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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아라, 한계를 뛰어넘은 발레리나

임재호 기자
2020-07-09 14:58:45
[임재호 기자] 음악, 의상, 동작으로 이야기를 표현해내는 아름다운 무용, 발레. 보기에는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발끝으로 서야 하며 고난도의 동작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무용수들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비장애인에게도 쉽지 않은 발레, 음악을 들으며 동작을 표현해내는 발레를 청각 장애인 고아라는 본인 장애의 한계와 맞서 싸우며 해내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 장애를 극복했다고 말하며 감탄하지만 아직 본인은 극복하지 못했다고 느끼며 힘든 점이 많다고 말하는 무용수 고아라. 발레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활동을 하며 장애인식 개선은 물론 본인과 같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그의 빛나는 눈빛에서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발끝으로 서는 고통, 무대에 서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더하는 발레리나 고아라. 그의 강한 마인드가 느껴지는 인터뷰를 지금부터 만나보자.

Q. bnt와 화보 촬영 소감

“그동안 발레복을 입고 찍은 것은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예쁜 옷을 입고 하는 촬영은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밌었다. 신선한 경험이다. 재밌었다.

Q. 근황

“직업이 무용수이기 때문에 공연도 한다. 그리고 청각장애인으로서 강연이나 멘토링도 한다. 코로나 때문에 활동이 예전만큼 많지는 않다. 또 한국 장애인무용협회 이사를 맡고 있어서 3일 동안 축제 사회를 보기도 했다. 틈틈이 활동 중이다”

Q. 청각 장애를 딛고 발레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발레를 통해 청각 장애를 내가 극복했다거나 하는 것은 없다. 아직도 내가 가진 장애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 춤과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에 잘 듣지 못하는 것이 당연히 힘들다. 많은 분이 저를 대단하다고 말씀해주시지만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앞으로 제가 춤을 추는 한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발레를 시작한 계기는 딱히 없다. 그냥 하고 싶어서 했다(웃음)”

Q. 발레를 하면서 느낀 점

“발레는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우아해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발끝으로 서야 하는 고통이 있어서 정말 힘들다. 견뎌야 할 것이 많은 무용이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에 무대에 서서 박수갈채를 받을 때 ‘그래도 내가 최선을 다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박수를 받는 순간은 굉장히 짧다. 그 순간을 위해 긴 터널을 스스로 걷는 기분이다.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내야 하는 무용이라는 생각이다. 견디는 것을 배우는 느낌이다(웃음)”

Q. 발레의 장단점은

“발레는 우아하고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 있다. 이게 장점이다. 단점은 아프고 외롭다. 혼자만의 싸움을 이겨내야 한다. 수많은 무용수 중 센터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면 남들보다 뛰어나야 하고 자신과의 싸움도 이겨내야 한다”

Q. 발레를 하면서 인간 고아라가 달라진 점은

“처음에 취미로 했을 때는 되게 재밌다는 생각뿐이었다. 전공으로 바꾸면서 제 몸 속에 있는 뼈와 근육을 인위적으로 돌려가며 바꾸는 훈련을 반복하다 보니 고된 느낌이었다. 정말 힘들었다. 저는 음악을 듣는 것이 힘들다. 비장애인들이 한 번 들으면 되는 것을 저는 서너 번을 들어야 한다. 이렇게 반복을 해야 한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정말 반복을 통해 무언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반복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Q. 스포츠 웨어 브랜드 안다르 모델로 활동 중이다. 소감은

“그 광고를 찍기 전에는 레오타드를 입고 스타킹을 신고 치마를 입고 그렇게 연습했다. 안다르 모델이 되고 나서는 안다르 레깅스를 입고 티 하나만 입고 편하게 연습한다(웃음). 광고 제의를 받고 나서 기쁘기도 했고 광고도 편하게 촬영했다. 그냥 발레를 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이어서 카메라를 볼 필요도 없고 정말 편했다. 광고를 보고 감동받았다는 분들도 많아서 좋았다. 처음에 제가 청각장애인인 줄 모르고 모델이 되게 예쁘다고 생각하고 그 후에 알고 보니 청각장애인이더라는 반응이 많았다. 이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장애인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편견 없이 능력을 먼저 봐주면 좋겠다”

Q. 사람들에게 끼치고 싶은 영향력은

“원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간의 경계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계속 일어난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일단 기본적으로 예술을 통해 경계를 허물고 싶다. 청각장애인 고아라가 아닌 무용수 고아라, 모델 고아라 등의 수식어가 붙었으면 한다”

Q. 음악의 파형을 보고 안무를 외운다는 말이 화제가 됐었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파형을 보고 안무를 외우는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4~5년 정도 된 것 같다. 예전엔 무작정 음악을 틀어놓고 박자를 익혀서 안무를 외웠다. 이젠 편집 프로그램으로 파형을 보고 박자를 익힌다. 보면서 하면 괜찮은데 안 보고 하면 어렵다. 아직은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노력 중이다”

