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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기로 말하는 남자, 박호산

2019-03-27 11:43:32

[이혜정 기자] 표정, 눈빛, 목소리, 몸짓, 감정. 모든 게 어우러져 한목소리를 내며 연기할 때 보는 사람에게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명연기가 탄생한다. 우리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배우 박호산. 박호산은 자신에게 있는 모든 걸 사용해서 그야말로 ‘미친’ 연기를 한다.

연극무대에서 알차게 쌓은 패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난 그. 23년간 묵혀온 내공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단숨에 대중들에게 박호산이란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키더니 그 후로는 그야말로 순풍 중이다. 연기가 아직 배고프다는 듯 반가운 다작 행보를 보여주며 대중과 관객의 보는 눈을 정화하는 연기파 배우 박호산.

박호산의 생애 첫 화보 현장에서는 또 한 번 명연기를 선보이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고뇌, 슬픔이라는 표현하기 모호할 법한 콘셉트를 설명하고 ‘아차’ 싶었던 것도 잠시. 바로 감정에 몰입하더니 마지막에는 눈물까지 흘리는 그를 보며 소름 돋는 팔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어진 인터뷰에서는 ‘이 사람, 배우를 하지 않았으면 무얼 하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연기, 배우의 삶밖에 모르는 한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Q. 화보 촬영 소감

“배우는 주어진 역할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개인적인 모습을 보여드릴 일이 별로 없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서 다른 모습을 맛보기로나마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아서 기대된다”

Q. 근황

“요즘 정말 공연을 하고 싶었다. 나는 원래 연극을 굉장히 좋아한다. 원래 연극배우기도 하고 무대 위에 서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런데 그런 연극을 1년 반 동안이나 못하니까 너무 배고픈 느낌이랄까… 그래서 드라마 하나를 내려놓고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덕분에 요즘은 완벽하게 연극배우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4월에 LG아트센터에서 3주 동안 ‘인형의 집 PART2’를 진행한다. 연극 연습을 하면서 느낀 게 피가 막 돈다. 저렸던 발이 풀리는 느낌이랄까. 나 자신도 굉장히 재미있고 또 모두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다. 나도 모르게 연극 홍보가 먼저 나오네(웃음)”

Q. 연극 무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지

“또 하나의 역할일 뿐이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나는 나 스스로가 멋있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내가 연극에서 맡은 역할이 주인공 노라의 아주 가부장적인 남편 역할인데 그 가부장적인 사람이 아주 깨어있는 전처를 만나고 그러면서 본의 아니게 코미디가 일어난다. 재미있게 보실 수 있디. 심각한 작품이 아니라서. 고루하지만 귀여운 느낌의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Q. 2017년부터 활약이 눈부시다. 다양한 작품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는데. 먼저 최근작 MBC ‘나쁜형사’에서는 정말 악역으로 분해 열연했는데

“연극배우를 23년 가까이하면서 별의별 역할을 다 해봤다. 사이코패스부터 게이, 거지, 왕 등. 그시간을 거치면서 나한테 표현하고 활용할 수 있는 카드는 충분히 있는 것 같다. 여러 개의 카드가 있고 그 카드 중에 하나를 빼서 작품마다 사용했는데 많은 분이 사랑해 주셔서 그게 보람이다”

Q. 연극무대에서 브라운관으로 활동지를 옮겨오면서 팬들의 반응도 더 와 닿을 것 같은데

“대학로에서 오래 활동 했다 보니 연극 보러 오시는 분들과는 입장할 때 ‘안녕하세요’ 하면서 인사를 다 나눈다. 대학로 돌아다니면 모르는 분들과 꾸벅꾸벅 인사하고. 방송에 나오고 달라진 점은 그냥 대학로에서 인사를 하던 그 기분이 전국으로 확대된 느낌 정도? 그런 변화가 그렇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아닌데,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 됐다는 생각보단 그냥 ‘좋다’ 정도? 누가 다가와서 사인이나 사진 요청하셔도 전혀 부담감 같은 건 없으니까 언제든지 오셔서 요청하셔도 괜찮다(웃음). 밥 먹다가도 해드린다. 여전히 대중교통도 많이 이용하는데 한번은 지하철에서 나와 같은 칸에 있는 분들이 날 보고 그냥 조용하게 웃으시더라. 내가 불편할까 봐 굳이 아는 척은 안 하시고 배려해 주시는 건데 그럼 나도 그냥 같이 웃는다(웃음). 그런 일들이 너무 재미있다”

