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터뷰] 모델로서의 최현준, 사람으로서의 최현준

2022-01-03 14:21:00
모델 최현준은 허심탄회하게 나아간다.
잡념 대신 그 모습 그대로 때를 묻히며, 회한 대신 그 시간 그대로 오늘을 기리며.

[박찬 기자] 지난해 7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생로랑(SAINT LAURENT) 2022 봄여름 맨즈 웨어 컬렉션에 한국 남자 모델 최초로 최현준이 데뷔했다. 패션 씬의 새로운 세대, 새로운 얼굴로 등극한 그에게 자연스레 매스컴의 관심은 쏟아졌고 최현준은 현실과 이상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
“모델로서의 최현준, 사람으로서의 최현준을 확실히 구분 짓는 게 중요해요” 첫 쇼를 끝낸 직후 가장 불안하게 다가왔던 요소는 자기 자신에게 부담감을 느끼며 저버리는 것이었다는 그.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결과물을 못 내더라도 나의 가치를 저버리지 않는 게 목표에요. 즐기면서 임하는 거죠” 그런 그가 지금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가감 없이 피력했다.
꿈을 앞둔 절실함, 강박증으로 버틴 어린 시절. 그가 모델로서 나아갈 때까지의 어두운 나날은 그 앞에 동반했지만 결코 어둠으로써 세상을 정의하진 못했다고. 그저 무채색일 것만 같던 최현준의 시작점에는 작은 흔적과 흔적이 모여 밤을 채웠고 모델로서의 열망, 그 심야 속 온기를 통해 오늘을 그려냈다.
Q.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가 말했던 ‘자유와 부자유’에 대한 추상을 화보 촬영으로써 재해석했다. 촬영에 임한 소감은
“일단 촬영 현장 자체가 편안했다. 포즈나 표정 연기에 있어서 조금 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Q. 그중 마음에 들었던 착장이나 톤이 있었나
“개인적으로는 모노 톤 배경 위에서 촬영했던 콘셉트가 가장 인상 깊다. 평소에도 정적인 무드, 클래식한 착장을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Q. 평소 즐겨 입는 스타일을 설명해줄 수 있는지
“옷을 입을 때마다 참고하게 되는 롤모델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어떠한 가치관을 갖고 있고, 그것을 통해 어떤 스타일링을 시도했는지에 대해 연구하곤 한다. 최근에는 카우보이 문화에서 비롯된 패션 스타일에 관심이 많다. 긴 웨스턴 부츠라든지, 벨보텀 팬츠라든지 그런 아이템에 눈길이 간다”

Q. 어떤 롤모델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대표적으로 한 명만 꼽자면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그의 전위적이고 상징적인 모습을 동경한다”
Q. 올해 7월, 한국인 남성 최초로 생로랑 런웨이에 들어섰다. 매우 즐거우면서도 긴장된 무대였을 것 같은데
“쇼에 몸담기 전만 해도 생로랑의 모델들은 왠지 모르게 다들 냉소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델들과) 어떻게 잘 소통하고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 컸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생로랑 컬렉션에는 아시안 계열 모델들이 많이 서지 않는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서구권 친구들이 나를 잘 챙겨주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아시안 모델의) 인원수가 적다 보니 타지에서 외롭진 않을까 걱정했던 모양이다. 그만큼 다정하게 말 걸어주는 친구들, 상대방 입장에서 배려해주는 친구들이 많아서 놀랐다”
Q. 흥미로운 경험이었겠다. 한국 모델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
“정말 많다. 평소에는 살갑고 유쾌한 친구들이지만 쇼에만 들어서면 본업에 충실하게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준다. 일을 대하는 관점도 사뭇 다르다. 그 친구들은 모델 일을 자신의 커리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젊고 빛나는 나이에 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모델 일이 자신의 전부고,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느낀다. 내면적으로 굉장히 여유가 없는 거다. 물론 그건 내 상황이기도 하고”
“생로랑 컬렉션에서는 그 차이를 유독 크게 느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저런 가치관으로 일할 수 있을까 부럽기도 했다. 우리들도 평소에 클리셰처럼 말하지 않나.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그러면서도 몸소 실천하는 이들을 찾기 어려웠는데 해외 무대에 나가서 모델들을 접하니 정말 잘 즐기고, 잘 헤쳐나가는 거다. 하물며 자신의 컷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거나, 원하던 캐스팅에 떨어졌을 때도 그것에 연연하는 것에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삶에 있어서 그 부분을 정말 본받고 싶지만 아직까진 불안감을 떨쳐내기 쉽지 않다”
