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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대무용가 최수진이 수놓는 몸짓의 향연

2019-05-30 10:54:27

[황연도 기자] 강렬하면서도 유려하게 흐르는 몸짓 하나하나에 그간의 인내와 노력이 묻어나 빛을 발한다. 어릴 적 품은 꿈을 간직한 채 25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부단히 달려온 현대무용가 최수진을 만났다.

그가 무용수로서 쌓아온 경력은 화려하다. 예원학교, 서울 예술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뉴욕 시더레이크 컨템포러리 발레단에 입단해 한국인 최초로 4년간 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다 발레단에서 가장 주목받던 해 돌연 한국으로 귀국을 했다. 그의 말마따나 ‘박수칠 때 떠난’ 행보였다.

이후 도전장을 내민 곳은 Mnet ‘댄싱9’이었다. 낯설고도 경이로운 현대무용의 몸짓에 대중들은 열광했고 덕분에 그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키기에 이른다. 비록 우승을 거머쥐진 못했지만 아쉬울 건 없었다. 상보다 더 값진 ‘1등 한 남편’ 하휘동을 사로잡았으니.

다채로운 대중 매체와의 콜라보 작업부터 세계적인 무용단 이력까지.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의 모습은 방랑자를 연상케 한다. 벌써 다음 목적지도 정해졌다. 신혼생활을 만끽할 새도 없이 영국 램버튼 발레단으로 2년간 유학을 떠날 예정이라는 최수진. 2년 뒤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찾아올지 몹시 기대되는 바이다.

Q. 화보 촬영 소감

“너무 재미있는 촬영이었다. 워낙 내 모습, 활동들을 기록으로 남겨놓는 걸 좋아한다. 저번 bnt 화보는 남편과 함께 했는데, 오늘은 혼자 찍어서 허전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번 솔로 촬영도 즐거웠다”

Q. 근황

“발레리나를 다룬 드라마 KBS2 ‘단, 하나의 사랑’의 총괄 안무를 맡게 됐다. 작년 11월부터 회의를 계속 해왔다. 사실 처음엔 춤이 작품에서 이렇게 많은 분량을 차지할 줄 몰랐다. 발레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춤의 비중이 많아지다 보니 4개월 동안 배우분들, 서울발레시어터 발레단이 함께 연습을 해오고 있다. 실제 무용단 스케줄처럼 아침 11시에 만나서 오후까지 연습을 하고 리허설도 한다. 매회 거의 춤이 나오다 보니 정말 바쁘다(웃음). 매일 촬영장도 쫓아가서 봐주고 있다”

“신혜선 씨 같은 경우엔 솔직히 처음에 기본기가 너무 없으셔서 놀랐다. 첫날 만나고 앞길이 막막해서 몸살을 앓기도 했다. 그런데 혜선 씨가 “참는 것 하나는 1등”이라고 말하더라. 실제로도 정말 노력파다. 스케줄을 정말 타이트하게 짜줬는데도 단 한 번 도 힘들단 말없이 해내더라. 결국 3개월 만에 정말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달라진 발레 실력에 너무 놀라워서 ‘이건 영화로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까지 했다. 한 무대에서는 너무 잘해줘서 눈물이 나더라. 울컥했다. 혜선 씨 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이 정말 많은 노력과 열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감독님 말씀으로는 아시아 최초 발레 드라마라고 하더라. 5월22일에 첫방을 할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

Q. ‘단 하나의 사랑’ 이외에도 작품에 참여한 적이 있나

“뉴욕에서 무용단 할 때 할리우드 영화 ‘컨트롤러’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땐 안무가 아닌 무용수로 카메오로 출연을 했다. 남자 주인공은 맷 데이먼이고 여자 주인공은 에밀리 블런트이었는데, 그분이 무용수로 등장을 한다. 그래서 무용단도 등장하게 되는 거였다. 물론 분량은 정말 짧다. 거의 1초다. 내가 어디 있는지는 나만 찾을 수 있을 거다 하하”

