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터뷰] 멜로디를 찾아 헤매는 방랑자, 스텔라장

2017-08-21 15:33:40

[마채림 기자] 프랑스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학업의 탑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 그저 묵묵히 노력했다는 그. 흘린 땀방울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단순한 마침표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거창한 결과를 얻었다.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쳐야만 입학 자격이 주어지는 프랑스 엘리트 고등교육기관인 그랑제콜에 당당히 발을 들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지옥 같던 그 시절. 피아노와 기타, 음악으로 위안을 삼았다는 스텔라장. 남다른 노력과 지구력으로 최상의 결과를 낳은 모습을 지켜본 프랑스의 공기는 어쩌면 그가 품은 가수라는 꿈이 조만간 이루어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상’이 뮤즈이며, 그저 자신의 마음을 곡에 담아낼 뿐이라고 말하는 스텔라장에게서 영민한 방랑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다양한 선율로 가득 찬 음악이라는 드넓은 초원을 헤매는 자유로운 영혼. 오늘도 그는 마음껏 헤맨 뒤 그 자취를 오선지에 진솔하게 남겼을 것이다.

Q. 화보 촬영 소감

화보 촬영은 처음이었지만 앨범 재킷 촬영 경험이 있어 비교적 수월했다.

Q. 마음에 들었던 콘셉트

마지막 콘셉트에 했던 볼륨 있는 헤어스타일이 과하고 평상시에 하고 다니기 힘든 스타일이라 오히려 한 번쯤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해봐서 소원 풀이를 한 것 같은 기분. 무대에서도 이런 머리는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Q. 오늘 오전, 라디오 프로그램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코너 출연 소감

김창완 님이 진행하는 코너에 출연하게 됐다. 엄마가 산울림 팬인데 내가 직접 만난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남다르더라. 아직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유명인들을 만나면 ‘우와 연예인이다’라는 느낌이 강하다. (웃음) 오늘처럼 화려한 메이크업에 사진을 찍고 다이어트를 하는 것들이 사실 내가 가진 가수라는 직업 중 가장 적성에 안 맞는 부분이다. 사람들 앞에서 뻔뻔하게 예쁜 척을 해야 하는 건데 여전히 어색하다. 지금이 그나마 예전보다 많이 발전한 거다. 아직은 민낯으로 녹음실에 가서 녹음하는 게 적성에 더 맞는 것 같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직접 뵌 김창완 선배님은 기능성 스포츠 웨어를 입고 계셨다. 같이 출연한 이승열 선배님도 민낯에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로 안경만 쓰고 오셨더라. 대선배님들을 뵙는 자리라는 생각에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하고 온 나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나도 빨리 경력이 쌓여 민낯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는 그대로’ 음원 발표 이후 다른 악기 없이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를 기회가 없었다. 오늘 출연해서 피아노 선율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특별한 경험이었다.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다만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조금 힘들었다는 정도.

Q. 최근 발표한 ‘그대는 그대로’ 소개

내가 위로받고 싶었을 때 내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담은 곡이다. 오전에 김창완 선배님께서 들으시더니 “그대가 누군지 참 좋겠다”라고 하시더라. 나를 위한 곡이었는데. (웃음) 듣는 사람에 따라 그렇게 들을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Q. 최근 곡들을 살펴보면 유난히 공감하고 위로하는 곡이 많은데, 그 이유?

그냥 내 경험과 내 주변 사람들의 경험, 영화나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는 영감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살이 덧붙여져 곡의 형태로 나온 것.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고 하지 않나.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라는 곡도 특별히 직장인을 노리고 발표한 게 아니다. 그저 내가 겪은 걸 노래로 만들면 지금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공감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만들었다.

Q. 본인의 곡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

항상 이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때그때 다르게 대답하게 되는 것 같다. 유달리 애착을 갖는 곡 중 하나가 ‘계륵’이다. 곡이 너무 좋아서가 아니라 작업 당시 너무 힘들었던 게 이유다. 작업이 오래 걸린 데다 수없이 수정을 거친 뒤라 막상 본 녹음에 들어가려니 이미 기진맥진해 힘이 안 나더라.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와 기특한 마음에 애착이 간다.

Q. 수록곡 전부를 작사 작곡했다.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건 언제?

작사, 작곡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땐 피아노를 열심히 쳤다. 학교에 피아노실이 있었는데 대중가요를 들으며 따라 치곤했다. 어릴 적 클래식 피아노와 플루트를 취미로 배웠는데 그 덕에 악보를 볼 수 있었다. 혼자 코드를 공부해서 대충 하다 고등학교 때 피아노로 처음 곡을 써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스무 살, 입시생일 시절 (재수생이 아닌 그랑제콜을 가기 위한 2년의 프레파 기간) 방 안에 묵혀뒀던 기타가 탈출구처럼 느껴지더라.