Q. 요즘 고아라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지금 생활 자체가 정말 행복하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 묶여있었다. 대학원까지 다니고 졸업을 하고 나니 2년 정도 공백기가 있었다. 공백기 중 공연을 하나둘씩 하면서 활동이 점점 늘어갔다. 그때 내려갔던 자존감도 회복이 된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덧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도 하고 함께 결혼생활을 하면서 잘살고 있다. 남편도 집안일을 같이 하는 스타일이고 정말 재밌다. 오늘 화보 촬영하는 것도 정말 행복하다. 현재가 행복하다”

Q. 남편과의 다정한 모습이 JTBC ‘아이콘택트’에서 화제가 됐다.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계기는

“오래 사귀다 보니 결혼 얘기를 수없이 했다. 결혼은 현실이니까 연애와는 다르다. 저는 결혼을 하면 어떻게 살고 싶다, 이렇게 하고 싶다 등의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확신이 섰다. 그래서 결혼하게 됐다. 별것 없다(웃음). 남편이 기복이 없는 스타일이다. 연애 초기와 지금 성격이 똑같다. 이것 때문인지 안정감이 들어서 결혼을 결심한 것도 있다. 남편은 공대를 나와서 내가 일하는 분야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Q. 요즘 결혼 생활은 어떤지

“정말 행복하다. 제가 성격이 고약한 편이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남편이 제 성격을 다 받아주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보면 남편이 저를 길들인 것 같다. 남편과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제가 욱하고 사소한 것에도 화를 잘 내는 편이었다. 지금은 행복해서 그러지 않는다. 남편이 다 받아줘서 고맙다”

Q. 청각장애는 언제부터 생긴 것인지

“생후 4개월 정도 됐을 때 고열과 몸살을 앓아서 난청이 됐다. 거의 선천적이라고 보면 된다”

Q. 구화를 사용한다. 얼마나 들을 수 있는지

“자기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구화 학교를 보내서 계속 말을 하는 연습을 했다.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목소리가 정말 이상했다. 동생이 발성법을 바꿔줘서 지금은 이렇게 중저음인데 예전에는 비음이 많이 섞인 목소리였다. 오른쪽 귀는 보청기를 껴도 아예 안 들리고 왼쪽 귀는 들리긴 한다. 보청기를 빼면 비행기 소리 정도 들린다. 보청기를 끼면 들리긴 하는데 이걸 어느 정도 들린다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Q. 발레리나로서 고아라가 이루고 싶은 최종 목표는

“인생은 한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발레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다 보니 많은 꿈이 생기더라. 촬영하다 보니 재밌어서 모델도 열심히 하고 싶다. 꾸준한 활동을 통해 무용수뿐만 아니라 강연, 모델 등 다방면으로 일하고 싶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다양하게 모델 활동을 하고 싶다. 그리고 방송 활동을 통해 장애인식 개선 등의 활동도 하고 싶다”

Q. 인간 고아라의 롤모델은

“롤모델이 없다.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제 자신이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고아라 제 자체로 인정받고 싶다”

Q. 평소 성격은

“일단은 밝다.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도 인사를 잘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성격이다. 단점은 너무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주려고 하다 보니 힘들다. 말을 직설적으로 못한다”

Q. 취미는

“취미는 글쓰기 좋아한다. 그리고 몽골어를 취미로 배우고 있다. 원래 서핑도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서핑을 못한다. 독서도 종종 한다”

Q. 몽골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대학원 졸업에 맞춰 논문을 써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매우 많았다. 몽골인 친구가 있었는데 영상통화를 하다가 친구가 몽골에 놀러 오라고 해서 논문이 통과되자마자 바로 몽골로 갔다. 갔는데 몽골이 너무 좋더라. 한 달 정도 여행하다 왔는데 정말 재밌었다. 몽골어는 러시아의 문자를 조금 갖다 쓰는데 제가 러시아 선생님한테 발레를 배워서 러시아어를 조금 할 줄 안다. 그래서 배우기가 조금 수월했다. 몽골은 정말 추천한다. 도시는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한 시간 정도 교외로 나가면 아무것도 없는 초원과 사막이 펼쳐진다. 정말 탁 트여 있어서 시원하다. 초원에 길이 없다. 어떤 길로도 갈 수 있다. 정말 인생에서 갈 수 있는 길이 많다는 것이 느껴졌다”

Q. 좋아하는 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다양하게 책을 읽는다. 철학 쪽으로 많이 읽는다. 심오하고 어려운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좋아한다기보다는 관심이 있다. 철학을 잘 모르긴 모른다(웃음)”

Q. 고아라가 생각하는 본인의 강점은

“자신감인 것 같다. 어딜 가서나 자신감이 넘친다는 소릴 듣는다. 그리고 밝은 것. 이게 제 강점이라 생각한다”

Q. 앞으로의 삶의 목표는

“큰 것을 바라진 않는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어떻게 보면 막연한 표현이지만 그냥 지금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앞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혀가면 지금보다 행복해질 것 같다. 그냥 이렇게 쭉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목표다”

에디터: 임재호
포토그래퍼: 송현주
의상: 메종드쟈스민, 쟈스민 로즈
백: 엘레강스 파리
헤어: 코코미카 미란 부원장, 소은 실장
메이크업: 코코미카 정민 부원장, 영지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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