Q. 발레를 시작하게 된 계기

“고모가 발레를 하신다. 고모를 보면서 나도 하고 싶어 부모님께 졸랐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발레를 전공하다가 고등학교 때 춤의 영역을 더 넓히고 싶어서 현대무용으로 바꾸게 됐다. 대학도 현대무용 전공으로 가게 됐다. 이후 뉴욕에서도 컨템포러리 발레단에 들어가게 돼서 발레를 베이스로 두되 현대무용을 접목시킨 장르의 춤을 추곤 했다. 첫 발을 발레 장르로 들였던 게 여기저기 참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지금 드라마 작업도 발레에 대한 내용이다. 현대무용으로 전향을 했지만 베이스를 발레로 두고 있다는 점이 여러모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

Q. 현대무용의 매력은 무엇인가

“발레는 클래식이다. 레퍼토리가 정해져 있고 정해진 춤을 소화하면서 경지에 오르는 장르라고 한다면, 현대무용은 자신만의 춤을 직접 만들어갈 수 있는 분야다. 어떤 기준이 정해져 있고 잘하냐 못하냐를 나누는 장르가 아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철학을 춤으로 표현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현대무용이 발레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Q. 뉴욕의 시더레이크 컨템포러리 발레단에 4년 정도 있었다. 300:1의 경쟁률을 뚫고 입단하게 됐다고

“사실 내 인생의 첫 오디션이었다. 외국에 처음 와서 경험 차 도전한 거였다.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300명의 여성분들이 왔더라. 그런 스케일인 줄 전혀 모르고 간 거였다. 오디션만 4시간을 봤다. 월드컵 경기처럼 토너먼트 방식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올라갈수록 자신감이 생기면서 꼭 붙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그렇게 올라가다 보니 마지막에 최종 3명이 남아 있더라. 그 후에도 몇 주를 발레단에 가서 팀원들과의 호흡을 평가받았고 최종으로 내가 선발됐다. 나중에 듣게 된 얘기인데, 사실 매년 형식적으로 오디션을 보고 있지만 그 해엔 굳이 뽑지 않으려고 했다고 하더라. 오디션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발레단의 홍보 효과를 얻기 때문에 굳이 뽑을 사람이 없으면 안 뽑는 경우도 많다. 아시아인으로서 그 발레단에 들어서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아시아인이 나를 포함해 일본 여성분 1분 뿐이었다. 한국인으로서는 내가 최초였다”

Q. 발레단 생활을 접고 한국에 들어온 계기가 있을까

“발레단에 들어가게 되면 무용수로서는 좋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지만, 내 춤을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내 춤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만두기로 결정을 했다. 또 타이밍도 적절했던 게 그 해가 뉴욕 발레단에서 내가 주목을 받는 해였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주목을 받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 다음 해엔 어차피 내가 주목을 못 받았을 거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 않나(웃음). 이 발레단에서는 얻을 것을 다 얻었다고 판단이 되어 그만두게 됐다. 좋은 이력을 쌓았으니 한국에 와서 이 스펙을 바탕으로 나만의 안무를 만들어 보여주고 싶어졌다”


Q.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최수진이 굳이 ‘댄싱9’에 출연한 이유

“무용계에서는 인지도가 있는 상태였지만 일반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한국에 와서 공연을 해보니 무용에 종사하시는 분, 무용을 정말 좋아하시는 분들만 와서 보시는 정도였다. 너무 한정적이다 보니 답답하더라. 그러다 ‘댄싱9 시즌1’을 보게 됐는데, 많은 분들이 춤에 굉장히 열광하시는 게 아닌가. 나도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내 춤을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좋은 이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한국에서 인지도도 높이고 싶었기 때문에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이 프로그램에 나간 후 확실히 인지도가 높아졌다. 현대무용하면 나를 떠올려주시는 것 같다. 덕분에 다양한 아티스트와 색다른 공연도 많이 하게 됐다”

Q. 우승을 하지 못해 아쉽진 않나

“예전부터 상복이 좀 없었다(웃음). 콩쿨 대회에 나가도 맨날 2등이었다 하하. ‘댄싱9’에서도 프로그램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행복했다. 졌지만 대신 1등 한 남편을 얻지 않았나 하하.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Q. 타고난 재능과 노력, 무용수에게 더 중요한 건 무엇일까

