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터뷰] 곽정은 “잡지 만들다 그만두고 잡지처럼 사는 중”

2017-12-21 16:45:07

[허젬마 기자] “저의 목표는 단순해요. 세상을 조금 더 좋은 쪽으로 바꿔나가는 것이죠. 각자가 지닌 입장과 목소리가 존중 받을 수 있는 세상, 누구는 소외되고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지켜주는 사회. 그리고 그러한 변화에 물결을 일으키는 일을 저는 끊임없이 해나갈 것입니다”

곽정은은 능숙하게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있어보이는 말, 멋드러진 말을 꾸며내기 위한 주저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사회적 통찰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엿보였다. ‘나’가 아닌 ‘우리’에, ‘여성’이 아닌 ‘모두’에 대해 이야기하던 곽정은의 모습에 어딘가 저릿했다면 너무 감상적인 평일까.

방송에 비춰진 그녀의 모습은 오해일 뿐이라고 변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녀를 둘러싼 수많은 댓글에 대한 인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아마 시간의 세례를 받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Q. 처음으로 화보를 촬영했는데 소감이 어떤가

오늘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 아시다시피 나 역시 13년 동안 화보를 찍었던 사람이지 않나. 입장이 바뀌어 찍히는 입장이 돼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Q. 어떻게 지내고 있나

글쓰고 강연 다니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현재 한 일간지와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어서 글 쓰는 건 매주 하고 있고 강연은 주로 대학이나 기업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움직이고 있는데 많을 땐 하루 1000km 이상을 뛴 적도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1인 체제로 살아간지가 3년이 좀 넘었는데 이제는 한 매체에 소속된 게 아니기 때문에 좀 더 폭넓게 이야기를 전파할 수 있게 됐다. 그전에는 에디터 출신이라는 것도 그렇고 주로 나를 연애전문가라 보는 시각이 많았다면 이제는 연애를 포함한 사랑, 인간관계 혹은 자존심과 자존감 그리고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한 시선과 편견들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이다. 나 스스로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해가고 있는 중인 거 같다.

Q. 잡지사 에디터 → 작가, 방송인, 강연자로의 커리어 확대

잡지사에는 여러 기자들이 있으니 각 기자들마다 자기에게 특화된 분야가 있지 않겠나. 그중에서 나는 연애나 커리어 쪽에 좀 더 특화돼 있었고 또 운 좋게 그런 이야기들을 소재로 방송에서 얼굴을 비추다보니 어느 순간 내가 연애 혹은 섹스 전문 칼럼니스트가 되어 있더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일부이고 나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해왔고 또 하고 싶은 사람이다.

한국사람들이 굉장히 숫자에 얽매어 살지 않나. 몇 살에는 결혼을 해야 하고 몇 살에는 집을 사야 하고…. 나 역시 직장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런 힘든 마음을 털어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그리웠고 어떻게 해야 더 따뜻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에 많이 잠기곤 했다.

그런데 사실 사랑에 대한 갈망은 사람의 본성이지 않나.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게 재미있고 흥미롭다. 여전히 내 자신에게 많은 오류점들을 발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또 함께 나누는 역할을 해왔던 지난 몇 년은 나에게 참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Q. SNS에 ‘잡지 만들다 그만두고 잡지처럼 사는 중’ 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2001년에 처음 잡지사에 입사해 13년간을 정말 몸이 축나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일했다.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회사에 들어갔으니 정말 20대 전부를 잡지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지. 그러다 2009년에 내 이름을 건 책을 처음으로 출판했고 그렇게 오로지 나만의 첫 결과물을 세상에 내보인 이후에 조금씩 다른 인생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방송에서 콜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여성으로는 아마 구성애 선생님 이후 처음으로 방송에서 연애와 섹스에 관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었던 거지. 사실 한국사회에서 그런 이야기를 오픈해서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지 않나. 그러다 보니 방송 이후 나를 둘러싼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퍼져나왔고 분명 유쾌하지만은 않은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내 삶에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진 거니 내겐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Q. 방송 이후 많은 악플이 달리기도 했는데

아이러니한 건 방송에서 내가 했던 이야기들은 이미 몇 년도 훨씬 전에 내가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바탕으로 한 말이었다는 거다. 그게 전파를 탔을 때 그 정도로 이슈가 되고 파급력이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방송 이후 나를 두고 설왕설래 주고 받는 댓글들을 보며 ‘나는 허락한 적 없는데 왜 나를 이렇게 다루지’라는 의문이 들더라.

