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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낸시랭 “힘들었던 시련의 시간들, 나를 빛나게 해줄 거라 확신해”

2018-01-04 15:07:10

[마채림 기자]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서 펼친 ‘초대받지 못한 꿈과 갈등-터부요기니’ 퍼포먼스로 공식 데뷔한 낸시랭은 그간 노출도 불사한 행위 예술과 적극적인 방송 활동 등의 파격적인 행보로 주목을 받아왔다. ‘걸어 다니는 팝 아트’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개성 있고 파격적이며 독특하다는 표현과 가까운 그. 자연스레 그의 매력을 살린 화보 콘셉트를 기획하려던 찰나, 특별히 원하는 콘셉트가 있다며 자신의 뜻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매력을 보여주고 싶다며 이번 화보 작업이 여성스럽고 차분한 방향으로 진행되길 당부했다. 다양한 변수를 두어 기획을 시도했지만 좀처럼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의 낸시랭이 그려지지 않아 저절로 고개가 갸웃했다. 그에게 특별한 계기나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찾은 촬영 현장서 그를 보니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다.

환한 미소와 함께 화보 촬영에 활용될 자신의 작품 두 점을 들고 모습을 드러낸 낸시랭. 걱정과 달리 그는 이미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매력으로 무장한 전혀 새로운 모습이었다. 이제는 결혼해 한 남자의 여인이 된 그. 어딘가 모르게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닮아 있던 낸시랭의 환한 미소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Q. 간단한 화보 촬영 소감 부탁드린다.

bnt 화보는 피사체가 예쁘고 유니크하게 표현돼 마음에 든다. 이런 작업을 두 번이나 하게 돼서 너무 기뻤고 작업에 대한 기대가 컸다.

Q. 가장 마음에 드는 콘셉트는 무엇이었나

여성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기존에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아티스트로서의 오리지널리티까지 다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 세 가지 부분이 모두 나타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콘셉트는 블랙 플로럴 드레스를 입고 진행했던 것. 아티스트 낸시랭의 모습이 가장 잘 표현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화이트 드레스에 재킷을 매치해 진행했던 콘셉트는 내가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 좋았다.

Q.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2018년도에 낸시랭 개인전과 10대 세계 명화전에 전시될 작품을 준비 중이다. 올해는 다른 활동보다는 작품에 매진할 계획이다.

Q. 행위 예술가, 팝 아티스트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전 세계 예술계 메커니즘이 집안의 지원이나 아내 혹은 남편의 서포트가 없으면 작품을 하기 어렵다. 작품 활동을 해나가기 위해 돈을 벌려다 보니 지금의 팝 아티스트 낸시랭이 되어 있더라. 돈을 위해 회사에 들어가면 작품 활동을 이어가기 쉽지 않나. 그래서 나 자체가 브랜드이자 작품이 되는 길을 택해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초대받지 못한 꿈과 갈등-터부 요기니’라는 타이틀로 데뷔하게 됐고, ‘걸어 다니는 팝 아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모든 매체의 인터뷰마다 ‘아티스트냐, 연예인이냐’라는 질문이 많았다. 보수적인 대한민국에서 미술을 한다 하면 물감 묻은 파카를 입고 고뇌하며 작품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마련인데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하고 명품 브랜드 옷을 입는 모습 자체가 충격적이었나 보다.

Q.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괴롭진 않았나?

그렇진 않았다. 그냥 시기와 질투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면 내가 바꿔야 한다는 말인데 내가 나의 삶을 살고 내 예술을 하겠다는데, 더군다나 내가 피해준 것도 아닌데 왜 바꿔야 하나 싶더라. 그래서 타협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시선과 특별히 법을 어기거나 죄를 진 사람이 아닌데도 이어지는 돌팔매질에 서운하기도 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예전보다 훨씬 자연스레 받아주시는 것 같다.

참으로 희한한 게 예전에는 방송 출연을 꿈도 못 꿀 정치가, 셰프, 의사, 변호사 등이 모두 나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방송에 출연하는 파인 아트 아티스트는 낸시랭 이후 없다. 오히려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보다 아티스트가 나와 방송을 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데 그렇지 않은 현실이 아이러니다. 다수의 아티스트들이 나와 주길 바랐다. 그럼 내가 조금 더 편해질 거란 생각에.

이제는 더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보려고 한다. 돈에 대한 고민도 내려놨다. 이토록 열심히 10여 년간 활동했음에도 부자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닌 데다 내가 살 길은 가장 보람과 행복감을 느끼는 아트 작업에 집중하는 거란 생각에 말이다. 앞으로 인생2막이 시작되는 거나 다름없다. 20~30대를 경마장 경주마처럼, 다치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며 달려왔는데 어느덧 40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머리도 길렀다. 그간 단발머리만을 고수하며 사람들에게 너무 치이고 해탈한 부분이 많아 스타일링에 변화를 준 것. 그런 맥락에서 화이트 드레스와 체크 패턴 재킷을 입고 차분하게 진행했던 콘셉트가 참 마음에 들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심경이 잘 표현된 것 같다.


