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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은경 “‘TTL 소녀’ 아닌 ‘배우 임은경’으로 기억되길”

2017-08-03 15:20:43

[허젬마 기자] “‘TTL 소녀’라는 수식이 불편하진 않아요. 어쩌면 잊혀질 수도 있었던 저의 존재를 그 수식 덕분에 십 수년이 지나도록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시는 것은 오히려 감사한 일이죠”

조막만 한 얼굴에 사슴 같은 눈망울, 세월의 흐름을 비껴간 듯한 배우 임은경. 1999년 한 통신사의 CF에서 ‘TTL 소녀’로 등장했던 그녀는 데뷔와 동시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인기와 사랑을 받아서였을까. 이후 배우로서 활동을 넓혀가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지만 ‘TTL 소녀’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영화 ‘여고생 시집가기’ 이후 10년이 넘는 공백기 끝에 2015년 ‘치외법권’으로 잠시 얼굴을 내비친 뒤 다시 좀처럼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그녀가 최근 ‘복면가왕’에 출연하며 다시금 활발한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드라마와 영화 출연을 위해 작품을 살피는 중이고 한국에서는 한 웹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아 다음 달 촬영에 들어간다고.

이제는 소녀가 아닌 숙녀로, TTL 소녀가 아닌 배우 임은경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그녀의 깊은 마음 속 고백을 들어보자.

Q. 화보소감

오랜만의 촬영이라 재미있었다. 사실 어제부터 굶었다. 얼굴이 동글동글하게 나올까봐(웃음). 배는 고팠지만 덕분에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Q. 사진 찍는 걸 좋아하나

보통 여행지를 가면 인증샷 같은 걸 남기곤 하는데 나는 잘 안 찍는 편이다. 몇 번 찍어봤는데 사진이 너무 못 나오더라. 특히 셀카를 진짜 못 찍는다. 요샛말로 ‘셀고’라고나 할까(웃음). 행사장 같은 데에서도 어떻게 포즈를 취해야 할지 몰라서 항상 애를 먹는다. 내 나름대로는 잘 취했다고 생각했는데 찍힌 사진을 보면 영 아니더라(웃음).

Q. 오랫동안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나

2015년에 영화 치외법권 촬영 후 오랜 시간 쉬었다. 쉬는 동안 실컷 놀기도 하고 그 동안 배우고 싶었던 걸 시작했다. 최근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아직 아기 걸음마 수준이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흥미를 붙이고 배우는 중이다.

Q. 많은 취미 활동 중에 왜 하필 서예를?

내가 성격이 좀 급하고 욱하는 데가 있다. 집중력도 좋지 않아서 좀 산만하기도 하고(웃음). 그래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의미로 시작하게 됐는데 이게 또 의외로 잘 맞더라(웃음). 사실 석달 정도 하고 그만둘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는 꽤 꾸준히 잘 배우는 중이다.

Q. 최근에는 또 중국에 다녀왔다고. 중국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중국에서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준비 중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작품으로 중국팬들에게 인사를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Q. 웹드라마 촬영도 앞두고 있다고.

그렇다. 평범한 사진작가 밑에서 보조 스탭으로 일하는 역인데 사랑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인물을 맡았다. 아마 다음 달이면 촬영에 들어갈 것 같다.

Q. 얼마 전에는 ‘복면가왕’에 출연해 화제가 됐었다

사실 처음 섭외가 들어왔을 때는 고민했었다.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잘 나가는 프로그램에 괜히 누가 될까봐 망설이게 되더라. 그런데 지금은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면을 쓴 상태였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보일 수 있었다. 무대에 나가기 전까지도 많이 긴장되고 떨렸었는데 마스크를 딱 쓰니까 정말 앞이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 무대 앞 패널분들 조차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대로 아무렇게나 했다(웃음). 일반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드러내며 하라고 했다면 못했을 것 같다. 성대모사도 그렇고(웃음).

Q. 목소리가 참 청아하던데

내 목소리에 어울리는 곡을 잘 선곡했던 것 같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는 원래부터 좋아하던 노래기도 했고. 그리고 출연하기 전 연습을 정말 많이 했었다. 밤에 혼자 리모컨 들고 거울 보면서 제스쳐 하나까지도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웃음). 그런데 막상 무대에 서고 나니 준비했던 제스처는 다 잊어버렸다(웃음).

Q. 나중에 방송으로 보니 어떻던가

사실 방송을 제대로 못봤다. 방송으로 내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려니 너무 부끄럽더라. 그래서 그냥 살짝 듣기만 했다(웃음). 사실 출연 후에 어떤 댓글이 달릴까 걱정도 많이 했다. 안 좋아하면 어쩌지 하고. 그런데 오히려 ‘복면가왕’ 출연으로 인해 예전의 나를 더 기억해주는 분들이 계시는 걸 보면서 정말 출연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동안 너무 팬분들에게 인사하는 걸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인사 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생각이다.


