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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모델 주노 “나의 문화 보여주고파, 많은 이들에 영감 줄 수 있었으면”

2018-01-26 17:29:27

[마채림 기자 / 사진 bnt포토그래퍼 윤호준] 하나의 수식어로 설명하기에 아쉬운 사람이 있다. 모델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직접 만나본 그는 단순히 ‘모델’이라는 수식어에 가두기엔 너무나 많은 예술적 감각과 철학을 가진 모습이었다.

런던패션스쿨에서 패션 스타일링과 프로덕션 공부를 하던 학생이었던 주노. 영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현지 모델 에이전시에 발탁돼 2017년 F/W 런던패션위크로 화려하게 데뷔하며 패션계에 얼굴을 알렸다.

이후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국내 패션 브랜드를 통해 2017 F/W 서울패션위크에 올랐고, 국내 모델 에이전시인 에스팀에 발탁되며 본격적인 한국 활동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 모델은 물론 패션 스타일링, 각종 패션 관련 미디어 기획, 여기에 작사까지. 못 하는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 주노와 함께한 영감 가득한 인터뷰를 공개한다.

Q. 연출 공부, 모델, 작사가 ‘유노주노’, 패션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학생이라서 바쁜 일은 학교 일밖에 없었는데 이런저런 일이 생겨 바빠졌다. 전보다 다이내믹하게 지낼 수 있어 감사하다. 모델 일을 시작한 건 1년 정도 됐는데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한 건 6개월 전부터.

Q. 언제 한국에 온 건가

1월11일에 와서 21일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다. 이번에 온 건 친한 친구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온 김에 한국 일정을 소화하는 중.

Q. 인스타그램을 보니 최근 이집트를 다녀왔던데

챈스챈스 디자이너인 모델 김찬 형과 원래 아는 사이라 함께 작업하게 됐다. 이번에 챈스챈스에서 C2C라는 로고를 새로 만들었는데 C2C를 두고 생각하다 보니 내가 평소 좋아하던 BBC Earth라는 프로그램과 비슷한 느낌이더라. C2C Earth라는 이름으로 오지에서 촬영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 오지로 향하게 됐다. 그러다 정해진 게 이집트 사막.

거기서 윈터 파카 에디토리얼을 찍으면 색다를 것 같아 이집트로 향했다. 이집트로 향하는 게 조금 무섭고 겁이 났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굉장히 재미있더라. 사막에서의 하룻밤, 예뻤던 별, 날 것 그대로인 도시의 느낌이 참 좋았다. 장소의 장점 덕에 사진도 잘 나온 것 같아 만족스럽다. 기존과는 새로운 느낌이라 소비자들이 관심을 가질 것 같아 기대된다.

Q. 한국 일정은?

다른 매거진 촬영을 앞두고 있다. 가수 주영 형과 함께 스타일링 단계부터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 같아 기대하고 있다. 예전에 모델 김원중과 가수 빈지노가 함께 찍은 화보를 본 적 있는데 느낌이 좋았다. 주영 형과 닮은 외모는 아니지만 나와 전체적인 이미지가 비슷한 부분이 있는 데다 얼마 전 2월 중으로 발매될 앨범 작업도 같이 했다는 연관성이 있어 시도해보게 됐다.

Q. 일정을 마치고 나면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는 건가

그렇다. 런던으로 돌아가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Q. 런던패션스쿨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학과 이름은 패션스타일링&프로덕션이다. 본래 패션에 관심이 많은데 디자인보다 미디어 쪽에 재미있는 게 많더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들에 대한 작은 요소들의 구성이 재미있다는 생각에 스타일링과 연출을 배우고 있다. 어찌 보면 패션에서의 연출이 곧 스타일링이지 않나.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는 친구들은 물론 연출가, 세트 디자이너 등를 목표로 두고 있는 친구들이 많은 학과다.

Q. 언제부터 런던에서 지냈는지

중학교 때부터 캐나다에서 지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캐나다에서 경영 공부를 했는데 재미가 없더라. 과제에 밤을 새우더라도 즐겁게 밤을 새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버지께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던 패션 분야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이후 대학교를 재입학해 그때부터 영국에서 지내게 된 것.