Q. OCN 드라마 ‘손 the guest(이하 손 더 게스트)’에선 약간은 푼수 같은 모습을 보여주다 갑자기 빙의 연기를 하는 어려움이 컸을 거 같은데

“긴장이랄까. 무섭다고 느끼면 몸이 긴장되지 않나. 그게 앞에 릴렉스가 있으면 더 텐션이 강하게 오거든. 내가 맡은 고봉상 이란 사람이 워낙 릴렉스한 사람이고 구멍이 많고 허허실실한 사람이라 그 후의 빙의가 더 크게 느껴지셨을 것 같다. 고봉상이란 사람을 연기하면서 내가 마음껏 무언갈 풀 수 있는 순간이 빙의였다(웃음). 아무래도 주인공인 정은채 씨를 돕는, 조금은 분량이 적은 역할이었는데 빙의 장면이 있어서 거기서 한을 푼 거지(웃음)”

“빙의 연기가 드라마에서는 처음이지만 연극 공연에선 많이 해봤다. 개인적으로 ‘손 더 게스트’에 나왔던 빙의자들과 달랐던 게 고봉상이 원래 가지고 있던 모습에다가 빙의 연기를 더 실었더니 ‘훨씬 소름 끼친다’고 말씀하신 분들이 많았다. 확실히 그건 효과적이지 않았나 싶다. 자찬이 되어버렸네(웃음). 아무 낌새도 없다가, 내 편인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이상할 때. 싸늘해지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고봉상의 분량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나 스스로는 분량에 아쉬움이 있더라도 절대로 주연의 역할을 가리면 안 된다는 주의다. 나도 주연, 조연 모두 해 봤지만 서로 롤이 있는데 그 선을 넘어 버리면 작품 전체가 망가진다. 나의 파트너였던 정은채 씨가 연기한 길영이의 연기 톤에 없는 부분들을 잘 찾아서 연기를 해 보려고 했었고 그러다 보니까 길영이가 워낙 무거운 캐릭터다 보니 나는 좀 더 수다스러워지고 그랬던 것 같다”

Q. 쉽게 인기를 얻기 힘든 빙의 물이지만 큰 인기를 얻었다. 현장 분위기도 좋았을 것 같은데

“내가 팀복이 있다(웃음). 시청률이 높든, 낮든 팀이 항상 재미있고 즐겁고 모난 사람 하나 없고. ‘나쁜형사’ 얘기로 잠깐 돌아가자면 그 나쁜 주제에 나쁜 역할에 범죄드라마 임에도 불구하고 김대진 PD님이 정말 사람이 좋다. 근무 시간 딱 52시간 지켜주고. 그러다 보니까 연기자고 스태프고 다 잠은 충분히 자고 오니까 다음 촬영 때 만나면 기분 좋게 만나서 밝게 인사하고. 그런 시스템이 되니까 좋았지. ‘손 더 게스트’도 감독님이 워낙 개그 기질이 있었다. ‘컷’ 하고 나면 농담 따 먹기도 하고. ‘손 더 게스트’는 주인공 삼총사의 관계성이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까지 같이 관계성이 있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사적으로도 아주 칭찬하고 싶은 후배들이다.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생활도 잘하고 술도 잘 사고(웃음)”

Q. 어느 후배가 그렇게 술을 잘 사던가(웃음)

“다들 성격이 좋지만 기억에 남는 건 윤화평 역할을 맡은 (김)동욱이가 한번 전체 회식을 시켜준 적이 있지. 그때 마침 또 (김)동욱이가 출연한 영화 ‘신과 함께’가 흥행하면서 겸사겸사 크게 한 번 샀지. 정말 기억에 남을 회식이었다(웃음)”


