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디자이너 릴레이 인터뷰] 최범석 ①

이선영 기자
2009-06-20 19:35:51

“날라리 노점상 뉴욕 컬렉션에 서다”

국내 패션계에서도 해외 유명 디자이너 부럽지 않은 스타 디자이너들이 화제다. 최근 인터넷 쇼핑몰부터 패션 브랜드까지 디자이너의 이름을 건 브랜드가 대세.

많은 셀러브리티들은 기존의 브랜드가 아닌 유니크한 감각의 디자이너 브랜드를 찾고 있다. 또한 서울이 ‘2010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되면서 국내 디자이너들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패션계의 핫 아이콘, 디자이너 최범석

"남들 공부할 때 전 놀았잖아요. 그러니 빨리 흡수해야죠. 패션은 대중문화거든요. 절 마냥 부럽게 보는 사람도 있는 반면 워커홀릭이라고 흉보는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중요한 건 제가 즐겁다는 사실이죠. 그 즐거움을 나누는 일이 패션이니까요."

전통적인 디자이너들이 모델이나 배우의 뒤에서 스타일을 완성해주는 데 그치는 것에 반해, 디자이너 최범석은 그 자신이 ‘제너럴 아이디어’를 상징하는 모델이자, 세계무대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21세기형 디자이너다.

동대문에서 시작해 패션의 본고장 파리까지 진출한 그의 이력은 맨손으로 바닥부터 시작하는 이들에게 많은 희망을 안겨준다. 순수하게 패션 자체를 즐기지만, 자신의 옷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싶은 야망을 숨기지 않는 남자. 그를 만났다.

‘동대문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뗐다. 고졸의 콤플렉스도 씻었다. “2003년 서울 컬렉션 참가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어요. 이후 제 이름 뒤에는 ‘주목받는 신진 디자이너’라는 설명이 따라붙었죠. 패션쇼가 끝나자 연예인들이 제 옷을 입겠다며 먼저 연락을 해 왔고, 잡지의 인터뷰 요청이 이어졌어요.”

그는 디자이너의 감각이나 실력보다 출신이 중시되던 당시 디자인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았다.

파리의 유명 백화점 프렝땅과 봉마르셰에 진출한 서른두 살 청년 디자이너 최범석. 젊은 나이에 파리까지 진출한 촉망받는 디자이너지만 그의 이력은 매우 독특하다.

학력은 고졸이 전부. 해외 유학은커녕 정규교육과정이나 패션아카데미에서 공부해본 적도 없다.

19살, 그는 홍대 앞 외진 골목에서 노점상으로 옷 장사를 시작했다. 노점상에서 동대문으로, 동대문에서 압구정동으로 진출. 결국 파리의 유명 백화점에까지 입성했다.

그의 저서 '세상의 벽 하나를 빌리다'(북하우스)에는 홍대 앞 건물의 벽을 빌려 옷 장사를 시작했던 그가 세계무대에 진출하기까지의 성공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


‘화려한 패션계. 하지만 그에게 '패션'이란 치열한 '생존'의 문제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동대문 의류매장에서 일한 그에게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것은 막연한 꿈이었다. 그에게 동대문은 창조의 공간이 아니라 당장 맞부딪쳐야 하는 생존의 장이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 말 잘 안 듣고 멋 부리기 좋아하는 날라리였어요. 그래서 일찍 아르바이트로 돈도 벌고, 패션에도 눈을 떴죠. 당시에는 일본 잡지가 흔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친구들이 엉덩이가 반질반질한 교복을 입고 다닐 때, 저는 알음알음으로 일본 잡지를 구해서 남들보다 먼저 일본 스타일을 따라 했죠.”

고3 졸업을 앞두고 종자돈 100만원으로 홍대 앞 가판대에서 옷 장사를 시작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걸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옷 장사밖에 없더라고요. 단지 옷이 좋고 누구보다 잘 입으니까 잘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는 패션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면서 익혀나갔다. 홍대에서 노점을 하다가 동대문 원단시장에 취직. 원단을 나르면서 동대문 현장의 생리를 몸으로 익혔다. 부산으로 내려가 신발 노점상을 하기도 했고, 의정부 음식점 골목에 옷 가게를 차려 일대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장사에 감을 익히면서 옷을 직접 만들고 싶어졌어요. 비슷하거나 같은 물건들을 가지고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게 싫었죠”

그러나 그가 처음 디자인한 옷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공장에서는 만들기 어려운 디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리고 손님들은 ‘너무 튄다’는 이유에서였다. “일 년 동안은 정말 많이 고생했어요. ‘원단 삼촌’, ‘패턴 이모’들 밑에서 밑바닥부터 배웠죠. 원단 시장 문 열 때 가서 원단 시장 끝날 때까지 매일 돌았어요. 물어보고 만지고”

“그러다 대박이 났어요” 아는 형이 하는 가방가게에 놀러갔던 게 행운이었다. 매장에서 색깔이 맘에 들었던 가방 부자재를 얻어다 옷에 붙였던 것. 손님이 줄을 이었다. 1만 원짜리 물건을 한 달 반 동안 판 순익은 1억 6000만 원이었다.(2편에 계속)


한경닷컴 bnt뉴스 이선영 기자 goodluck@b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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