Q. 영국에서는 혼자 지내는 건지

그렇다. 영국 기숙사에서 혼자 지내다 지금은 마음이 잘 맞는 학교 형들과 함께 지낸다. 나는 스타일링과 연출을 공부하고 형들은 사진을 찍고 옷을 만든다. 각자의 분야가 있어 시너지가 있고 작업을 같이 할 수 있어 재미있다. 거기에 내가 최근 모델 일까지 시작하게 되면서 이제는 집 안에서 모든 게 다 이루어진다. (웃음)

Q. 런던 현지서 길거리 캐스팅되어 모델 데뷔를 하게 됐다고 들었는데. 당시 상황?

학교를 다니면서 한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식당 문 앞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모델이냐고 물어보더라. 아니라고 답하니 명함을 주고 갔다. 영국 현지에 있는 모델 에이전시였는데 처음에는 전혀 관심이 안 생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좋은 회사라기에 직접 찾아가 본 것을 계기로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다.

Q. 모델이라는 직업을 염두에 두었나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 키가 크고 마른 데다 패션에 관심도 많으니 주변에서 모델을 해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당시에는 모델이라는 것 자체가 타고난 부분만으로 하는 일 같았고 창의적인 것들이 발현되는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에 흥미를 못 느꼈는데 막상 해보니 즐거웠다. 나의 표정, 분위기에 대한 이해력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체험하니 그것 또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Q. 포즈를 취하는 면에 있어서 특별히 어려울 때는 언제?

밝은 포즈나 표정을 주문할 때 어렵다. ‘샤방샤방’이라고 해야 하나. (웃음)

Q. 에스팀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런던에서 쇼를 하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는데 그걸 보고 한국 브랜드에서 연락을 해왔다. 이번에 서울패션위크 때 쇼를 하는데 모델로 참여할 수 있겠냐고. 안 그래도 봄방학이라 한국에 갈 예정이라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침 에스팀이 기획하는 쇼였는데 첫 리허설 때 상무님이 나를 보고 관심을 가져주셨다. 상무님을 비롯해 쇼를 하는 와중에 해외 팀에서도 관심을 줘 에스팀과 인연이 닿게 됐다.

런던에서 모델 활동을 하면서도 한국에서 활동할 회사를 구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 에스팀은 워낙 한국에서 유명한 회사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내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나라는 사람 자체만 보고 판단해준 회사에 고마웠다. 가끔은 너무 과분하게 나를 챙겨주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그만큼 못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원래 정이 많고 감성적이다.


Q. 모델로서 처음 2017 F/W 런던패션위크 런웨이에 올랐을 때의 기분을 묘사하자면

짜릿했다. 살면서 그렇게 주목받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지 않나. 굉장히 떨렸다. 태연한 척하려고 했지만 너무 떨렸다. 흥분된 마음에 어떻게 걸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따로 워킹 트레이닝을 받진 못했지만 평소 걷는 것처럼 걸었으면 좋겠다는 디렉션에 따라 편하게 걸었다.

Q. 런던패션위크와 서울패션위크, 무엇이 가장 다르던가

사람들은 해외와 국내가 다르다는데 소비자가 다르고 진행 방법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빼고는 다를 게 없다. 옷은 한국이 조금 더 상업적이고 영국은 실험적인 면이 있다. 그 외적으로는 영국이든 한국이든 다 열정적이라 큰 차이를 못 느낀다.

Q. 패션브랜드 챈스챈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하게 된 계기

최근 에디토리얼을 진행한 것. 찬이 형이 인스피레이션 등의 작업을 하고 싶어 3개월간 영국에 와 있었다.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형이 영국에 온 김에 영어를 배우고 싶었나 보다. 내가 형의 영어 과외를 하게 되면서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C2C the Earth 작업도 하게 된 거다.