발은 작은데 손이 큰 편이라 기타 치기 좋은 조건을 지니기도 했다. 공부가 아닌 다른 곳에 열정을 느낄 때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기타를 쳤고, 곡을 만들었다. 처음 만들었던 곡이 ‘It’s Raining’이다. 그땐 아무 생각이 없어서 곡이 더 잘 나왔던 것 같다. 예전만큼 곡이 나오지 않을 땐 “그때 더 많이 곡을 만들어 둘 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시에는 나에 대한 기대치가 없을 때라 마음이 더 편했던 것 같다.

Q. 가수의 꿈은 언제부터

고등학교 때 한국에서 래퍼가 되는 게 꿈이었다. 접긴 했지만. (웃음) 랩은 내 곡에서만 하고 있다. 랩으로 남의 곡을 피처링하기엔 수준이 부족하다. 사실 한 번 랩으로 피처링을 한 적이 있긴 하다. 하면서도 참 신기했다. 아직도 힙합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 틈나는 대로 꾸준히 준비하고 있다.


Q. 작사 작곡을 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것

전에는 가사가 전부라고 생각했다. 가사를 잘 쓰면서 모두의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는 강박, 더불어 참신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공감보다는 ‘참신’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너무 익숙지 않은 이상한 멜로디의 곡만 발표한다면 그것이 과연 대중을 상대하는 대중가수로서의 가치가 있는 걸까 고민하게 되더라.

참신한 쪽으로 기울면 자기만족으로만 끝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멜로디의 경우도 똑같다. 예전에는 코드 진행을 비틀어 어렵게 만들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심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듣기에도 좋지 않고 참신한 느낌도 사라지더라. 진짜 실력자들은 정말 어려운 건데 그걸 쉽게 녹여내는 분들 같다. 내 스스로가 그것에 어느 정도까지 가까이 다다랐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Q. 앨범 재킷 사진들이 멋지다. 직접 아이디어를 내는 편?

항상 내 의견이 많이 반영된다. 예를 들면 ‘Colors’ 때는 함께 찍었던 사진 작가 분이 계신데 재킷으로 사용된 컷은 전혀 후보에 없던 컷이었다. 나는 그 컷에 투표를 하지 않았는데 나머지가 다 그 컷에 투표를 했더라. 내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여태 나온 앨범 커버 중 베스트였다.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은 사원증으로 앨범 재킷을 장식하자며 아이디어를 냈다. 직접 증명사진을 찍으러 가기도 했고. 아이디어는 내가 제공하지만 디자인은 디자이너 분들이 해주시는 편. ‘그대는 그대로’는 원래 내 어릴 때 사진을 하지 말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고집을 부렸다. 그 사진이 너무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웃음) 그 사진 때문에 앨범 크레디트에 엄마 이름이 들어갔다. 엄마가 자기 이름으로 넣어달라고 하시더라. (웃음)

Q. ‘현실 소녀’라는 수식어에 대해

사실 소녀라고 하기엔 조금 나이가 있다. (웃음) 아마 ‘소녀시대’라는 곡 때문에 그런 수식어를 붙여주신 것 같다. 한창 입시 시절에 살이 많이 쪘을 때 이야기다. 안경 쓰고 집에서 과자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며 공부에 열중할 때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본 적이 있다. 비단 소녀시대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 연예인들을 보며 “왜 나는 저렇지 않지?”라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었다.

“나는 뚱뚱한 데다 공부에만 열중하는데 반해 저들은 예뻐서 좋겠다”라는 마음에 쓰게 된 곡이다. 가사를 보면 ‘나는 티파니도 아니고 태연 서현 아니고 윤아는 더욱 아니야…그냥 소녀라네’라는 구절이 있다. 그 곡을 쓸 때 스물한 살이었으니 소녀에서 갓 벗어난 정도였다. 1절만 있던 곡이었는데 작년에 2절 랩 부분을 작업하게 됐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모습을 반영해 ‘소녀라고 하기엔 나이가 좀 많은 감이 있네’라는 가사를 넣게 됐다.

