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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주희, 그 진솔함만이

박찬 기자
2021-11-05 14:02:00

[박찬 기자] 고주희는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걸어 나갈 예정이다. 이제 막 떠오른 그의 정원 앞에 푸른 신록이 자라날 때까지.
누구에게나 서슴없이 다가가 싱긋 웃고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 2020년 데뷔한 신인인 만큼 아직은 촬영장 속 공기와 온도가 낯설 만도 한데, 자신의 영역 안에서는 언제나 솔직하고 진실한 모습이다. 어딘가 차가울 것만 같던 첫인상과 다르게 더없이 산뜻하고 맑은 얼굴.
“좋은 삶을 갖춰야 결국 나 스스로 좋은 연기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좋은 삶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값진 인생이잖아요”
그런 그가 내딛는 목표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 고주희는 그저 유명한 배우가 되기보다는 공감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연기자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지펴내고 위로하고 싶다는 그. 스스로를 비춰 앞으로 걸어 나갈 그에게 지금의 욕심과 행복은 무엇인지 꺼내 물었다.
Q. 촬영하는 내내 정말 즐거워 보였다
“사실 이런 화보 촬영 자체가 처음인데 낯선 환경에서 포즈를 취한다는 점이 오히려 재밌게 다가왔다(웃음)”
Q. 착용한 의상 중 평상시에 자주 입을만한 스타일은 없었나
“없는 것 같다. 평소엔 정말 편한 캐주얼 웨어나 트레이닝복을 자주 입는 편이다. 상대적으로 스타일링하기 쉬운 원피스를 입기도 한다(웃음)”
Q. 사실 기존 콘셉트 중 하나는 발랄한 느낌이 가득했는데, 포토그래퍼와 상의 후 고아한 무드로 탈바꿈했다. 아무래도 고주희의 얼굴에는 신비롭고 생경한 느낌이 더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오늘 보셔서 아시겠지만 기본적인 텐션 자체가 높고 쾌활한 성격이다(웃음). 이번 화보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점이 정말 감사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무표정으로 포즈를 잡는 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배워갈 수 있는 부분이 많더라. 그래서인지 몰라도 더 뜻깊은 시간이었다”
Q. 모노 톤으로 접한 본인의 얼굴은 어땠나
“이렇게 정적인 무드로 촬영해본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막상 촬영하고 나니 무척 뿌듯했다. 지금은 내가 어리더라도 앞으로 서서히 나이를 먹어갈 텐데, 그땐 지금의 밝은 에너지만 보여줄 수 없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콘셉트의 차분하고 고요한 무드도 내 것으로 가져갈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Q. SNS를 둘러보니 사진 촬영 자체를 즐기는 것 같더라. 카메라 앞에 서기 어렵진 않은지
“첫 촬영은 친구들과 함께 시작하게 됐다. 고등학생 때 사진영상과 친구들의 모델 역할을 맡게 됐는데, 처음엔 카메라 앞이 너무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지더라. 그러다가 여행 중 우연히 찍힌 내 모습을 보고 부담감을 떨치게 된 것 같다. 유독 그때 미소가 밝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Q. 때로는 직접 카메라를 들기도 한다고. 보통 어떤 것을 담아 내려 하나
“보통 꽃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을 담아내고자 노력한다. 얼마 전에 ‘요시고 사진전: 따뜻한 휴일의 기록’에도 갔다 왔는데, 사진들 자체도 정말 예뻤지만 자연물에서 비롯되는 질감이 한눈에 들어오더라”