Q. 금전적으로 여유로웠다면 행위 예술과 평면 예술 중 어떤 분야에 더 매진했을까

홍익대 미대 서양학과 학사, 석사 출신이라 금전적 제약이 없다면 평면을 위주로 다루고 싶다. 그게 가장 기분이 좋고 나만의 우주에 빠질 수 있어 행복하다. 최근 낸시랭 조형 연구소를 만들어 오랜 시간 조형물에 매달리기도 했다. 2년간의 작업 끝에 태릉입구역 앞 38층 건물 앞에 5m가 넘는 ‘LOVE’라는 조형물을 세워 뿌듯하다.

Q. 영감은 주로 어디서?

주변의 모든 환경과 수면 중 꿈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 내 꿈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컬러풀하며 입체적이고 선명하다. 그래서 잠을 오래 자는 걸 좋아한다. 꿈속에서는 내가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을 보고 경험할 수 있어 영감을 많이 얻는 편. 깨어나면 책이나 매체 등 어디선가 봤던 것들이 나올 확률이 높은데 그런 게 전혀 없는 경우가 많아 스스로 신기할 때가 많다. 죽게 되면 지금 세계가 꿈이고 꿈의 세계가 현실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선명하다.

Q. 머슬마니아 1위, 대단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기업과의 협업, 작품 판매, 방송 출연, 광고 모델 활동 등을 했지만 다 한때이며 다양한 파인 아트 작업을 하다 보면 금세 다시 빚이 쌓였다. 작품 활동을 하느라 넉넉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데에 지쳤다.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거다. 그래서 그런 걱정 없이 수입이 편안하게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환경조형연구소를 세워 조형물을 만들고 당시 준비하던 ‘낸시랭 스타킹’을 자연스럽게 론칭하기 위해 머슬마니아에 도전하게 됐다. 인지도는 높지만 비즈니스를 전개할만한 명분이 없어 고민하던 찰나 스타킹을 함께 기획하던 동업자가 머슬마니아 출전을 권유한 게 도전 계기다.

당시 유승옥, 이연 같은 늘씬한 모델들이 주름잡고 있던 때였는데 키도 작고 분야도 전혀 다른 내가 출전을 하니 주최 측에서도 눈길이 갔나보다. 주최 측에서 사전 고지 없이 언론에 보도해 이슈를 몰았다. 그러면서 알려지게 돼 어쩔 수 없이 더 열심히 하게 됐고 준비기간 동안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 없이 바빴다. 너무 힘들어 다시는 도전하고 싶지 않다. (웃음) 결국 1위를 차지했지만 이후 동업자가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낸시랭 스타킹 비즈니스는 물거품이 됐다.

Q. 군살 없는 몸매 관리 비결

웬만하면 탄수화물 섭취를 하지 않고 특히 밤에는 더욱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먹고 싶을 땐 마음껏 먹는다. 다이어트에 대한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보통 다이어트를 다짐함과 동시에 음식 섭취량을 줄이지 않나. 그러면 운동할 때 힘도 나지 않고 일시적으로 몸이 더 부어 의욕을 상실하게 되는 역효과를 부른다. 내 비결은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음식 섭취량을 줄여 체중을 감량한 뒤 운동을 시작하는 것. 몸매 관리에 훨씬 수월하다.

Q. 한국에서 예술가로 활동한다는 것은

나는 팝 아티스트, 행위 예술가가 아니다. 퍼포먼스 작품보다 평면 작품 수가 월등히 많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미술에 관심 있는 게 아니기에 팝 아티스트 혹은 행위 예술가로 인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보통 동적인 것과 피사체가 인간일 때 더욱 관심을 가지지 않나. 그러한 부분만 편집돼 방송에 나가니 평면 작품보다 그쪽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올해 마음을 먹은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이 나라를 떠나는 것. 국적이 미국이기에 미국으로 갈 수도 있고 유럽, 중국 등 어디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인생 2막을 앞두고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데다 작품에만 매진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다. 한국에서 할 만큼 다 해보지 않았나. 그런데도 돌림노래 같은, 마치 쳇바퀴가 돌아가는 것처럼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니 이 나라를 떠나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번에 작품 때문에 스위스를 다녀오며 그 다짐이 더 확고해졌다.

Q. 그렇다면 시기는 언제?

2018년 중 떠나려 한다. 다시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가고 싶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10여 년간 팝 아티스트로, 그 어떤 아티스트보다 여러 도전을 하고 논란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버텨왔는데 한국에서는 답이 안 나오는 것 같다.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까진 어렵나 보다. 단순히 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하며 그곳의 요구 사항을 잘 따르는 아티스트로 살아간다면 이곳에서 지내는 게 지금도 어렵지 않지만, 나는 그런 행보를 밟아오지 않았으며 그럴 생각도 없다.