Q. 이야기를 나눠보니 예전에 썼던 곡을 발표하는 경우가 많아 보이는데

항상 그런 식이다. ‘Colors’ 때도 ‘환승입니다’, ‘계륵’ 빼고는 거의 다 2011년~2012년 곡들이다. 2012년에 학교에 합격하면서 입시 생활을 청산했다. 시간이 조금 많았던 9월부터 곡을 썼던 것. 사실 공부 열심히 했을 시절에 곡은 더 많이 썼다. (웃음)

음악 하는 분들은 다들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음악이 주가 아닐 때는 음악에 대한 갈망이 커서 잠깐 나는 시간을 음악에 쓰며 온전히 집중한다. 막상 음악을 Full Time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음악이 내게 너무 소중해서 자투리 시간까지도 활용하고 싶은 무언가에서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지 않게 되는 단점이 있다.

Q. 프랑스 유학을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

아무것도 몰라서 간 것. (웃음) 기회가 생겼는데 거기서 유학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모든 게 무산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두려움보다는 외국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가서 고생할 것이다, 부모님과 떨어져서 외로울 것이다, 말이 안 통해 답답할 것이다’ 등의 고민은 들지 않고 ‘외국, 에펠탑, 파리. 좋은데?’라는 생각에 유학길에 올랐다. 막상 갔는데 그렇게 좋지도 않더라. 힘들었다. (웃음) 그래도 몇 년 살다 보니 적응이 돼서 편했다.

Q. 프랑스 최상위 대학 기관 그랑제콜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다고. 공부를 잘하는 비결

부모님은 ‘네가 그렇게 음악이 좋으면 음대를 가라’고 말씀하시곤 했지만 외국에 유학까지 갔고 지금까지 쌓아올린 탑이 있기에 무엇이든 완성하고 치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생각이 더 어리석었던 것 같긴 하다. 그저 이과 과목을 잘하고 그중에서도 생물을 잘하니까 당연히 그쪽으로 공부를 하게 됐다.

많은 분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고르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나 또한 프레파를 하는 동안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음악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확신만 있었지 음악적인 재능에 대한 확신과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서 미래가 불안했다. 방어막이라는 개념으로 공부를 한 것. 자신의 재능을 믿고 어떤 일에 과감히 도전하는 분들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그런 분들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때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아무도 안 믿어주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Q. 이후 프랑스 글로벌 화장품 기업에서 근무, 퇴사하기까지의 이야기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지사에서 근무했다. 직속 상사가 프랑스인이었다. 회사 내에서도 불어를 사용해야 했으며 온라인 화상 전화로 외국인들과 미팅을 진행했다. 불어, 영어를 주로 사용했었다.

그랑제콜 3학년 때 인턴십 6개월을 꼭 해야 한다. 마치 이수 학점과 같은 건데 그 기간을 마친 뒤 보고서 제출하고 발표까지 하면 졸업이다. 2015년 초에 인턴을 시작함과 동시에 완전 귀국을 했다. 마지막 발표를 위해 파리로 돌아가 졸업을 한 뒤 그간 번 돈으로 유럽 여행을 하고 다시 돌아왔다.


Q. ‘엄친딸’이라는 수식어에 대해

언젠가는 사라질 수식어라고 생각하며 감사히 받아들이고 있다.

Q. tvN 예능프로그램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에 출연했던 걸 봤다. 뮤지션의 길을 걷느라 학업을 중단한 것에 아쉬움의 시선을 보내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다. 관련 댓글도 많고. 과격한 댓글 중 ‘저런 학벌인 사람들은 성대를 뽑아서라도 음악을 못 하게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은 음악 안 했으면 좋겠다’라는 걸 봤는데 그게 내 음악 실력을 떠나 “저 스펙에 왜 음악을 해?”라는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내 주변은 나보다 월등하게 똑똑한 친구들로 가득했다. 그렇다 보니 나는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은 사람인데 어쩌다 여기까지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회사를 다닐 당시에도 퇴근 후 음악을 병행하는 게 힘들었다. 요즘 사회는 개인의 행복보다는 다수의 행복을 중시하는 것 같다. 내 행복을 찾고 싶었다. 졸업할 때 보고서를 쓰고 발표를 하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그 시절이 얼마나 지옥 같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닐까. 그랑제콜 3년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었다. ‘왜 이런 선택을 해서 나 자신과 부모님을 고생시키는 걸까’라는 생각에.

Q. 프랑스 유학 시절을 두고 ‘금수저’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여유 있는 집안은 아니었다. 그래서 과외를 열심히 했었다. 부모님께서도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을 이야기하며 더 열심히 하라고 조언하셨는데 열심히 할 자신이 없더라. 그래서 그 졸업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꾸역꾸역 견뎠다. 그때 만들었던 곡이 ‘그대는 그대로’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른 채 배경만 보고 ‘저러면 음악 하지 말아야지’ 말씀하시는 분들에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 상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다.