처음엔 정말 감당하기 버거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메시지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된 이상 그 반대 의견이나 혹은 개인적인 헐뜯음까지도 감수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단단해지기 시작했던 던 거지. 이런 나를 보고 신동엽 오빠가 “많이 강해졌다”는 소리를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Q. 그렇다면 실제 성격은?

글쎄. 내 실제 성격을 내 입으로 이야기 한다는 게(웃음)…. 일단 나는 십 수년간을 어떤 주제에 대해 뾰족하게 글을 쓰고 냉철하게 전달하도록 트레이닝이 된 사람이다. 자기 의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 않나. 그게 방송에도 똑같이 반영이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내용보다도 태도를 문제 삼더라. 그런 반응들이 의아하기도 또 때론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어떤 여성 방송인이 미디어에서 이 정도로 세게 발언을 하는 기본값이 없었던 거다. 사근사근하고 상냥한 말투, 이런 정형화된 여성의 모습밖에 비춰지지 않았던 거지.

나는 우리나라에서 여성에게 기대하는 상냥함의 기본값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을 가지고 비판하는 건 얼마든지 좋다. 하지만 화법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 건 조금 부당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나는 세게 말하는 게 아니라 뾰족하게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누구나 상황에 따라 톤 앤 매너가 다르고 나 역시 방송에서와 일상에서와의 모습은 당연히 다르다. 실제로는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고 정도 많다. 믿어주려나? (웃음)

Q. 최근 온라인 상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설전이 많이 오갔는데 곽정은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잡지사에 다니는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여성들의 삶을 취재하고 들여다 봐왔다. 나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라는 틀 안에서 아주 평범한 여성으로 자라난 사람으로서 그 성장과정에 있어 수많은 부당한 차별과 경험을 몸소 겪어왔고. 이런 개인적인 경험과 타인 여성들의 삶을 합쳐봤을 때 한국 여성들은 확실히 삶을 관통하는 과정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똑같이 뭔가를 해도 기울어져 있는 땅 위에서 평등하게 내가 원하고 노력하는 만큼 능력을 발휘하기가 힘든 건 분명 사실인 거지.

그러나 나는 이것을 여성만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남녀 모두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자는 것이다. 힘든 것도 같이, 좋은 것도 같이 하자고 말하고 싶은 거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목소리를 크게 낸다고 하더라도 뭔가를 바꿀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또 이런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듣기 싫고 거북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나. 부모님 세대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우리 세대부터는 조금 더 남녀 모두 행복한 세상이 되어야 하니까.

Q. 연애 그리고 결혼

내 연애의 절반은 실패였다. 어떤 사람과 행복해서 얻은 교훈보다는 행복하지 않아서, 불행해서 얻은 교훈이 더 많았다. 평소에도 나는 내 인생이 오답노트로 꾸려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강연할 때에도 ‘나는 이렇게 해서 실패했어요, 차였어요, 그래서 힘들었어요’ 등을 많이 이야기하는 편이고.

또 내가 연애나 섹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혹자는 내가 자유분방하게 남자들을 만나고 다니지 않나 하는 편견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연애할 때 절대 한눈팔지 않는 지극정성 타입이다.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면 잘 아는 한의원에 가서 약 사다 주고(웃음). 물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될 때 나오는 지극정성이다.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땐 또 가차 없이 돌아설 줄도 알지(웃음).