Q. 최현준의 불안감은 어디서부터 기인하는지
“늘 똑같은 요소에서 불안감을 느낀다. 모델로서의 최현준과 사람으로서의 최현준을 잘 분리해야 정신적인 성장을 맺을 수 있는데, 아직은 그 둘을 하나로 연결 지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원하던 캐스팅에 떨어졌을 때만 해도 그렇다. 실제로는 시즌 무드나 착장에 부합하지 않아서 떨어졌을 가능성이 큰데, 난 사람 최현준의 가치에서 그 원인을 찾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지금의 가치는 점점 낮아지고 필수적인 자존감이 하락하는 거다. 앞으로는 그런 것들을 고쳐나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느낀다”
Q.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컬렉션은 보통 패션계 인사, 셀럽들로 꽉 채워져 진행되지 않았나. 생로랑의 쇼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생로랑 같은 경우에는 브랜드에서 라이브 쇼와 컬렉션 필름을 모두 기획했다. 라이브 쇼를 서기 전날 밤 필름 촬영을 무사히 끝마쳤다. 그다음 날 저녁엔 셀럽들 앞에서 런웨이를 다시 시작했고. 쉽게 말해서 컬렉션 무대를 두 번 선 거다”
Q. 그렇다면 리허설도 훨씬 철두철미하게 진행했겠다
“그렇다. 브랜드 측에서도 더욱 완벽한 결과물을 원했기 때문에 3일 동안 리허설만 쭉 진행했다. 안 그래도 무더운 날씨에 착용하는 쇼피스 중 두꺼운 아이템들이 많아 더 버티기 힘들었다”
Q. 현지 에이전시를 구하기 위해 유럽에서 직접 발로 뛰었다고 들었다. 그때 가져갔던 본인만의 무기는 무엇이었나
“순진무구한 마인드 셋(Mindset) 덕이 컸다. 아예 첫 활동이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정말 당돌하고 용감했던 거다. 나중에 주위에서 들어보니 해외 에이전시를 구하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 그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자신만만했고, ‘여러 군데 미팅하면 어디선가 연락이 오겠지’라는 순수한 마음이 있었다. 때론 시작에 있어서 그런 무지함이 더 나은 결과물을 줄 때가 있다”
Q. 만약 현장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없다면 다시 귀국할 예정이었는지
“물론이다. 실제로 귀국할 비행기 표를 미리 끊어놓은 상황이었다. 추후 일정에 따라 그 기한을 계속 연장하고 있었고”
Q. 쇼를 선 이후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워낙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다 보니 주변 반응도 무척 좋았다. 사실 ‘생로랑’ 하면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꿈꾸고 사랑하는 브랜드지 않나. 첫 쇼를 정말 운 좋게도 그 컬렉션에 서게 되어 지인들, 특히나 학교 친구들이 신기해했다”
Q. 카이스트 수학과에 재학할 정도로 학업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지금은 휴학 과정을 밟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아까도 말했듯이 모델로서의 단계를 이어나갈 때 심리적으로 무너진 부분이 많았다. 그 상태에서 학업적인 부담이 가중되다 보니 스스로를 지탱하기 쉽지 않더라. 평소에 ‘휴학만은 절대 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갖고 있었는데 그걸 깨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갖게 됐다”
Q. 그 시간을 갖게 된 이후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훨씬 편안해졌다. 학교가 대전에 있다 보니 만약 휴학을 하지 않았더라면 현장을 오가기에도 쉽지 않았을 거다. 그런 부분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수행하는데 더없이 좋은 기점이 되었다”
Q. 이제는 학업보다는 모델로서의 방향성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건가
“그런 셈이다. 물론 수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 전공을 선택했지만, 평생 안고 갈 수 있을 정도로 그 마음이 애틋하진 못했다. 처음 이 학교에 들어왔을 때는 뭣도 모르고 수학 교수가 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생업으로 연구를 지속할 만큼 이 분야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는 거다. 반면에 뒤늦게 시작한 모델 일은 신선한 감정 그 자체였다. 그때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확신했다. ‘이 일을 평생 노력해도 되겠다’라는 마음가짐을 느꼈기 때문에 더 특별했다. 이후 정리된 부분이 있다면 일단 학업은 학업으로서 끝마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패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만큼, 꼭 톱 모델이 아니더라도 어떤 모습으로든 이 업계에 온전히 남아 있고 싶다. 그게 가능하다면”

