로운 바로미터를 몸으로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그가 세계 패션의 변방인 대한민국의 디자이너로 태어나 짊어져야 하는 운명적인 업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업보는 희망으로 귀결된다. 그의 치열한 현실과 좌절, 또 한 번의 도전이 희망을 찾게 한다.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 가라앉은 듯 다소곳이 깔려 있던 ‘희망’이었다. (기사제공: 패션비즈 함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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