Q. 인기가 많은 과외 선생님이었는지?

내게 특별한 교수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가르쳤던 학생들은 다 성적이 오르긴 했다. 나는 과외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과외가 필요한 학생들을 보면 설명을 들었을 때는 이해하는데 혼자서는 이해를 잘 못하더라. 한 번 이해를 한 뒤에 그와 비슷한 문제를 무조건 많이 풀어보는 것이 유리하다.

프랑스 애들도 있었고, 프랑스 학교를 다니는 한국 애들도 가르쳤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프랑스 중학생을 과외해본 적이 있는데 내가 불어 문법을 가르친 적이 있다. 한국인들이 한국어 문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지 않나. 나는 외국인 신분으로 프랑스에서 지낸 거라 문법 공부를 열심히 했다. 불어는 발음이 같은데 다르게 쓰는 것들이 많아서 문법이 어려운 편이다.

Q.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 혹은 롤모델

빅뱅이다. 빅뱅 ‘덕질’을 하다 YG에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YG가 힙합 베이스 곡을 많이 하니 자연스레 언더 힙합 장르를 듣게 되더라. 그러다 오히려 빅뱅 음악을 덜 듣고 힙합에 빠져 래퍼가 될 거라는 꿈을 꾸게 됐다.

그런 후에는 유희열 선배님을 좋아하게 됐는데 그때 ‘덕력’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절판된 CD도 어렵사리 구하고 단독 콘서트를 예매하기 위해 PC방을 찾았던 적도 부지기수. 평생소원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하는 건데 방청객으로 갔던 적이 있다. 방청객인데 환호를 열렬히 하는 바람에 TV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웃음) 더 열심히 해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직접 뵙고 싶다.

그 외 꼭 롤모델로 꼽는 분은 이적 선배님이다. 그 갈래의 곡과 가수들을 좋아한다. 윤상, 윤종신, 루시드폴, 김동률, 정재형, 이상순 등의 팬이다. 귀가 닳도록 들었다. 많이 듣다 보니 내가 하는 음악에서도 90년대 한국 가요 분위기가 풍길 때가 있다.

Q. 주변 아티스트 중에 가장 음악적 호흡이 잘 맞는 사람

가장 잘 맞는 사람은 ‘어제 차이고’, ‘빨간날’을 편곡했던 플레인이라는 친구. 같이 곡 작업을 할 때 유일하게 격식을 차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편한 친구다.

Q. 고민 상담은 주로 누구에게?

엄마, 친구들. 가끔은 굉장히 부질없는 행동일 수도 있는데 인터넷에 내 상태를 검색해보기도 한다. 다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것을 확인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라. 심각한 고민거리는 엄마와 나누는 편이다.

Q. 함께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

실현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얘길 해보자면 이적 씨에게 가사를 한 번 받아보고 싶다. 항상 직접 가사를 쓰는데 나와는 전혀 다른 결의 가사가 나올 것 같아 기대가 된다. 평소 그의 가사를 좋아한다.

피처링은 지금 군대에 가 있는 빈지노. 너무 좋아한다. 이번에 리마스터링 앨범도 샀다. 최근에는 폴킴이 좋더라. 기회가 된다면 듀엣을 해보고 싶지만 어디까지나 희망사항. 인터뷰를 할 때면 굳이 외국 가수 중에서 꼽아달라는 분들도 계신다. 전혀 가능성이 없지만 외국 가수 중에서는 에드 시런. (웃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최근 즐겨 듣는 음악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Q. 뮤즈, 영감을 주는 것

남이 만들어놓은 뮤직비디오를 여러 개 돌려본다. 비주얼에서 영감을 얻는다. 딱히 뮤즈랄 게 없다. ‘일상’이 뮤즈인 셈.

Q. 버킷리스트

버킷리스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방대한데… 먹으러 다니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돈을 잔뜩 사들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 나라에서 맛있다는 음식들을 다 먹어보고 싶다. (웃음)

Q.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오래 알고 싶은 사람. 질리지 않고 계속 봐도 좋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Q. 앞으로의 계획,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싱글, 미니앨범 등이 계속 나올 계획이라 많은 기대를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는 정규 앨범 작업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오래오래 음악 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에디터: 마채림
포토: 김연중
의상: 블랑조, 맘누리
슈즈: 수페르가
주얼리: 티아도라(TEDORA)
파우치: 토툼(TOTUM)
헤어: 스타일플로어 우현 디자이너
메이크업: 스타일플로어 은정 아티스트
장소: 이태원 더 방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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