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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희진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사라져”

2019-01-02 15:51:18

[우지안 기자] 1990년대 하이틴 스타이자 최근 드라마 ‘나도 엄마야’에서 악역으로 열연하며 꾸준한 연기 행보를 보이는 데뷔 32년차 배우 우희진. 아역 배우로 시작해 어린이 드라마, 청소년 드라마에 이어 성인 연기자로 거듭나게 했던 드라마 ‘느낌’, MBC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까지 순탄한 연기 행보는 시청자들의 쏟아지는 사랑과 함께 그를 성장하게 했다.

데뷔 초와 변함없는 이국적인 이목구비에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용할 수 없는 아우라는 그간 쌓아온 내공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분위기에 따라 한없이 청순하다가도 눈빛 하나로 퇴폐적인 무드를 자아내며 숨죽이게 만드는 능력까지 실제 그와 마주했던 시간은 경이롭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20대, 30대를 거쳐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며 대중에게 공감을 자극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우희진. ‘살아남았다’라는 표현으로 긴 배우 생활에 대한 소감을 함축해버린 그는 지금처럼, 꾸준히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Q. 화보 촬영 소감이 어땠어요?

“너무 새롭고 좋았어요. 하이틴 때부터 활동해서 그런지 오늘 촬영은 옛날 생각도 났고 신선하고 조금 더 색다르게 연출했던 것 같아요”

Q. 작품 끝나고 한 달 남짓, 어떻게 지내셨어요?

“중학교 때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와 홍콩 경유해서 푸켓 다녀왔어요. 피부가 좀 탔죠?(웃음). 쉬려고 갔는데 체력 좋은 친구와 함께 가서 그런지 엄청 걸어 다녀서 오히려 살이 빠졌어요. 여행 다녀온 후에는 가족들과 시간 보내면서 쉬고 있어요”

Q. 최근 작품 드라마 ‘나도 엄마야’에서 최경신 役 , 이해할 수 없는 악역 캐릭터를 맡았잖아요.

“사실 좀 힘들었어요. 배우이기 때문에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해야 하지만 캐릭터를 이해하는 과정은 꼭 필요하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상식적인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사람이 욕심이 생기고 선한 면이 아닌 악한 면이 더 부각될 수 있겠다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Q. 유난히 힘들었던 씬이 있었나요?

“작가님께서도 캐릭터를 만드실 때 많이 고민되셨을 거예요. 자식이 있는데도 자식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보다 본인의 욕심을 더 앞세울 때나 다른 사람에게 사죄할 때도 미안함 마음을 가졌는지 의심스러운 행동을 할 때는 좀 어려웠었죠”


Q. 악역을 하면 에너지 소모가 크다고 들었어요.

“에너가 소모가 크죠. 연기할 때보다 집에서 대본을 읽고 내용을 분석하고 대사를 외울 때가 더 힘들었어요. 대본을 보면서 제 생각과 가치관이 캐릭터와 부딪힐 때가 많았거든요. 촬영할 때는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었을 뿐이지 힘들었을 때는 인물을 이해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어려웠어요”

Q. 촬영장 분위기나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어요?

“아침 드라마다 보니 저를 포함해 다른 배우들도 대사량도 많았거든요. 분위기는 좋았지만 함께 교류할 수 있었던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는 않았어요. NG는 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시간에 쫓기다 보면 완벽하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오히려 중압감이 있긴 하지만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노력했어요”

Q. 1987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 년’을 통해 아역 배우로 데뷔해 어느덧 32년차 배우가 됐네요.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때도 많았겠죠?

“오래해도 별다른 게 없어요(웃음). 일을 일찍 시작해서 오래 하고 있는 거죠. 다른 사람들은 직업을 바꾸기도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직업을 바꾸지 않고 꾸준히 했던 거니까요. 직장인으로 따지면 장기근속이라고 해야 하나요(웃음). 어릴 때는 일을 많이 하다가 쉬게 되면 불안했어요. 20대 때는 ‘일을 계속 안 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많았거든요. 30대에 접어서고 나서는 중간에 다른 일을 하면서 잠깐 이쪽 일을 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어요. 웨딩 컨설팅 일이 유행처럼 번졌었는데 어떤 분이 제안을 해주셔서 했는데 제 열심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 시간 동안 배우로서 일을 못했기 때문에 아쉬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계기로 인해 제 일을 더 소중하게 여길 기회가 됐던 것 같고 그때 일을 쉬면서 다음을 기약하는 인내심을 배운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그때보다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Q. 얼마나 연기를 쉬었던 건가요?

“1년 정도 다른 일을 하고 결과적으로는 3년 정도 연기를 쉬었어요. ‘인생을 아름다워’ 작품 하기 전이었으니까 꽤 됐죠. 그때는 가족이 많은 힘이 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왔던 것 같아요. 배우가 아닌 다른 일을 해 본 적이 없었고 늘 바쁘다가 갑자기 일이 없어졌었으니까요”