Q. 패션이라는 분야에 대해 유독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도 패션 앞에 유독 진지한 편이다. 패션 자체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모델로서의 커리어에 매력을 느껴 시작하는 이들이 많지 않나. 난 그와 정반대로 패션을 너무나 선망하고 사랑했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한 케이스다. 패션 씬에 대한 애정이 깊은 만큼 꾸준히 배워 가고 싶은 것들도 많다. 이 업계에 어떤 반향이 부는지, 과거엔 어떤 패션이 유행했는지에 대해서도 깊게 연구하곤 한다”
Q. 이 모든 게 모델 에이전시에 들어간 지 4개월 만에 진행된 결과다. 짧은 기간에 이룩한 만큼 초조하거나 불안한 부분은 없나. 뭔가 놓친 건 없을까 불안할 것 같다는 그런 생각
“물론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워낙 큰 쇼를 이뤄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기대감과 시선은 무시할 수 없다. 다음 행선지는 어떤 런웨이가 될지,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결과물을 이룩할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거다. 그리고 되게 슬픈 사실이지만,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사람들을 어느 정도 가리게 됐다. 이전엔 편하게 먼저 다가가는 편이었다면, 지금의 나로서는 다소 경계심을 갖는 편이다. 예전처럼 사람을 순수하게만 접할 수 없다는 점이 슬프더라”
Q. 그러면 지금은 여전히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는 과정이겠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되돌아 본다(웃음)”
Q. 앞서 본인이 말한 것처럼 멋있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모델을 꿈꾸게 되지 않나.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모델로서 멋지다는 건 뭘까?’ 그저 멋있다고만 표현하기엔 다채로운 분위기와 포즈를 요구하니까 말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잘 표현하고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사람. 모델로서 위험한 요소는 다른 누군가의 그림자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포즈나 애티튜드를 그대로 따라 한다든지 그런 것들. 이런 발자국 행위에 벗어나서 본인만의 색깔을 잘 찾아가는 모델이 멋지다고 느낀다. 그게 모델이 됐든, 사람이 됐든 간에 말이다”
Q. 큰 쇼를 이뤄냈다고 해서 그 값어치만큼 성장했다고 믿진 않는 건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생로랑 컬렉션은 정말 너무나도 운이 좋았기 때문에 이뤄낼 수 있었던 결과다. 수많은 아시안 모델 지원자 중에서도 내가 뽑힐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이미지, 컬렉션 콘셉트, 착장 등 여러 가지 포인트가 한데 맞물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브랜드의 이름만큼 내가 성장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모델로서의 좋은 시작점이 됐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을 발판 삼아서 더 성장하자는 각오다. 아직은 내가 모델로서의 역량이 부족하고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정말 깊이 느낀다. 특히 톱 모델 선배님들과의 촬영에서 유독 그렇다. 그때마다 신인인 만큼 꾸준히 더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되뇌곤 한다”
Q. 생로랑 런웨이는 맨즈 웨어 모델의 드림 쇼라고 하지 않나. 그 안에서 무엇을 터득하고 흡수했는지 궁금하다
“앞서 말했던 모델로서 삶을 즐기는 태도. 물론 자기 채찍질은 삶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지만 그것이 과해지면 오히려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 난 고등학생 때부터 그 강박관념이 컸기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했고 학업을 지속해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자신을 조금 더 내려놓고 삶을 살아가도 됐는데, 그땐 욕심을 저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과거의 나를 회상할 때마다 항상 안타깝다”