유럽에 있는 김에 형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럽 패션스쿨에 다니는 한국 학생들로 에디토리얼을 찍어보고 싶었고 그렇게 영국 패션스쿨 에디토리얼이 나왔다. 형과 함께 있으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서로 관심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겁다. 나는 아직 학생인데 형을 만나 실무에 투입될 수 있어 고마운 마음이다.

Q. 자신만의 패션 철학이 있다면

의도가 드러나는 걸 피한다. 일부러 멋을 내려고 시도하면 다 멋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을 빼도 멋있는 게 진짜 멋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평소 헤어스타일에도 신경을 잘 안 쓰고 옷도 편하게 입으려고 하는 편이다.

Q. 꾸몄을 때 예쁜 사람과 안 꾸몄을 때 예쁜 사람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는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도와 당당함의 차이인 것 같다. 자연스럽게 가방을 메고 학교를 가는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나름의 멋이 느껴지듯 자기 본업에 충실할 때 더 멋있더라. 옷을 막 입었는데도 주위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참 멋있게 다가온다. 예전에는 바지 핏부터 양말 색까지 신경 쓰면서 스타일링했는데 내가 입은 옷보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더 멋있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추구하는 스타일이 달라졌다.

Q. 그렇다면 누군가를 스타일링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접근하고 싶나

화보보다는 전담 스타일링을 해보고 싶다. 상대방과 충분한 대화를 나눠 그의 특징을 충분히 이해하고 트렌디한 아이템보다는 그 사람의 성격과 아우라가 잘 드러날 수 있는 매개가 되는 옷들로 스타일링 하고 싶다.

Q. 패션디자인에도 뜻이 있는지? 주노의 패션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은?

디자인은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향후 내가 좋아하는 실루엣이나 아이템을 만들어 ‘내가 이런 문화를 좋아한다’고 공유하고 싶다. 빠르면 올해에도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Q. 작사가 ‘유노주노’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프라이머리 앨범 ‘신인류’ 중 ‘Baby’를 작사, 김영근 앨범 ‘아랫담길’ 중 ‘Where Are You Now’를 작사했다. 어떤 경로로 작사를 시작하게 됐나

가수 주영 형이 곡을 만들어 영어 가사를 부탁해왔다. 그 가사를 형이 마음에 들어 했고 그때부터 함께 작업하게 됐다.


Q. 작사를 할 때마다 한국에 들어오는 건지

꼭 그렇지는 않다. 주로 주영 형이 주는 곡들의 가사를 쓰고 있는데 형이 한국에서 곡을 보내주면 내가 영국에서 가사를 써서 보내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Q. 작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공감’이다. 가사를 들었을 때 듣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 떠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한 장면들이나 일상 속의 해프닝들을 흔치 않게 표현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Q. 작곡에 대한 관심은?

작곡은 아직 생각이 없다. 작사를 하면서 작곡가분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정말 어려운 감각들이 나와야 하는 작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Q. 지금 하고 있는 작업 외에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아트 디렉터. 전체적인 분위기를 디자인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화보 촬영부터 특정 가수의 앨범 재킷 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싶다.

Q. 올해 계획

내 진짜 성격이 묻어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오해를 많이 사는데 조금 더 나다운 사람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보면 낯을 가리는 것조차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이 될 때가 있다.

낯을 가리는 것과 친구들과 함께 편안하게 장난치며 지내는 모습 중 어떤 게 진짜 내 모습인지 헷갈리더라. 그런데 결국은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 자체가 나인 것 같았다. 그래서 받아들이기로 했고,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분들과 더불어 열심히, 긍정적으로 살고 싶다.

Q. 독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

‘알쓸신잡’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싶다. 우리 세대는 신문, 뉴스와 친하지 않은데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기 때문. 또 2월에 주영 형과 함께 작업했던 앨범도 정말 열심히 준비를 한 만큼 기대해주셨으면 좋겠다.

Q. 주노의 최종 목표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웃음) 그게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건 멋있는 일인 것 같다. 예술적으로 살려고 노력하지는 않되 어느 방향이든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입은 옷과 하는 일에 대한 단적인 모습이 아닌 문화적으로 내가 하는 일들을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을 찾아가지 않을까 싶다. 계획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걸 좋아한다.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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