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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든 탑이 무너지랴, 배우 홍기준의 내공

2017-11-07 17:07:37

[허젬마 기자] “더 일찍 알려지지 않았다고, 더 많은 인지도를 가지지 못했다고 아쉬워한 적은 없어요. 모든 건 때가 있는 법이고 저는 제 자리에서 묵묵히 제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죠. 제 나이 마흔에 이런 행운을 누렸으니 마흔 하나에는, 또 그 이후에는 어떤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겠어요”

영화 ‘범죄도시’의 숨은 주역 배우 홍기준의 말에는 꾸밈도 가식도 없었다. 십 수년 차 연기생활과 20여편이 훌쩍 넘는 작품 경력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신인’이라 칭하는 그에게 오랜 무명생활이 아쉽지는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은 우문이었다.

그를 캐스팅한 강윤성 감독 역시 홍기준을 향해 “그의 연기는 평소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가식이 없다”고 표현했다. 역할의 비중에 연연해하기보다 자기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녹이려 애썼고 그렇게 자신만의 속도로 착실히 내공을 쌓아온 결과 그는 박병식이라는 역을 만나 날개를 달았다. 배우 홍기준이 보여줄 비행은 이제부터다.

Q. 화보소감

화보촬영은 처음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콘셉트를 잘 설정해주신 덕에 순조롭게 촬영할 수 있었다.

Q. 근황

간간히 인터뷰 하고 시사회도 다니면서 지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거 같아 아쉬울 정도로 행복한 요즘이다.

Q. 영화 ‘범죄도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흥행을 예상했나

전혀 못했다. 나뿐만 아니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Q. 출연 배경

다른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오디션을 보고 들어갔다.

Q. “팔 들어가면 문 열어” 대사가 애드리브라고.

그렇다. 대본에는 실랑이를 벌어야 한다는 것만 써 있었고 멘트는 따로 없었다. 그런데 연기를 하던 도중 대사가 떠올라 순간적으로 던졌는데 감독님께서 좋아하시더라.

Q. 영화의 흥행과 함께 신스틸러로 조명을 받으며 인지도가 많이 올랐는데

식당에서 옆에 계시던 분들이 말을 걸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아는 척을 해주시기도 하는데 아직은 많이 어색하다(웃음).

Q. 마동석과의 호흡

대선배와 함께 연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이전에도 다른 작품에서 뵀던 적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호흡을 맞춰본 건 처음인데 인간적으로도 동료로도 정말 너무 좋은 분이더라. 굉장히 친절하고 한마디로 젠틀맨이다.

Q. 이번 영화를 계기로 윤계상 또한 연기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는데 옆에서 보기엔 어떻던가

윤계상 씨 같은 경우에는 나와 동갑인데 이번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싶어하는 게 강하게 느껴졌다. 장첸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현장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짐승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을 정도로 정말 그 역에 몰두해 있더라. ‘이번에 이 갈았다’, ‘칼을 갈고 왔구나’ 싶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또 사석에서는 좀 도인 같은 느낌이 있다. 들어보니 굴곡을 많이 겪었더라.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았고. 그래서인지 사람이 굉장히 평정심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Q. 형사 역을 연기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은?

형사랑 조직폭력배를 같이 두면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로 똑같다. 흔히들 형사를 떠올렸을 때 따라오는 정형화된 이미지들이 있는데 그 외의 부분에서는 생각보다 굉장히 평범하고 또 생각만큼 거칠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평범한’ 모습에 주안점을 두고 연기를 했다. 감독님께서도 우리가 카메라 앵글에 잡혔을 때 눈에 튀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묻히는 모습을 원하셨고 우리 역시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형사의 모습으로 녹아들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Q. 형사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실제 형사분들이 뭐라고 하던가

한번은 금천경찰서에서 촬영하는 분량이 있어 방문을 했는데 형사분들께서 날 보고 진짜 형사인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 같이 출동해도 되겠다고 하시면서(웃음). 실제 형사분들께서 그렇게 말씀해주니 뿌듯했다.

Q. 출연배우가 아닌 관객으로서 영화 ‘범죄도시’에 평점을 준다면

점수가 모자라다. 정말 잘 만든 영화다. 주연을 맡았던 윤계상 씨와 마동석 선배 외에는 나를 비롯해서 모두 신인이라 할 수 있었는데 컨트롤하기도 힘들었을 우리 한 명 한 명을 모두 적재적소에 배치해 캐릭터를 잘 살려 주셨다. 감독님 역시 17년만에 영화를 찍으신 건데 이런 결과를 내놓았다는 것에 대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Q. 속편 이야기도 나오던데 또 볼 수 있는 건가

써 주신다면 얼마든지. 나는 항상 열려 있다(웃음).

Q.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해왔던데 앞으로 맡아보고 싶은 캐릭터나 장르가 있다면

정통 블랙코미디에 시도해보고 싶다. 배우로 치면 톰 행크스 같은.