사실 요즘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점점 사라져 간다. 그러면서도 내 옆에 나 한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또 반면 혼자 사는 즐거움과 행복에 대한 만족도 커서 사실 지금 딱 결혼 하고 싶다, 안 한다 단정 짓기는 그렇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난 이미 한번 다녀오지 않았나(웃음).

중요한 건 몇 살에는 짝이 있어야 하고 몇 살 정도엔 결혼을 해야 한다는 풍조가 만연한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 이끌려 결혼을 결정하면 후회하기 쉽다는 거다. 나 역시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으로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


Q. 세대의 흐름에 따라 설파하는 메시지도 달라질 거 같은데 최근 주요 관심사는 무엇인가

현재 한겨레에서 연애라는 주제를 사회적인 담론으로 풀어나가는 ‘이토록 불편한 사랑’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애초 기획 자체는 사람들의 연애고민을 해결해주는 거였는데 사실 예전에야 그야말로 일차원적이고 베이직한 질문들이 다수를 이루었다면 요즘은 사람들의 고민 자체도 사회적 배경에서 형성된 것들이 많아 나 역시 사회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보통 ‘연애’ 하면 샤방샤방한 이야기들을 떠올리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가성비를 따지고 잠재적인 권력관계와 나아가 폭력까지 동반되는 다양한 담론이 펼쳐진다. 이처럼 연애는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편견 또는 우리 시대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거지. 나는 그 부분을 건드리고 싶었다. 지금까지 이야기되지 않았던 것들, 이야기되지 않았기에 바뀌지 않았던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다수와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게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게 두려웠다면 시도조차 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내가 했던 백마디 중 단 한마디에 초점을 맞춰 나를 비난하고 헐뜯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그들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나는 내 목소리를 낼 자유가 있고 대중은 그걸 취사 선택할 자유가 있지 않겠나.

또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요즘 사람들이 말 뿐만 아니라 글 또한 길고 복잡한 것에 취약해져간다는 사실이다. 통글을 읽기 힘들어하고 짧고 자극적인 것에 취해 지식이나 정보를 그냥 소비해버리는 거지. 안타깝고 두려운 현상이다.

Q. 앞으로의 활동계획

글쎄. 거창한 계획을 세우면 잘 안 되는 것 같다(웃음). 오히려 그냥 가던 길을 꾸준히 걷다 보면 그게 쌓여서 언젠가 꽃 피우는 날이 오게 되더라. 다만 이전과 한가지 달라진 점은 지난 4년 동안 혼자서 모든 것을 소화하던 때와 달리 이제는 회사가 생겼으니 좀 더 다양한 작업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혼자서는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일정을 소화해냈는데 이제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으니 함께 손잡고 나의 권력과 파워를 늘릴 수 있는 일들을 모색해보려고 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 인생의 모토가 ‘너무 애쓰지 말자’이다. 지난 15년간은 나도 무진 애를 쓰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 여유와 여지를 두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나아가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고 그 남은 빈 공간만큼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삶을 지향하려고 한다.

우리가 남을 참견하기는 좋아하면서 남의 의견을 닫는 귀는 닫혀있지 않나. 우리 사회는 너무나 하나로 통일하는 걸 좋아하는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획일성이 가져오는 문제가 훨씬 더 크다. 저마다의 입장이 있고 견해가 있는 건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알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염원한다. 누구는 소외되고 배제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지켜주는 것. 그리고 그러한 변화에 물결을 일으키는 일. 나는 끊임없이 그런 일을 해 나갈 것이다.

에디터: 허젬마
포토: 김연중
영상 촬영: 이재엽, 정인석
편집: 석지혜
의상: 루트원, 캐롤리나 헤레라, 마리타 후리나이넨
슈즈: 섀도우무브(SHADOWMOVE)
액세서리: 판도라
헤어: 순수 청담 설레임점 민규 부원장
메이크업: 순수 청담 설레임점 오희진 원장
장소: 인더무드포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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