Q. TTL 소녀로 데뷔해 신드롬에 가까운 반응을 불러일으켰었다. 이후 간간이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어느 순간 긴 공백기를 가졌는데 무슨 이유 때문이었나

아무래도 내가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성급하게 데뷔를 해서 그랬던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창 활동을 활발히 하던 20대 때에는 너무 힘들어서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 늘 멍해있는 상태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 시간들을 즐기기 보다는 너무 힘들다, 지친다는 생각을 늘 마음에 안고 살았다. 그런 고민 속에서 자연스레 공백기를 가지게 됐고 쉬는 동안 스스로를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기간 동안 나에게 부족했던 점들을 살피면서 스스로에게는 훨씬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간을 거쳐 30대가 되니까 오히려 훨씬 마음이 편하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물론 길었던 공백기 만큼 대중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은 더 커졌지만 그건 내가 해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고. 만약 누군가 나에게 20대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냐는 질문을 한다면 단언코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때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시기가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또 TTL 소녀 데뷔 이후 너무 이미지가 신비주의로 포장이 되다 보니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못했던 거지. 열심히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마음이 많이 공허하고 허전했다. 지금 그때를 떠올려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Q. 만약 데뷔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일을 할 것 같다. 이 길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더라면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다른 일을 했을 것 같다(웃음).

Q. 연예계 생활이 많이 힘들었나 보다

편하진 않았던 것 같다. 너무 한꺼번에 인기와 사랑을 받다 보니 이걸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랐다. 대중의 관심에 그만큼 보답을 했어야 하는데 그땐 그런 걸 깨닫기에 너무 어렸다.

Q. 길었던 공백기, 마음 고생도 많이 했을 텐데

그때 정말 엄청난 감정기복을 겪었다. 정말 힘들더라. 내가 왜 이러지 싶으면서도 마음이 제멋대로 왔다갔다 했다. 그런 나를 보는 주변 사람들은 더 힘들어했고. 정말 2~3년 간은 말그대로 나사 풀린 사람 같았다. 마구 화냈다가 한순간 가라앉았다가.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내 스스로를 더 괴롭히고 있는 꼴이더라. 아차 싶었다. 그때부터 그냥 이 순간을 즐기자는 생각을 되뇌이면서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배우면서 바깥 활동도 자주 하고. 연예인 임은경이 아닌 평범한 임은경으로 돌아가 대중교통 타고 다니면서. 대중교통은 뭐 지금도 많이 이용하지만(웃음).

Q. 사람들이 알아보면 불편하지 않나?

모자 쓰고 워낙 평범하게 하고 다녀서 그런지 몰라본다(웃음).

Q. 혹시 공백기 동안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을 해본 적도 있나

당연히 있다. 그만둬야 하나. 어쩌면 이쪽 길이 내 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 너무 내가 무모하게 시작을 했던 게 아니었나 등등 많은 고민을 했었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어린 나이에 데뷔를 했던지라 다른 일을 끝까지 해본 경험이 없더라. 어떻게 보면 배우생활도 끝까지 가보지 않고 그만 둔다면 다른 어떤 일을 해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주변에 일반 회사 생활을 하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힘든 건 다 똑같다는 걸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Q. 만약 연예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떤쯤 모습일까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 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주부? (웃음)


Q. 힘들었던 시기에 가장 힘이 되어줬던 사람은?

회사 이사님. 진짜 나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거다(웃음). 그래도 데뷔 때부터 쭉 함께 해온 분이라 가족 같이 정말 편하다. 그런데 편하다고 내가 너무 힘든 내색을 많이 하다 보니 같이 더 힘들어지는 거 같아서 이제는 좀 자제하려 한다(웃음).

Q. 굉장히 말랐는데 살은 원래 안 찌는 체질인가

그렇다. 살이 너무 안 쪄서 스트레스 받는다. 운동을 해도 근육도 잘 안 붙고. 먹는 것도 좋아해서 진짜 많이 먹는 편인데 아무리 그래도 살은 정말 안 찌더라. 군것질도 정말 많이 하는 편인데도.

Q. 평소 성격은 어떤 편?

주변에서 말하기를 ‘여자 김구라’라고 하더라(웃음).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이라 좀 직설적인 게 있다. 예전에는 타인의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대화를 할 때 나보다 타인을 중심으로 돌아갔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만날 때도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심했었지.

Q. 맡아보고 싶은 캐릭터

정말 옆집 언니 같이 친근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이제는 신비주의 이미지를 좀 깨고 싶다. 앞으로는 배우로서 영역을 더 넓히고 싶기에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다.

Q. 앞으로의 목표

일단 개인적으로는 자기애가 커졌으면 좋겠다. 20대 때를 돌이켜보면 자존감도 낮고 스스로를 많이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는 좀 더 성숙해져서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배우로서는 늘 나에게 따라다니는 ‘TTL 소녀’가 아닌 ‘배우 임은경’으로서 기억되고 싶다. 물론 그만큼 내가 열심히 노력을 해야겠지만.

Q. ‘TTL 소녀’라는 수식이 불편한가

그렇진 않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잊혀질 수도 있었던 나의 존재가 십 수년이 지나도록 그 수식으로 인해 여전히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앞으로 기회가 닿는대로 자주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동안 기다려준 팬들에게 보답하면서 좋은 배우로서 좋은 연기 보여드리고 싶고.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

에디터: 허젬마
포토: 김연중
영상 촬영, 편집: 정도진, 석지혜
의상: 캐롤리나 헤레라, 블랑조, 쎄쎄쎄
주얼리: 해수엘
헤어: 쌤시크 영나 디자이너
메이크업: 쌤시크 정선미 원장
장소: bnt 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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