“사실 무용은 타고난 것도 중요하지만 노력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분야다. 노력의 땀방울이 담기지 않는다면 관객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무대를 보면 댄서로서 얼마큼 연습을 했는지 여실히 느껴질 수밖에 없다. 굳이 퍼센트로 따진다면 타고난 재능 30%에 70%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슬럼프도 있었을까

“슬럼프는 항상 온다.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못하면 종종 좌절도 하고 슬럼프도 찾아온다. 그런데 그걸 오래 담아두는 스타일은 아니라 잘 극복하는 편이다. 힘들다 싶으면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스스로가 부단히 노력한다. 항상 아픔이 찾아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슬럼프가 와도 크게 아파할 시간이 없이 항상 바쁘게 지나간다. 그렇게 바쁘게 살다 보면 또 좋은 기회가 찾아오더라”

Q. 하휘동과 최수진의 만남은 그야말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현실판이다. 러브 스토리가 궁금한데

“‘댄싱9’에 출연했을 때 남편은 마스터였고 나는 참가자였다. 남편이 말하길 내가 춤추는 모습에 반하게 됐다고 하더라. 예뻐서가 아니라 너무 멋있었다고 하더라(웃음). 몸은 말랐는데 춤추는 모습이 장군감 같단다 하하. 방송 끝난 후에 남편이 쫓아다니면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대시를 했다. 내가 가는 곳을 따라다니면서 좋아한다고 구애를 했다(웃음). 남편이 고백을 했을 때 남자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남편을 한 번도 이성으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남편이 너무 잘해주니까 나도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빠가 비보이 1세대다. 많은 기록을 남겼고 자신의 일에 열정이 상당하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있게 보이더라”

Q. 결혼을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

“결혼은 내가 먼저 하자고 했다. 3년 정도 연애를 하다 보니 오빠랑 살아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너무 착하고 나를 너무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오빠라면 결혼을 해도 내 삶이 크게 바뀌지 않아도 함께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됐다. 보통은 시집을 가면 아내로서 남편을 서포트하며 내조를 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남편이라면 원래의 내 모습을 잃지 않고도 서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워낙 자신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편이라 내가 해줘도 만족스러워하지 않는다(웃음). 무엇보다 결혼을 결심하게 됐던 이유는 남편이 워낙 온순하고 건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술 담배도 안 하고 집돌이에 초식남이다. 나와는 정반대 스타일이다. 나는 항상 파이팅 넘치고 가만히 못 있는 스타일이다. 항상 바쁘다(웃음). 어쩌면 그래서 더 천생연분인 것 같다. 나와 다른 점들이 더 끌렸던 것 같다”

“그런데 남편은 계속 결혼을 안 하고 싶다고 했다. 독신주의자라 연애만 하고 싶다더라. 그래서 협박을 했다(웃음). 결혼을 못 한다면 우리는 헤어져야 한다고. 그럼에도 남편이 약 1년을 고민을 하더라. 결국 고민 끝에 결혼을 하자고 했고,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2달 만에 후다닥 결혼식을 올렸다. 사실 남편 입에서 결혼하자는 말만 떨어지면 바로 결혼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다 해놨다 하하. 워낙 행동파라 번복 못하도록 바로 실행으로 옮겨버렸다(웃음)”

Q. 결혼 전후 달라진 점들이 있다면

“연애할 때보다 결혼 후에 남편이 더 좋아졌다. 더 사랑스럽다. 그러다 보니 오빠를 대하는 태도도 변하게 됐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애틋하고 배려를 하게 되더라. 끈끈한 가족애가 생기게 된 것 같다”

Q. 2세 계획은?

“사실 5월 말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됐다. 미국에 있었던 시더레이크 컨템포러리 발레단 단장님이 영국에서 오래된 램버트 발레단 단장으로 가게 됐다. 사실 지금 한국에서 안무를 하고 있지만 무용수로서 춤을 그만두기엔 아직 어린 나이다. 무용수로서 활동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이 되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사실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도 있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무용단에 있다 보니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면 일을 하는 것 같지가 않다. 무용단에 들어가 하루에 6시간 이상씩 연습을 하며 무대에 서야 댄서로서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이 되더라. 그래서 마지막 무용수 커리어를 램버트에서 쌓는 걸로 결정을 하게 됐다”