Q. 더 이전으로 돌아가자면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연극무대를 넘어 브라운관에서도 드디어 빛을 냈는데. 인기는 예상했는지

“맞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이하 슬빵)’은 내 출세작이지(웃음). 하지만 처음에 예상은 인기와는 정반대였다. 아무리 신원호 PD님이지만 너무 자신을 믿는 게 아닌가 싶었던 게 첫 리딩을 하러 갔는데 전부 연극배우들이었다(웃음). 유명한 배우라면 (정)경호. 경호와 (정)수정 씨. 그 둘 빼고는 나머지는 다 그냥 나하고만 친했던 사람들이다(웃음). 해롱이 역할의 이규형도 지금은 유명하지만 나하고 2인극을 몇 달 동안 했던 그런 친구고 주인공인 (박)해수도 나하고 작품 몇 개나 했고. 다 연극 쪽 배우들인 데다가 소재도 감옥이래(웃음). 그래서 정말 걱정이 많았다. 나 개인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이번에 의례적으로 연극배우들을 이렇게 많이 투입했는데 이 드라마가 잘 안 되면 앞으로 연극배우들을 잘 안 쓸 것 같다는 거였다. 반대로 우리가 지금 잘해놓으면 앞으로 뒤따라 방송으로 오는 연극배우들은 좀 편하지 않을까 등의 얘기들을 술 마시면서 자주 했다”

“다행히도 ‘슬빵’이 굉장히 잘 됐고 그 후로 나는 누가 나를 알아본다는 기쁨보다는 대본이 들어온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가장 크다. ‘슬빵’ 이후로 대본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는데 그게 정말 기가 막히게 기분이 좋다. 이제 조금 방송에서 내가 보여준 모습으로 쌓인 게 있으니 뒤로는 안 가겠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럴수록 겸손과 실력으로 무장한 사람이 되자고 결심한다”

Q. 당시 오디션을 굉장히 많이 봤다고 들었다

“여러 번 했던 말이지만 한 5번까지 계속 부르더라. 갈 때마다 이 역할 주고, 저 역할 주고, 이 대사 해 보세요, 저것도 해 보세요 하면서… 처음엔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는 사람이 신원호 PD인데… 나름 즐거웠다(웃음). 게다가 말도 기분 좋게 해 준다. ‘아, 선배님은 제가 알고 있었는데 좀 큰 역할로 쓰고 싶어서 안 부르고 있었어요’ 라고 해서 뿌듯했지. 그런데 네다섯 번을 오디션을 봐도 역할을 안 줘서 구시렁거리니까 감독님이 ‘선배님은 이 역할이든 저 역할이든 드리면 다 얼추 맞는데, 딱 이거라는 게 안 생기고… 또 어떤 사람은 다 안 맞는데 이거 딱 하나만 맞고 하다 보니까 선택이 늦어지고 있다’고 하시길래 내가 발상을 바꾸라고 했었다. 나는 맞춰지는 사람이다. 아무도 안 맞는 거, 이 역할을 누굴 줘야 하지 그런 역할 잘하는 사람이라고 어필 했더니 바로 혀 짧은 역을 주더라(웃음)”

“처음엔 왜 하필 혀 짧은 캐릭터냐고 물었는데 이유가 ‘PPL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혀가 짧은 캐릭터가 나오니까 PPL 광고 없이 상호를 쓸 수 있더라. 딘라면, 후디딘, 또코파이 다 되니까(웃음). 신원호 감독은 정말 존재하는 것들이 이름을 이상하게 바꿔서 나오는 걸 아주 싫어한다. 몰입도가 떨어지고 아무래도 이질감을 주니까. 그런데 문래동 카이스트가 말하면 다 되거든(웃음). 욕도 가능하고. 어떤 심한 욕을 해도 괜찮다(웃음)”

“일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신원호 PD님은 참 좋은 사람이다. 첫 촬영 한다고 배우들한테 다 전화 돌리는 피디는 처음 봤다. 굉장히 수평적인 사람이고 스텝, 배우, 막내 나이나 그런 걸 막론하고 모두에게 평등하다. 진보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많이 배웠고. 요즘은 후배들한테 술을 많이 사줄 수 있어서 좋다. 술 많이 산다. 이건 자랑해도 돼(웃음)”