Q.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이후로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졌겠다. 방송 중 지금의 인생, 걸어온 길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된 부분은 없었나
“내가 인생을 너무 힘들게 살았다는 생각(웃음). 쉴 틈도 주지 않고 한없이 달려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정말로 여유 없게 살았더라. 그 때문인지 몰라도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이 아예 없었다. 따돌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했던 공부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친구를 못 사귀게 되는 배경이 된 거다. 다른 건 쳐다보지도 않고 백날 공부만 하는 애가 되어 버렸으니, 함께 놀자고 하는 친구들도 거의 없었다”
Q. 그에 비해서 요즘엔 어떤 상태인가
“어느 정도 여유를 찾았다. 이전에는 술 마시는 행위 자체를 전혀 이해 못 했는데, 요즘엔 그런 자리도 조금씩 나가는 편이다(웃음). 부족한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Q. 방송을 보면서 후회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예를 들면 ‘더 마음 내려놓고 살아갈걸’이라던지 그런 후회들 말이다
“그런 후회는 끊임없이 하는 것 같다. 또 하나 추가로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내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오해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는 거다. 방송에 나간 이후로 SNS 메시지가 정말 많이 날아왔다. 대다수의 내용은 내가 채찍질하며 학업을 이뤄낸 것에 대한 칭찬과 동경이었다. 하지만 그건 결코 멋있는 삶이 아니지 않나. 본인을 돌아보며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진정으로 멋진 삶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의미가 잘못 전달된 것 같아서 메시지 하나하나 다 답장을 달아드렸다. 그건 내가 바라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해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꼭 한번 되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들의 삶을 의도치 않게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면 안 되니까”
Q. 그러면 본인에게 ‘카이스트’, ‘생로랑 컬렉션’이라는 타이틀은 전혀 의미가 될 수 없겠다
“물론이다. 전혀 의미가 없다. 실제로 지금 에이전시와 계약할 때도 대학에 대한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을 정도다(웃음). 오히려 학교 이름을 말하게 되면 그 의도가 무엇이 됐든 간에 색안경이 저절로 씌워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정관념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지 못한다고 느낀다. (그 사람의) 현재를 봐야 하는데 결국 과거의 행적을 읽게 되는 것이니까. 마찬가지로 나 또한 학력을 결코 내세우지 않는 편이다”
Q. 물론 어떤 취지로 말했는지는 이해하지만, 대중들이 최현준의 학업을 주목하는 이유는 목표에 대한 열망과 그 결실이 유독 도드라졌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것도 맞다. 내 가능성을 믿어준다는 점에 있어서는 굉장히 긍정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Q. 어린 나이에 힘든 시간을 겪은 만큼 자신뿐 아니라 주변에 대해서도 사색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다. 타인 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가 있나