Q.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다룬 ‘화평반점’으로 스크린에 데뷔한다. 어떤 작품인지 간략히 소개해줄 수 있는지
“내년 상반기쯤 개봉하는 작품이다. 1980년 5월 광주의 한 가족이 ‘화평반점’이라는 중국집을 운영하면서 생긴 이야기를 다룬다. 그중에서 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여대생 역할을 맡았다”
Q. 첫 영화 촬영인데 역사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이라는 점이 부담되진 않았나
“정말 중요한 역사적 소재를 다룬 만큼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실제로 이 시대, 이 인물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으며 어떤 모습으로 삶을 살아갔을지 끊임없이 연구했던 것 같다”
Q. 이번 작품에서 강신일, 김규리, 백성현 등 이른바 ‘믿보배’들과 함께 하지 않았나. 연기자로서 배울 수 있는 요소가 많았겠다
“연기적으로 미숙한 부분이 있을 때마다 선배님들의 가르침이 큰 자양분이 된다. 그중에서도 김규리 선배님께서 해주신 조언들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 만큼, 조언 하나하나에 귀 기울여 한층 더 성장해나가고 싶다”
Q. 첫 영화 촬영인 만큼 떨리지는 않았나
“사실 촬영 자체가 떨리지는 않았지만 연기에 대한 고민은 컸다. 어떻게 하면 내 배역이 작품 속에 잘 스며들 수 있을까 끊임없이 되뇌었던 것 같다. 어떤 모습으로 작품 속에 그려질지 궁금하기도 했고”
Q. 아직 신인인 자신을 돌아봤을 때 부족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느끼는지
“마음이 급하고 무언가에 빠르게 질리는 것. 무언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느끼고, 빠르게 습득하는 것이 내 강점이지만, 그렇게 급속도로 배우는 만큼 쉽게 질릴 때가 있다.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 춤도 추고, 악기도 다루고, 체육도 시작했었는데 금방 그만두게 되더라. 다른 친구들 중에서도 그 과정을 급속도로 거쳐 갔지만 그만큼 빠르게 질리곤 했다”
“그런 와중에 연기는 처음으로 힘들고 버겁게 느껴졌던 과제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할 수 없다는 것, 한 가지 요소가 아닌 다양한 능력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점이 더욱더 매력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연기에 대한 욕심이 커졌고 지금까지 달려오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Q. 연기 활동을 시작하는 데에는 가족들의 응원이 크게 작용했다고 들었다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한 건 절대 아니었지만 그분들의 영향이 매우 컸다. 연기할 때만큼은 내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고 말씀해주시더라. 사실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도 고민이 정말 많았는데 부모님의 응원 덕에 다시금 입시를 시작하게 됐다”
Q.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배려하는 마음. 아직 처음인 만큼 모르는 게 많지만, 배우란 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곤 한다. 그만큼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연기 활동에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한동안 이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좋은 삶을 살아야 결국 나 스스로 좋은 연기를 발휘할 수 있겠더라. 그런 부분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 좋은 삶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더없이 값진 인생일 테니까 말이다”
Q. 지금 자신만의 무기나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긍정적인 마음가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가끔 기분 나쁜 일이 불쑥 찾아올 때도 사소한 요소 하나하나에 금세 풀리는 편이다. 친동생이 이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빨강머리 앤’의 실사판이라고 놀린다. 그만큼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친다고 하더라(웃음)”
Q. 이렇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털털하고 해맑다. 첫인상은 사실 차가운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새침한 이미지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실제로 대화하다 보면 내가 ‘허당’이라는 걸 곧바로 눈치챈다(웃음)”
Q. 너무 좋아서 여러 번 돌려본 영화가 있다면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로맨스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정말 인상 깊게 본 영화다. 사람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작품이기도 하고. 동성애를 영화적 소재로 다뤘다는 점이 오히려 더 극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Q. 전공이 영화예술학과지 않나. 대학 입시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
“고등학교 선생님의 영향이 정말 컸다. 원래는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없었는데 선생님께서 ‘너는 대학 가서도 꼭 연기를 놓지 말아야 한다’라면서 날 이끌어주셨다”
Q. 선생님이 연기자의 길을 응원해준 이유가 궁금하다
“성취해야 할 것이 생기면 어떻게든 노력해서 이뤄내는 편이다. 학교생활을 돌이켜보면 난 정말 열심히 움직였던 것 같다. 가장 일찍 연습실에 도착하고, 가장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아이. (선생님은) 내가 열정적으로 노력하고 해내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아닐까 싶다(웃음)”
Q. 생각보다 정적인 취미를 즐긴다고 들었는데
“정말 많은 취미를 갖고 있다(웃음). 그중에서도 주로 창작하는 것에 흥미 있는 편이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오마주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빈티지 케이크를 직접 제작하거나 그런 것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집에서 즐기는 취미가 많아졌다”
Q. 나만의 고민 해소법이 있다면
“모든 일을 완벽히 해내고 싶어 하는 편이지만 살다 보면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지 않나. 그래서 요즘엔 ‘세상일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어도, 내 마음만큼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다. 내 마음과 의지는 내가 하는 것에 달렸으니까”
Q. 먼 훗날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 있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연기자. 지금의 나로서는 그게 가장 궁극적인 바람이다. 내가 만들어낸 배역을 통해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위로받았으면 한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예정이고”
Q. 남은 두 달 동안 이뤄내고 싶은 계획
“더 많은 작품 배역을 따내는 것. 일 욕심이 정말 많은 성격이다(웃음). 한동안 쉬지 않더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배우,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에디터: 박찬
포토그래퍼: 김수진
의상: EENK, CK 캘빈클라인, oioi, COS, 쟈니헤잇재즈, 클럽 모나코
슈즈: 레이첼콕스, 렉켄, 마이클 마이클 코어스
주얼리: COS, POSTLUDE(포스트루드)
헤어: 정샘물인스피레이션 이스트점 주다흰 디자이너, 박윤지
메이크업: 정샘물인스피레이션 이스트점 이은솔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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