“사실 한 6개월 정도 짧게 다녀오려고 했는데, 단장님이 2년 정도 있어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적지 않기에 나도 안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메인 무용단의 무용수로 활동을 하면서 안무가로서의 기회도 겸할 수 있는 조건으로 가게 됐다. 원래는 1년씩 계약을 하는데, 최소 2년 이상 있겠다는 조건의 계약서를 쓰게 됐다”

“어쨌든 유학을 가게 된 상황이라 아직은 2세 계획이 없다. 사실 나는 빨리 낳고 싶었는데, 남편이 겁을 많이 내고 있다. 사실 남편은 2세가 없었으면 하는 쪽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낳게 될 거라 생각한다. 결혼도 독신주의자였는데 결국 하지 않았나. 2년 뒤쯤, 유학 다녀와서 남편을 졸라볼 예정이다(웃음)”

Q. 남편분이 너무 서운해할 것 같다

“남편이 처음엔 굉장히 당황스러워했는데, 결국은 다녀오라고 허락을 해줬다. 평생 죽을 때까지 같이 살 건데, 잠깐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생활했으니 괜찮지 않을까(웃음). 유학을 가서도 6개월에 한 번씩은 만나기로 했다”

Q. 하휘동에게 남편으로서 점수를 준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

“80점(웃음). 남편은 내가 미안할 정도로 너무 좋은 사람이다. 나를 너무 사랑해주면서도 사생활을 존중해줄 줄 아는 남자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일에 크게 터치를 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점이 참 잘 맞고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편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좀 있다. 굉장히 미국 사람 마인드다(웃음). 그래서 타인을 보듬어주는 게 조금 약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게 되면 챙겨야 할 가족들이 많지 않나. 그래서 결혼 후 조금씩 배워 나가는 단계다. 그래서 현재는 80점이지만, 앞으로 20점도 채워질 거라 생각한다”


Q. 남편과 콜라보 공연을 해도 멋있을 것 같다

“사실 남편과 함께 공연을 한번 한 적이 있다. 나는 너무 좋았는데 남편이 너무 힘들어했다. 비보이는 무용처럼 오랫동안 무대에 서는 춤이 아니다. 무용은 1시간 동안 무대에 서는 경우가 많지만 비보이는 3분 이상 테크닉을 지속하기 쉽지 않은 춤이다. 이런 점들만 보완하면 너무 멋질 것 같긴 하다”

“아무래도 각자 다른 분야의 춤을 추다 보니 서로에게 영감을 더 주게 되는 것 같다. 오빠의 색다른 음악성이나 창의성, 연출력은 내가 평소 쓰지 않는 방식이다. 그래서 요즘 개인작업하면서 남편에게 컨펌을 받기도 하고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같은 음악을 들어도 내가 생각한 것과 남편의 해석이 너무 다르니까 그게 재미있게 다가오더라. 남편 덕분에 고정관념도 많이 깨지고 있고 영감도 많이 받는다. 무용이 관객들에게 스토리를 전달하며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면 남편의 춤은 사람을 흥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 화려하고 파이팅 넘치는 모습들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Q. 남편과 함께 유튜브 채널 ‘댄싱쀼’를 하고 있지 않나

“구독자가 많기를 바라기보단 꾸준히 봐주시는 분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 현재 구독자 수가 만 명 조금 넘는데, 그분들은 공연도 직접 와주시는 팬분들이다. 약간 ‘댄싱쀼’ 채널은 대중적이기보단 미니아층 위주라서 구독자 수가 많지는 않지만 지금도 충분히 감사하고 만족스럽다. 구독자 중에 공연도 직접 와서 보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가 방송에 자주 노출되는 연예인이 아니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댄싱쀼’ 채널은 구독자분들에게 보여주는 용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용도이기도 하다. 나중에 보면 좋은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한다”

Q. 무용수는 체중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 직업이 아닌가.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나

“몸무게에 대한 스트레스는 크게 없다. 평소 46kg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에 비해 활동량이 정말 많은 편이다. 하루에 평균 6시간씩은 춤 연습을 하다 보니 살찔 틈이 없다. 그래서 체중 관리를 따로 하진 않는 것 같다. 평소 굉장히 잘 먹는 편인데, 간식도 먹고 야식도 먹고. 먹고 싶을 때 다 먹는다. 솔직히 체질적으로 타고난 것도 있다. 타고나기를 대사가 빠른 편이라 그런 것 같다. 입이 짧아서 조금씩 자주 먹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살면서 살이 그렇게 많이 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Q. 춤 연습 이외에 따로 하는 운동이 있을까