Q. ‘슬빵’에서 혀 짧은 캐릭터를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연습을 주로 했는지

“혀 짧은 연기는 사실 연습을 많이 했다기보단 그냥 그렇게 살았지. 대본에는 그냥 일반 체로 쓰여 있어서 그걸 혀 짧은 느낌으로 살려야 했는데, 어떤 발음은 들려야 하고 어떤 발음은 안 들려도 괜찮고. 그런 부분을 잘 판단해야 해서 처음에는 사실 감을 잡기 어려웠다. 그런데 신원호 PD가 ‘선배님, 그냥 대사를 좀 빠르게 얘기하면 오히려 더 잘 들릴 것 같은데요’라고 해서 그렇게 해봤더니 그게 포인트였다. 진짜 빠르게 슥 넘어가니까 그게 괜찮더라. 대사가 다 들리고”

“혀 짧은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라서 많은 분의 기억에 깊게 남은 것 같다. 사실 내 분량 자체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중간에 하차하게 됐을 때 처음엔 나도 정말 아쉬웠다. 근데 하차 방송이 나가고 난 후 사람들이 하나같이 ‘도다와, 도다와(돌아와, 돌아와)’ 하니까(웃음). ‘아, 내가 지금 내려오길 잘했다. 내가 언제 이렇게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애타게 찾는 대우를 받아보겠어’라는 생각이 오히려 들더라”

Q. 혀 짧은 연기가 워낙 인상 깊던 탓인지 정말 혀가 짧다고 생각하는 대중들도 많더라(웃음)

“아직도 내 연관 검색어가 ‘박호산 혀’다. 다른 작품을 해도 ‘저 사람 혀가 정말로 짧은가’ 괜히 발음이 신경 쓰이게 된다고 하더라. 내가 출연한 작품에 관한 댓글도 보면 제일 많았던 이야기가 ‘저만 (혀)짧게 들리나요’ 였지. 처음에는 좀 상심이 되다가 ‘손 더 게스트’ 할 때 이원종 선배님 말씀에 위로를 얻었다. 선배님이 그러시더라. ‘나는 아직도 구마적이야’(웃음). 그 얘기를 듣고 ‘아, 그렇지 형은 구마적이지’ 하고는 ‘그래, 나는 카이스트구나’ 하면서 그렇게 상처가 치유됐다. 이 자리를 빌려 (이)원종이 형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웃음)”

“난 아마 몇몇 분들에게는 평생 혀 짧은 문래동 카이스트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항상 새로운 드라마 초반부에는 혀 짧다는 말을 듣는데 나중에 캐릭터가 좀 더 굳어지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가더라. 매번 그래서 이제는 다음 작품에도 그러려니 한다”

Q. ‘슬빵’으로 20여 년 만에 첫 수상의 영광을 얻기도 했는데.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정말 상상도 못 했다. 함께 후보에 올랐던 분들도 정말 너무 쟁쟁했고. 놀라운 게 정말로 수상 여부를 알려주지 않더라(웃음). 기대를 전혀 안 했는데 상을 주셔서 첫째로 기분이 좋았고 두 번째로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수상복이 좀 없었는데 나라도 받은 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에 기분이 좀 복잡했다. PD님께 감사하기도 하고”

“이제까지 활동하면서 상복은 없었는데… 이번에 상을 탔다고 해서 사실 별로 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상은 그냥 페이 같은 것이라고 본다. 페이나 상은 뒤에 따라오는 거지 나 스스로 ‘저는 얼마에요’라고 앞에 놓고 가진 않거든. 내가 열심히 하다 보면 뒤로 붙는 거니까. 그냥 주시면 감사하지만 그걸 받기 위해, 상을 목적으로 노력하진 않을 거다”

Q. 이렇게 눈에 띄는 신스틸러로 브라운관에 나오기까지 무려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마흔 살이 넘어서야 인지도가 급속도로 높아진다는 브라운관 무대로 옮겨올 수 있었는데. 변화의 계기가 있었다면

