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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지혜 “연기 안 하는 연기하고 싶다”

2017-04-03 15:03:51

[우지안 기자] 이름 석 자는 생소할 수 있으나 얼굴을 보면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되며 금세 기억이 나는 그런 배우, 데뷔 20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기에 대한 고찰과 열정이 눈빛부터 전해지는 윤지혜를 만났다.

흔히 말하는 간지러운 걸 못하는, 가식적이지 않아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고 짧은 순간에도 강하게 관객을 어필하는 힘을 가진 사람, 무엇보다 연기하는 사람이 연기를 잘하니 더 이상의 수식어는 필요하지 않았다.

줄곧 비슷한 캐릭터에 갈증을 느낄 만도 하지만 그에게서 조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꺼내지지 않은, 윤지혜의 연기 스펙트럼이 입증될 시간이 머지않았다.

Q. 오늘 화보 촬영 어땠는지

사실 걱정 많이 했다. 시안을 받아보고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많았고. 특히 엘레강스 같은 콘셉트는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이미지였는데 어찌 됐든 잘 마친 것 같다(웃음).
Q. 실제로 만나보니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다른 반전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하도 오해들을 하니까 일부러 모지라게 하는 부분도 있다(웃음). 더 바보같이 웃고. 안 그러면 무섭거나 새침하게 보거나 다가서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조금 더 과장해서 표현하는 것도 있다. 가식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람 대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Q. 가식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런 면이 있을 테니까

완전 허당이다(웃음). 그래서 실제로 만나보고 깬다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Q.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2년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했더라. 겨울에는 너무 추웠고 몸도 안 좋아서 심신 안정에 온 힘을 다했다. 딱히 쉬자고 마음먹은 건 아닌데 여유를 가지고 작품을 보고 있는 중이다.

Q. 탄탄한 연기력으로 믿고 보는 배우로 눈도장을 찍었다.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지

중고등학생 때 주변에서 ‘예쁘다, 예쁘다’ 소리를 들었었다. 진짜 예쁜 줄 알고 사람들 앞에 서보고 싶었던 마음으로 출발 한 거다. ‘아 정말 내가 예쁜가?’라는 생각도 했었고(웃음). 그때는 예쁘다는 말이 듣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인기 있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사춘기가 심하게 왔었다. 마음속에 용암 하나가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되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던 중 연기를 하면서 뭔가가 분출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맛에 연기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Q. 그래도 적성에 맞았나 보다

정말 깊게 생각해봤는데 나는 남들 앞에 서는 걸 안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 때 당시에는 주목을 받고 싶었던 마음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본연의 모습은 남 앞에 서서 뭔가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연기할 때의 나와 평상시의 내 모습은 분리가 돼서 참 다른 것 같다. 나는 은둔형에 만나는 사람만 만나는 내성적인 타입이다.


Q. 출연작마다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본인의 연기에 대한 생각은

부끄러운 걸 깨는 순간부터가 연기의 시작이다. ‘이게 설득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캐릭터로 보일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그걸 믿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들이 깨지는 데까지 가 조금 힘들고 그걸 깬 이후에는 좀 더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온다. 어떤 씬을 찍을 때는 준비하는 과정도 힘들고 고통스럽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보시는 사람들은 편안하게 봐주시기도 하는데 사실 혼자서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Q.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걱정이 많은 편인가

많이 한다. 걱정이 팔자다(웃음). 이렇게 저렇게 오만가지 생각을 하지만 막상 현장에 가면 감독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게 되는 것 같다.

Q. 전혀 그렇게 안 보인다

하나도 안 떤 것 같다고 하는데 사실은 정말 떨면서 한다. 그냥 할 때도 있는데 대부분은 긴장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해서 되는 순간도 있고 아니면 저절로 호흡하면서 편해지는 부분도 있다. 긴장하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는데 평상시에는 긴장하는 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편안해진 상태로 하려고 한다.

Q. ‘윤지혜’하면 카리스마 있고 센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아무래도 한정된 이미지 때문에 연기할 때 제약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이것도 저것도 없는 것보다는 이미지가 있다는 게 나은 것 같아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Q. 일상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맡아 힘든 적도 많았을 텐데

다 힘들었다. 주로 힘들었던 게 많았던 것 같다. 어떤 종류든지 간에 스트레스를 많은 편이었던 것 같다. 혼자 끙끙 앓는. 고통 속에서 하는 거다(웃음). 사실 그렇지 않은데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면 아무래도 영향을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화를 내고 사람들과 불협화음을 내는 악녀를 연기하다 보면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내 자체가 캐릭터로 바뀔 때도 있다. 그래서 어떤 캐릭터를 맡느냐에 따라 일상생활도 좀 달라지는 것 같다. 저절로 생활 자체도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악역을 하면 좀 위험하다(웃음). 여운도 많이 남고 마음이 정말 힘들다.