“신체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자이로토닉,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무용을 하면 큰 근육을 많이 쓰는 편이라 속 근육이 약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니게 됐다”

Q. 피부 관리 비결

“잘 씻는 정도(?) 하하. 화장품을 얼굴에 많이 바르지 않는 편이다. 건성이라 피부 수분 위주로 바르곤 한다. 가끔 시간 나면 팩을 하기도 한다”

Q. 몸을 쓰는 직업이다 보니 부상도 잦을 것 같은데

“부상을 당하면 병원에 빨리 간다(웃음). 무용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몸이 쑤시기 때문에 다쳐도 잘 참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는 다치면 빠르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려고 하는 편이다. 또 춤추는 사람들이 뼈에 이상이 오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워낙 뼈가 통뼈다. 그래서 아직까지 크게 부상을 당한 적은 없다(웃음)”

Q. 무용 이외에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나중에 무용과 관련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연출도 참여해보고 싶고 직접 출연하는 것도 욕심이 난다. 무용수로서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춤과 관련된 영화에 참여를 해보고 싶다”

Q. 롤모델

“하휘동(?). 장난이다 하하. 롤모델은 너무 많다. 자신의 분야에 계속 도전하는 분들은 다 멋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더라도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며 꿈을 펼쳐 나가는 분들 말이다. 그래서 한 분야에 오래도록 종사하신 분들은 다 롤모델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 같다. 나도 그런 길을 걸어 나가고 싶기에”

Q. 한국 무용계의 비전에 대한 생각을 말해준다면

“다른 쪽은 모르겠지만, 현대무용은 확실히 많이 좋아졌다. 무용수들의 재능과 기량은 외국인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실력파다. 문제는 무용단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무용단은 ‘무용단에서 무용수 일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의 환경을 조성해주는 곳을 말한다. 우리나라엔 이런 곳이 딱 하나밖에 없다. 국립현대무용단. 이런 게 너무 안타깝다. 좋은 무용수는 너무 많은데 그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무용단이 없는 상황이니까. 세계에서 유명한 무용 컴퍼니들이 어떻게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는지, 어떤 식으로 운영을 해야 하는지 우리나라 무용 단체들도 많이 배워 나가야 하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Q. 앞으로 수진씨가 한국 무용계의 리더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하 일단 그럴만한 능력이 갖춰져야 할 것 같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조금 더 쌓이면 내 무용단을 한번 꾸려보고 싶다. 추후 내가 그동안 해외 무용단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좋을 것 같다. 한국에서 나만의 해석으로 무용단을 꾸려간다면 너무 의미 있을 것 같다. 이번에 런던 무용단에 가는 것도 어떻게 운영하고 이끌어가는지를 공부하러 가는 거다. 이미 무용수로서는 충분히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안무가로서, 무용단을 이끄는 디렉터로서 어떻게 하면 컴퍼니를 잘 끌고 갈 수 있는지를 배우고 올 계획이다”

Q. 최수진이 그리는 미래

“지금까지 운 좋게도 다른 무용수들에 비해 정말 많은 경험을 해왔다. 새로운 아티스트와의 콜라보, 대중매체와의 콜라보 등 앞으로도 다양한 경험들을 해나가고 싶다. 춤으로 무궁무진한 것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곧 해외 무용단에 가게 되어서 많은 분들이 놀랄 것 같은데,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무용수로서, 안무가로서 열심히 활동할 거다. 할 수 있을 때까진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 할머니가 돼서도 무대에 서보고 싶다. 너무 멋있을 것 같다”

에디터: 황연도
포토: 권해근
의상: 라실루엣드유제니, 더애쉴린, 소냐레바이, 참스
슈즈: 모노톡시
선글라스: 스텔라 마리나(STELLA MARINA)
주얼리: 위드란(WITHLAN), 아르뉴
헤어: 콜라보엑스 임지혜 디자이너
메이크업: 콜라보엑스 황슬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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