“경제적으로 욕심이 전혀 없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정말 큰 욕심은 없다(웃음). 연극을 하면서 그래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어서 연극만 해 왔었고. 사실 매체 쪽으로 갈 마음은 별로 없었다. 매체 쪽에서 ‘오디션 보러 오세요’ 하면 오히려 ‘공연 보러 오세요’ 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니까 아이들도 점점 크고, 그러면서 들어가는 비용도 커지고. 이런 이유도 일차적으로 있었고 무엇보다 20년 넘게 연극을 하다 보니 늘 같은 사람들만 만나고 비슷한 작품만 하는 건 아닐까, 내가 너무 고여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매체 쪽도 문을 두드려 봤던 것 같다”

“처음에는 매체에서도 쉽게 문을 안 열어 주더라. 처음 브라운관으로 옮겨가고자 했을 때 한 4, 5년은 오디션만 보러 다녔다. 그러다 2016년도에 SBS 드라마 ‘원티드’ 감독이셨던 박용순 PD님이 내가 단편영화를 했던 걸 본 거다. ‘족구왕’. 나를 보자마자 ‘어! 족구왕!’ 이렇게 된 거지. 그러면서 역할 큰 거 하나를 주셨다. 그게 시작이었다”


Q. 본명인 줄 알았는데 본명이 박호산이 아니더라

“맞다. 본명은 박정환. 호산은 할아버님 성함이다. 마흔쯤에 우울증도 오고 그러면서 ‘내가 잘못 살았다’라고 생각하면서 힘들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내가 고인 물인 거 같다는 생각도 하고 그러면서 치유하기 위해서 새로운 매체 쪽으로 나와보려고 했던 거니까”

“그러던 중 어느 날 꿈에 어떤 할아버지가 나를 박호산이라고 부르면서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들을 엄청나게 혼내시더라. 그래서 반박도 못 하고 듣고 있는데 잠에서 깨고 나니까 ‘박호산, 박호산? 이름을 바꿔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 내가 박호산이라고 불리니 뭔가 혼나는 느낌이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서 ‘아, 정신 차려야지’ 하게 되는 그런 기분. 꿈에서 받은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고 싶어서 이름을 바꾸기로 했지. 처음에는 공연팀에서도 난리가 났었다. 이미 박정환으로 연극을 20년넘게 해 왔는데 이름을 바꾼다니(웃음). 그래도 바락바락 우겨서 박호산으로 한 두 작품을 하다가 지금까지 오게 됐다”

Q. 박호산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백발

“한 때는 콤플렉스였다. 전역하고 나서부터 흰 머리가 나기 시작했는데 삼십 대 중반쯤 되니까 완전히 백발이 됐다. 사실 백발이면 할 수 있는 역할이 조금 국한된다. 난 아직 더 다양한, 젊은 주인공도 좀 해보고 싶은데 다 나이든 역할만 들어 오는 거다. 연극을 할 땐 매번 염색하고 다녔다. 나중에 신원호 PD를 만나고 바뀌게 됐다. 어차피 당시 배역이 내 나이보다 많은 배역이고 50대 역할이니까 그냥 백발로 가자고. 그 후로 그냥 백발로 다니니까 지금은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심지어 멋있다고도 해주니까. 미운 오리 새끼처럼 내 단점인 줄 알았던 게 장점이 돼 버렸다. 이제는 스스로 백발이 사랑스럽다. 물론 배역에서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머리 스타일을 바꿀 순 있다. 염색이건 삭발이건 뭐. 필요하면 한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 및 작품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이 작품이 갖는 주제나 거기 쓰인 대사나 함께 연기했던 사람들, 연출, 촬영 모든 게 감동이었다. 관객들 반응까지 전체가 다 한 덩어리로 나에게 큰 감동이었다”