Q.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해보고 싶은 캐릭터라기보다는 연기톤은 있다. 굉장히 일상적인 그런 연기. 궁극적으로는 연기 안 하는 연기를 추구한다. 생활 연기랑은 다른데 아직 그게 뭐다라고는 정의 내릴 수 없지만 그런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을 만났으면 좋겠다. 이 생각은 끊임없이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안 해봤던 역할을 해보고 싶다. 반복되는 역할이 아닌 전혀 다른 캐릭터, 여성스럽거나 여린 모습이 부각되는 캐릭터도 좋을 것 같다.

Q. 대부분의 배우들이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하더라.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나

6년 전쯤에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까먹었던 적이 있다. 어렸을 때는 ‘이게 확실해’, ‘이 감정이 맞아’라는 생각을 좇아서 고민 없이 했던 것 같은데 갑자기 한순간에 어찌할 바를 모르게 혼돈이 왔었다. 대사가 단 3줄이었는데 외워지지 않더라. 그때는 정말 고민이 많았다. 배우에게 그런 순간은 한 번씩 오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도기였던 것 같다. 예전에는 연기를 할 때 나에게 캐릭터를 맞췄다면 그 시점을 계기로 시야가 넓어진 부분이 있던 것 같다. 꼭 필요했던 시기였던 것 같고.

Q. 작년 인터뷰 기사를 보니 ‘야망이 없다’고 했더라, 그렇다면 어떤 배우가 되길 원하는가

윤지혜 다운 배우가 되고 싶다. 나다운. 어떤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는 단계인 것 같다.

Q. 시나리오를 볼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

한 번에 읽히는 대본이 있고 자꾸 의문이 드는 대본이 있는데 읽었을 때의 느낌인 것 같다.

Q. 함께 호흡 맞춰보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조민수 선배님. 조민수 선배님도 사람들이 보기에 셀 것 같고 강할 것 같은 이미지를 가졌는데 진짜 사랑스러운 여자다(웃음). 어떤 역할이 됐던지 함께 꼭 작업해보고 싶다. 배우로서도 멋있다는 생각이 들고 한 사람으로 봐도 선배님이지만 사랑스럽다.


Q. 최근 종영한 드라마 ‘안투라지’에서 조진웅과의 케미도 돋보였는데

‘군도’에서도 같이 해서 그런지 편하게 했던 것 같다. 진웅이 오빠가 나를 두고 거의 남자라고 농담으로 얘기하기도 하고(웃음). 보시는 분들이 실제 부부 같다고 말씀해 주신 게 서로 투탁투탁대면서 현실 부부처럼 잘 표현돼서 그런 것 같다.

Q. 남자 배우들과 친할 것 같은 느낌이다

딱히 친하다고 하긴 그렇지만 잘 지내는 것 같긴 하다. 여배우라고 하면 흔히 갖게 되는 선입견이 있는데 딱히 그런 부분이 없어서 인지 편하게 봐주시는 것 같다.

Q. 어떤 성격이라고 생각하는지

털털한데 성깔은 있는 것 같다(웃음).

Q. 롤모델이 있다면

케이트 블란쳇. 너무 멋있는 여자다. 그리고 그런 배우가 우리나라에 없는 것 같다. 약간 중성적인 느낌에 연기도 너무 좋고 작가랑 결혼한 것도 멋있다. 배우로서 닮고 싶은 사람이다.

Q. 친하게 지내는 배우

황영희 언니. 동네 주민인데 수다 떨고 작품이나 연기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한다. 친하지는 않지만 동네 주민 중에 유해진 오빠도 있다.

Q. 서울예대 출신, 친분 있는 배우들이 많을 것 같았는데

학교 동기들도 왜 연극과에 들어왔는지 모를 정도로 아웃사이더였다. 출석만 하고 열심히 다니지는 않았다(웃음).

Q. 배우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조카가 초등학교 6학년인데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며 인터뷰하러 온 적이 있는데 적나라하게 얘기해줬다(웃음). 절대 고독의 순간이 온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못하는 순간들이 힘든 것 같다. 연기는 본인의 철학으로 하는 거 같다.

Q. 배우가 안됐더라면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까

배우가 안됐다면 아마도 백수가 됐을거다. 천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웃음).

기획 진행: 우지안
포토: 김태양
영상 촬영, 편집: 박승민 PD
의상: 블락스페이스, 레미떼, 제이원
구두&백: 율이에
선글라스: 휠라 by 모다루네쯔
시계: 베카앤벨
주얼리: Tedora(티아도라), 젬케이
헤어: 컬처앤네이처 박하 팀장
메이크업: 컬처앤네이처 영란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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