Q. 연기를 계속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뭔가요?

“평상시에 저는 굉장히 무난한 편이에요. 물론 사람마다 각자의 개성이 있겠지만 제 라이프스타일을 봤을 때 그저 평범한 사람이에요. 승부욕도 없는 편이고 재미를 추구하는 성향도 아니고요. 그때 그때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즐거워하면서 사는 사람인데 연기를 할 때는 평소의 저보다 에너지를 끌어서 연기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게 돼요.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일하는 것도 너무 즐겁고요. 배우로서, 연기하는 제 모습을 빼놓고는 완전체라고 할 수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연기를 제일 잘하는 것 같아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살아남았다고(웃음) 물론 모양은 다를 수 있겠지만요. 어떤 사람은 더 좋은 역할, 더 많은 인기를 원할 수도 있고요. 예전부터 연기 자체가 좋거든요. 그래서 제 일에 대해서 만족도가 높은 것 같아요. 저는 무언가 했을 때 결과물이 보이는 게 좋은데 연기는 제가 노력하고 대사를 숙지하고 인물을 분석해서 연기하면 결과가 보여요. 아쉽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하고 나면 해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성취감도 들고요. 또 훌륭한 감독님, 작가님,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끝내고 나면 감사한 마음과 만족감을 얻어요”

Q. 인생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다면요?

“윤석호 감독님의 ‘느낌’을 빼놓을 수 없죠. 저를 성인 연기자로 거듭나게 해준 작품이기도 하고 감독님께서 실제의 저보다 예쁘게 찍어주셔서 저의 예쁜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셨고요. 미숙하지만 이제 막 어른이 되려고 하는, 그때만 가질 수 있는 매력을 잘 담아주셨어요. 기록으로 남겨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최근에는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에서 끝까지 출연하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연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고 좋은 대본 덕에 연기 호평도 받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Q. 기억에 남는 상대 배역은요?

“손현주 선배님과 특집극을 했었던 적이 있었어요. 교감을 많이 하는 배우와 연기하는 게 좋은데 손현주 선배님과는 편하게 호흡하며 했던 생각이 나요”


Q. 어찌 보면 배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30대 후반이 넘어서야 연기가 천직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일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소중하고 여유가 생겼거든요. 지금까지는 일을 해야 된다고만 생각했지 어릴 때는 연기가 너무 좋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그래서 욕심도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열정이 없었다고 할 수 있죠”

Q.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은 어떤 게 있을까요?

“현실하고 동떨어진 밝은 이야기보다는 현실을 반영해 일상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담긴 드라마를 해보고 싶어요. ‘미생’, ‘나의 아저씨’도 그런 드라마잖아요. 현실의 애환을 담아 공감대를 자극할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멜로는 어렸을 때 많이 해봤던 것 같기는 한데 지금 나이대의 멜로는 또 깊이가 다르겠죠(웃음). 판타지같은 멜로보다는 현실적인 부분도 담긴 멜로는 해보고 싶어요”

Q. 호흡 맞춰보고 싶은 배우는요?

“박근형 선생님, 김해숙 선생님이요. 이번에도 박근형 선생님과 함께해서 너무 좋았어요”

Q. 작품 고를 때 특별히 염두 하는 점이 있다면요?

“어릴 때부터 장르와 캐릭터의 비중보다는 오로지 캐릭터 위주로 선택했던 것 같아요”

Q.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회의를 느꼈던 적은 없어요?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잖아요.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안 하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 생각하잖아요. 연예인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연기가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기가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요. 20대의 저와 30대의 모습이 다르듯 처음과 같은 이미지를 고집할 수도 있는데 제가 변해가는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노력한다면 어떤 톱스타가 아니라 배우로서 꾸준히 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Q. 32년 차 배우에게도 롤모델이 있을까요?

“김해숙 선생님 멋있죠. 따뜻한 분이시고 연기할 때 교감이 너무 좋거든요. 김해숙 선생님 같은 경우가 하나의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고 때에 평범한 가정 주부부터 카리스마 있는 역할까지 연기하시고 깊이도 있으시잖아요. 가족 드라마부터 트렌디한 드라마까지 소화하는 건 그만큼 배우로서 역량이 크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어서도 그 사람 아니면 안 되는 존재감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Q. 쉬는 날엔 어떻게 시간 보내세요?

“집에서 사부작거리다 보면 하루가 금방 다 가요. 요즘엔 몸이 아파서 자주는 못 했는데 원래 취미가 수영이거든요. 못 봤던 친구들 만나서 밥도 먹고요. 일하면 반년은 집중하잖아요. 그래서 나머지 시간들은 맛있는 거 먹고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요. 그런 소확행이 저에겐 큰 기쁨이에요”

Q.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은요?

“왔다 갔다 해요. 꼭 해야 하나 싶다가도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크게 봤을 때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 같아요. 아마 제 안에도 열정이 있지 않을까요?(웃음). 이상형이 구체적이면 오히려 쉽다고 하던데 저는 이상형이 구체적이지 않아요. 마인드가 비슷한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따뜻한 사람이 좋은데 예의가 바르고 경우가 바른 것과 마음이 따뜻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르거든요. 실수는 좀 해도 후자가 더 좋아요. 제가 장녀라서 그런지 챙겨주고 그런 스타일이거든요. 챙겨줄 줄 알고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 좋아요. 이제는 소개팅도 안 들어오던데요(웃음). 아무래도 배우라는 직업이 받아들이기 편한 직업은 아닐 수 있잖아요. 인연이 있다면 만나지 않을까요?(웃음)”

Q. 진부한 질문이겠지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김해숙 선생님이 제 롤모델이라고 했다시피 어떤 곳에서도 제 역할과 몫을 해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에디터: 우지안
포토: 권해근
영상 촬영, 편집: 이재엽, 유혜윤
의상: 노미나떼, bnt collezione(비앤티 꼴레지오네), 마리타 후리나이넨
슈즈: 바이비엘
백: 토툼(TOTUM)
주얼리: 위드란(WITHLAN), 바이가미
시계: 자스페로
헤어: 제니하우스 김진미 실장
메이크업: 제니하우스 장혜정 원장
장소: 우아시스(wooa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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