Q. 댓글은 항상 확인하는지

“항상 있지는 않고 오늘 방영을 했으면 다음 날 아침에 시청률 얼마나 나왔나 확인하는 정도. 워낙 댓글에는 익숙하다. 연극 쪽 관객분들의 댓글이 굉장히 강하다. 실제로 영향력 있는 분들이기도 하고, 전문가들이 쓴 글에 단련이 돼 있어서… 뭐 무슨 말이든 다 할 순 있지. 개개인의 생각이 있는 거니까”

Q. 힘이 되는 동료

“많다. 참 많다. 매번 함께했던 동료들. 내 상대역들. 연기라는 게 항상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조연은 주연을 보고 가야 하고 주연끼리도 자기들끼리 감정을 주고받아야 하고. 내 캐릭터, 대사 이런 것들은 나보다는 나와 같이하는 사람들이 키를 가지고 있다. 박호산은 내가 가진 이미지보다 그 사람들이 나를 불러줄 때의 이미지에서 솟아난다”

Q. 이제껏 함께했던 배우 중에 어떤 영감이나 깊은 인상을 줬던 이가 있다면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이랑 연기를 할 때 내가 고급 연기를 하는 기분이 든다. 서로 잘 던져주고 받아주니까. 정확하게 딱딱 꽂아주니까 나도 정말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지. (송)새벽이도 정말 생생한 날 것의 대사나 감정을 던지는데 그게 감정 덩어리로 텅텅 와 닿더라. 그런 기운을 받으면 나도 저절로 또 감정이 생기거든. 그렇게 상대 배우들이 나에게 영감을 많이 준다”

Q. 가장 힘이 되는 것

“우리 팬카페. 함께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 안에서 서로 결혼도 하고 내가 축가도 부르고. 우리는 약간 팬카페다, 배우와 팬의 관계다, 이런 느낌보다는 평소엔 그냥 오빠, 동생이나 형, 동생 사이로 지낸다. 같이 소주 한 잔 기울이기도 하고. 팬카페는 나에게 힘이 되는 어떤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나로선 팬들에게 ‘내 연극을 본다면 적어도 돈이 아깝지는 않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하게 되니까. 여러모로 힘이 되는 존재지”

Q.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나 장르

“방송으로 왔으니 이제 다시 신인이지. 멜로도 안 해봤고 액션도 안 해봤고 사이코패스도 안 해봤고… 사극 자신 있다(웃음). 연극에서 사극 많이 했었거든. 지금은 다 맛있을 때다. 반찬 가릴 때가 아니라 내 모습을 많이 보여드릴 기회가 생겼으니까 이제 다 해봐야지. 뭐든 걸리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투톤 연기를 좋아하긴 한다. 다중인격 역할? 그런 거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Q.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

“좋은 선배 박호산.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연기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직업이니까”

“그러면서 작품과 함께 기억되는 배우. 작품에 잘 녹아 들어서 배역 이름이 확실하게 기억나는. 내 이름인 박호산은 몰라도 괜찮은데 캐릭터를 기억해 주시는 게 더 좋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연히 나를 만나더라도 ‘박호산이다!’ 보다 ‘전춘만이다!’ 가 더 좋다. 그럼 나는 또 그 캐릭터의 연기를 보여드리면서 유머러스하게 인사할 수 있고”

Q. 2019년 목표

“작년처럼 그냥 열심히 하자. 이게 목표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할 때도 다작 배우로 유명했거든. 1년에 10개의 작품을 했었다. 작품을 그렇게 많이 해도 항상 꽉 채워지지 않는 거다. 나는 잠을 안 자도 좋으니 할 수 있을 때 많은 걸 하자는 생각이다. 왜냐면 배우는 지금 본인의 나이 때의 배역을 할 수 있을 때가 있는 거니까. 다작이 목표다. 4월은 우선 연극만 하고 영화 ‘콜’ 촬영도 진행 중이고 이후로도 쉬지 않고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고 싶다. 2019년에도 꾸준히 대중들과 만나 뵙고 싶다. 일단은 공연장으로 와 주세요(웃음)”

에디터: 이혜정
포토: 백진상
의상: 수아레, 제네럴아이디어 스탠다드, 슈트
헤어: 살롱드뮤사이 연경
메이크업: 살롱드뮤사이 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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