“그런 편이다. 유년 시절의 나는 항상 자신만만하고 고집이 센 아이였다. 내가 원하던 바를 뚜렷이 주장할 수 있고, 주관을 굽히지 않는 그런 아이. 그러다가 중학생 때 심한 따돌림을 받다 보니 성격 자체가 위축되고 병약해진 거다. 더는 따돌림을 당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남의 눈치를 보게 되고, 나의 견해가 있더라도 밖으로 편하게 표출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명확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지금도 그게 쉽지는 않다. 한낱 중학생 때의 경험일 뿐인데도 내 삶에 크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Q. 모델로서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어느 정도로 확신하는 편인가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계속 왔다 갔다 한다(웃음). 의외로 혼자 집에 가만히 있으면 자신감도 들고 확신에 차곤 한다. 그러다가 모델로서 훨씬 커리어가 뛰어난 분들, 그런 선배님들과 함께 촬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위축될 때가 있다. 데뷔한 지 7개월밖에 안 된 시점에서 (데뷔 연차)가 5년, 10년 이상 된 선배들을 보면 내 가능성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Q. 선배들을 접할 때 모델로서의 욕심도 점점 커지나
“그런 것 같다. 모델로서의 활동에 적지 않은 자극이 된다”
Q. 그렇다면 모델로서 최근에 맺은 결실이나 깨우친 점은 없는지
“아무래도 첫 촬영 때보다 더 자신감이 생겼다. 맨 처음 촬영했을 때는 포즈 하나 취할 때에도 눈치를 보고, 디렉팅을 주시기 전까지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반면에 요즘은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그런 디테일한 요소를 찾아 나서는 편이다”
Q. 이번 무신사 캠페인 광고에서 보여준 구절이 꽤나 인상 깊다. ‘나는 나대로 아름답다’, 이 메시지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내 상태 절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상태 절반을 의미한다. 아직도 난 스스로 ‘나는 나대로 아름답다’라는 것을 100% 확신하진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의 이상향을 메시지로나마 풀어냈다. 절반의 삶을 위한 절반의 자기 격려인 셈이다”
Q. 최현준을 쉽게 표현할 수 있을만한 강점, 타이틀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생로랑 컬렉션’, ‘카이스트’가 아닌 그런 본질적인 타이틀
“무모함이 아닐까 싶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금의 안정적인 삶을 뒤로하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기 두려워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어떻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 같다. 안정적인 학업과 전공을 딛고 전혀 관련 없는 분야에 나선 부분 말이다. 나는 그 선택이 별로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거고”
Q. 평소에 몸매 관리는 열심히 하는 편인지
“처음에는 관리하기 정말 힘들었다. 원래 몸 상태보다 더 스키니한 체형을 원했기 때문에 극단적인 관리법을 시행하다가 최근에는 그 생각이 다소 바뀌었다. 내가 이 직업을 좋아한다면 오랫동안 유지해야 하는데 단기간으로 감량하는 건 효력이 없지 않겠나. 그때부터는 체계적이고 원만한 계획으로 몸 관리를 이어 나가고 있다”
Q.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있나
“치킨을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먹은 닭들이 정말 많을 거다. 너무 좋아해서 한창 많이 먹을 때는 일주일에 세 번 먹을 때도 있었다(웃음)”
Q. 외동이지 않나. 혼자서 치킨을 다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
“그런 것 같다. 뺏어 먹는 사람이 없음에 큰 감사함을 느낀다. 형제를 항상 갖고 싶었는데 이렇게 보니 외동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웃음)”
Q. 자유로운 하루가 주어진다면 무엇으로 휴일을 채우고 싶은지
“몇 없는 중학교 동창 친구들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게 어렵다면 서로의 집에 놀러 가서 영화 보는 것도 좋고. 순수했을 때를 다시금 돌이켜보고 싶은 마음이다”
Q. 2021년은 최현준에게 특히나 상징적인 한 해였다. 다가올 2022년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한 층 더 성숙해지는 한 해였으면 좋겠다. 정신 연령도 그만큼 더 높아져야 하고(웃음)”
에디터: 박찬
포토그래퍼: 두윤종
의상: 클럽 모나코, 산드로 옴므, 준지, 존 바바토스, 프레드 페리, 타미힐피거, COS, THEMUSEUMVISITOR, MSGM
슈즈: 닥터마틴, 쏘유레슈어, 8 by YOOX
주얼리: 오드콜렛
아이웨어: 젠틀몬스터
헤어: cloutii 단비 부원장
메이크업: cloutii 현지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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