Q. 화보 촬영 현장서 고양이 코코샤넬을 볼 수 없었는데, 특별한 이유?

이번 화보 촬영에 활용될 작품을 챙겨오느라 깜빡했다. (웃음) 코코샤넬과 가브리엘샤넬은 여러 마리가 아니라 각각 하나씩이다. 가브리엘샤넬은 명품 페르시안 고양이고 코코샤넬은 삼색 들고양이다. 그래서 코코샤넬을 더 편애한다. 코코샤넬과는 13년째 함께 지내고 있다. 데리고 다닌 지 너무 오래돼 이제는 어깨 위에서 가방 위로 내려온 상태다. (웃음)


Q. 아티스트,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

2009년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그 기점으로 불면증이 생기는 등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못 찾겠더라. 외동이고 아빠 또한 안 계신 걸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아빠는 과거 아픈 엄마와 나를 버리고 한순간에 사라졌었다. 그 결과 모든 걸 내가 떠안게 됐다. 오래도록 아빠가 안 나타나 주변을 수소문해보니 어딘가에서 죽었다고 하더라. 설사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속에서 죽었다 생각했기에,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인터뷰를 했던 것.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집이 망해 힘들던 시기였음에도 전 지구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라 말하고 다녔다. 부와 명성을 한 손에 얻어 대한민국 서울을 뉴욕이나 런던 같은 현대 미술의 메카로 만들어 국가에 이바지하는 게 나의 총체적인 드림 맵이라 수천 번 인터뷰해왔는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바뀌었다. 마냥 행복해지고 싶더라. 내 가정을 이루고 싶단 마음이 커졌다. 가정이 붕괴됐으니 결혼을 통해 내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Q.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구가 강한 것 같은데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것이 있다면

금전적으로 넉넉한 분과의 결혼이 목표였다면 진작 결혼을 했을 거다. (웃음)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이혼을 하게 될 게 안 봐도 뻔해 그러지 않았다.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아티스트적인 마인드였으면 좋겠고 인류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간 이상형을 물었을 때 뇌가 섹시하고 인류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곤 했었다.

과거 ‘라디오스타’에 나가서 뇌가 섹시한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했다가 MC들의 핀잔을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동명의 예능프로그램까지 생겼다. 내가 ‘뇌섹남’이라는 유행어를 만든 거나 마찬가지. 소위 SKY를 나왔다고 똑똑한 건 아니지 않나. 총명하고 똑똑한 사람을 표현하고 싶어 뇌가 섹시한 남자라 표현하게 됐다. 인류애라 함은 내가 결혼할 여자를 평생 지켜주고 사랑할 거라는 확신을 주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Q. 외모적인 이상형은 특별히 없나?

외모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 사람의 매력을 보는 편이다. 여태 만난 남자의 외모가 다 제각각이라 주변에서 이상형 통계를 내기 어렵단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웃음)

Q. 스트레스를 받을 땐 어떻게 극복하나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지인들과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 또 내 작품을 기획하며 몰두하는 게 가장 좋다. 시간과 돈이 되면 여행을 다니겠는데 여건이 되지 않아 지인과의 모임과 작품 활동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Q. 평소 긍정적인 성격의 근원

타고난 것 같다. 워낙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겁이 없다. 유년 시절부터 대학교 때까지 압구정의 아파트에서 외동딸로 살며 부유함을 누리다 보니 겁낼 일이 없더라. 그런 후에 집이 망하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엄마가 암 투병을 시작하니 부쩍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내 꿈인 아티스트는 놓을 수 없어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지금의 낸시랭이 됐다. 크리스천인 것도 큰 몫을 했다.

Q. 2018년 계획

개인전과 세계 명화전에 전시될 작품 작업에 매진하는 것. 방송이 들어온다면 출연하겠지만 작품에 몰두하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둘 계획이다. 그 밖의 여러 비즈니스를 계획 중인데 그것들을 진행해 수입을 올리게 되면 대한민국을 떠날 거다.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 갑자기 결혼을 할 수도 있고. 확실한 건 한국에 다시 돌아오더라도 일단은 이곳을 떠나는 거다.

Q. 낸시랭은 30년 뒤에도 예술과 도전을 하고 있을까

30년 후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도 예술과 도전은 계속될 것. 하나님이 주신 예술적 DNA를 펼치며 영원히 예술로 남고 싶다. 그게 가장 행복할 것 같다. 앞으로 예술가로서 더욱 두각을 보이게 된다면 지금까지 힘들었던 시련의 시간들마저 나를 더 빛나게 해줄 거라 확신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게 현실적으로 참으로 힘들고 암담할 때가 많지만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 말하고 싶다. 쉬는 것과 포기하는 건 엄연히 다르다.

에디터: 마채림
포토: 김연중
의상: 마벳, 르이엘, 루트원
슈즈: 섀도우무브(SHADOWMOVE)
팔찌: 마벳
선글라스: 프론트(Front)
헤어: 콜라보엑스 마준호 실장
메이크업: 콜라보엑스 정민 실장
장소: 띠그레블랑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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