Q. 짧지 않은 배우 생활, 인지도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쉬움, 속상함을 끌어안고 있으면 배우생활을 못 한다. 매번 오디션에 떨어지는 게 일인데 그 역을 맡지 못해서, 더 알려지지 못해서 등등에 신경 쓰다 보면 아마 애초에 이 일을 할 수 없었을 거다. 지금까지 수도 없는 오디션을 봤고 수도 없이 떨어져봤기에 이제는 오디션을 보고 나오면 아예 잊어버린다. 그러다 연락이 오면 좋은 거고. 1, 2, 3차까지 붙어도 최종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범죄도시’ 역시 처음에 1차 오디션을 보고 나왔을 때는 그냥 떨어졌겠거니 하고 잊고 있었다. 그러다 연락이 왔고 운 좋게 끝까지 통과해 합류하게 될 수 있었다.

Q. 부업으로 연기 수업도 하고 있다고

그렇다. 배우를 지망하는 친구들 상대로 연기 지도를 하기도 하고 같이 스터디를 꾸려 공부하기도 한다. 배우 최수인과 윤승아를 가르친 적이 있다.

Q. 연기를 하는 것과 가르치는 건 또 다른 영역일 거 같은데. 연기를 가르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본인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지가 가장 첫번째 스텝인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남과 동시에 타인에 의해, 세상에 의해 포장되어지지 않나. 하지만 배우로서 정말 개성 있고 자신만의 연기를 하고 싶다면 스스로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고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연기를 가르칠 땐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아가는 훈련에 가장 초점을 맞춘다.

Q. 방금 얘기한 관점에서 가장 대표할 만한 국내배우를 꼽자면

많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송강호 선배님. 선배님이 연기를 하는 걸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화를 내거나 코믹연기를 하거나 혹은 사기성 짙은 연기를 할 때에서 조차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답게 연기를 하더라.

Q. 배우 홍기준은 어떤 사람인가

내 입으로 이야기하는 게 조금 웃긴데 글쎄, 이성적인 사람인 거 같다. 또 진실하고 솔직한 편이다. 나 스스로가 진실해야 내가 하는 연기도 그만큼 진실될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솔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Q.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가정에서는 어떤 남편, 아빠인가?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버지께서 참 무뚝뚝하셨다. 그래서 항상 ‘무뚝뚝한 아빠는 되지 말아야지’하는 게 마음 속에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 시간이 있을 때에는 아이들과 잘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리고 남편으로서는 글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집에 가서 물어봐야겠다(웃음).

Q. 아내 분께서는 영화를 보고 뭐라고 하던가

아내는 나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다. 물론 속으로는 나보다 훨씬 더 좋아하겠지만 겉으로는 평정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늘 주의를 잡아준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내가 올리는 게시글에 하트를 눌러주는 게 신기해서 와이프한테 보라고 신나서 이야기하니 “좋단다~” 하고 말더라(웃음). 어서 밥이나 먹으라 그러고(웃음). 와이프 덕에 기복이 확실히 잡힌다. 현명한 아내를 뒀다(웃음).

Q. 역시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한다

맞다. 난 정말 와이프를 잘 만났다(웃음).

Q. 공교롭게 다음 질문이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다. 혹시 결혼인가?

그렇다. 진심으로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결혼이라 생각한다. 정말 잘 했다. 최고다(웃음). 사랑하는 아내 우수정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Q. 반대로 가장 후회되는 일은

글쎄. 평소에 뭔가를 후회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라서 잘 떠오르지 않는다. 살면서 후회되는 일이 왜 없겠냐마는 분명 그런 상황에서도 얻을 게 있고 배울 게 있기 때문에 후회보다는 거름으로 삼는 편이다.

Q.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이름 앞에 달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면?

얼마 전 한 후배가 ‘믿고 보는 홍기준, 파이팅!’ 이라는 말을 하는데 마음에 확 와 닿아 꽂히더라. 나 역시 믿고 보는 배우가 있기에 내가 대중에게 그런 배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 같다.

Q. 홍기준이 믿고 보는 배우는?

아까도 언급했지만 송강호 선배님과 외국배우 중에서는 에드워드 노튼이나 톰 행크스. 그 영화가 어떤 영화가 됐든 이 배우들이 출연했다고 하면 일단은 봐야 하는 배우들이다.

Q. 커서 아이들이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밀어줄 의향이 있는지

나쁜 짓만 아니라면 아이들이 원하는 건 뭐든지 지지해주고 싶다.

Q. 만약 배우가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배우가 아닌 모습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단 한번도.

Q. 마지막으로 대중들에게 한마디

지금처럼 열심히 하는 배우가 될 테니 조금 긴 호흡으로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다.

에디터: 허젬마
포토: 윤호준
의상: FRJ Jeans, 피스비사라
슈즈: 아식스, 라파엘레 다멜리오
아이웨어: 프론트(Front)
헤어: 콜라보엑스 혜민 디자이너
메이크업: 콜라보엑스 공주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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