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17한국영화④] 엄마의 이름 그리고 약진의 여배우

2018-01-03 10:09:00

[김영재 기자] 2018년 무술년에도 한국 영화 돌아보기는 계속된다.

시리즈를 기획하며 눈길 닿은 첫 주제. ‘박스오피스 순위’였다. 알고 있는가? 2017년 ‘천만 영화’는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뿐이란 것을. ‘강철비(감독 양우석)’ ‘신과 함께-죄와 벌(감독 김용화)’ ‘1987(감독 장준환)’의 12월 흥행 혈투 역시 기사 거리로 안성맞춤이었다.

‘한 해를 빛낸 배우’도 좋은 주제였다. 영화 ‘범죄도시(감독 강윤성)’와 ‘부라더(감독 장유정)’를 통해 배우 마동석은 흥행 보증 수표가 됐다. 주연작을 세 편이나 개봉한 배우도 다수였다. 설경구는 ‘루시드 드림(감독 김준성)’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감독 변성현)’ ‘살인자의 기억법(감독 원신연)’을 통해 3전 2승을 거뒀다. ‘미담 제조기’ 강하늘은 ‘재심(감독 김태윤)’ ‘청년경찰(감독 김주환)’ ‘기억의 밤(감독 장항준)’으로 3전 3승의 기록을 썼다.

그러나 기자는 다른 시각으로 2017년을 주목했다. 그리고 정유년을 종합하는 넷째 기사는 엄마와 여성 배우를 조명해본다. 시간 위에서 가족을 구하는 영화, 아들을 위한 엄마의 채비를 그린 영화, ‘여배우’가 실제 같은 가짜 속에 웃음을 전하는 영화, 노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등 관점에 따라 2017년 한국 영화계의 중심은 여성이었다.

#엄마의 이름으로


단어 ‘엄마’를 사전에서 찾아보자.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어머니를 부르는 말’이란 정의가 나온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기를 낳아 준 여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로 설명된다. 하지만 어떤 정의도 엄마를 떠올릴 때 동반되는 뭉클한 감정을 설명하진 못한다. 내리사랑은 문자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희생이다. 또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사랑이다. 공감을 모아야 할 충무로가 이를 놓칠 리 없다.

4월5일 개봉작 ‘시간위의 집(감독 임대웅)’은 남편의 죽음과 가족의 실종을 겪은 주부 미희(김윤진)의 25년 후를 다룬 작품이다. 제목이 결말을 암시한다는 혹자의 한 줄 평처럼 작품은 반전 영화로 규정되는 요소를 안고 있다. 하지만 ‘시간위의 집’이 가진 반전은 엄마의 희생으로 완성된다. 모성애가 초자연적 현상을 만났을 때 벌어질 법한 일은 관객 대다수가 저마다의 엄마를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장산범(감독 허정)’의 엄마 희연(염정아) 또한 미희 못지않은 절절한 모성을 전한다. 8월17일 개봉한 ‘장산범’은 목소리 흉내로 사람을 홀리는 괴생명체 장산범이 등장하는 작품. 이 가운데 아이를 잃고 괴로워하는 희연의 모성은 공포를 버틸 수 있게 돕는 감정의 지지대다. ‘장산범’의 주체는 엄마다. 그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장산으로 이사했으며, 낯선 아이에게 아들을 투영한다. 그리고 아들을 만나기 위한 모정은 희연을 사지로 이끈다. ‘시간위의 집’의 결말이 위안을 안겼다면, ‘장산범’의 결말은 슬픔을 이끈다.

앞의 두 작품과 다르게 영화 ‘미옥(감독 이안규)’은 여성 누아르를 표방했다. 더불어 배우 김혜수의 ‘미옥’이란 점은 개봉일 11월9일을 기대케 했다. 극은 조직의 언더 보스 나현정(김혜수)이 은퇴를 준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배경에는 나현정의 아들이 있다. 결과적으로 주인공 미옥의 모정은 작품의 패착이었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김혜수는 “모정성에서 감독과의 시각 차이를 느꼈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아들을 위해 나현정은 장총을 든 채 적진으로 돌진한다. 그러나 엄마와 누아르는 물과 기름이 되었다.

‘미옥’과 같은 날 개봉한 영화 ‘채비(감독 조영준)’는 보다 전통적인 엄마를 표현한다. 배우 김성균이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서른 살 지적 장애인 인규를 연기했고, 고두심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엄마 애순을 표현했다. 고된 세상을 살아갈 아들의 앞날을 준비하는 엄마의 채비는 어쩌면 2017년 개봉한 엄마 중심 영화 중 가장 원초적 슬픔을 관객에게 안긴다. 하지만 노골적이진 않다. 언론시사회에서 취재진은 “펑펑 울려고 준비했는데 울음이 안 나는 착한 영화”란 평으로 작품이 지닌 무공해 슬픔을 언급했다.

#여배우의 약진


영화 개봉에 앞서 매체는 배우를 만난다. 개봉작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오직 영화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의 공적, 사적 영역을 향한 질문도 쏟아진다. 그리고 2017년의 여성 배우가 가장 많이 답했을 질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남성 중심 작품만 만들어지는 현 충무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 ‘더 킹’ ‘공조’ ‘재심’ ‘루시드 드림’ ‘해빙’ ‘프리즌’ ‘보통사람’ ‘원라인’ ‘임금님의 사건수첩’ ‘보안관’ ‘석조저택 살인사건’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대립군’ ‘하루’ ‘군함도’ ‘택시운전사’ ‘청년경찰’ ‘브이아이피’ ‘살인자의 기억법’ ‘범죄도시’ ‘남한산성’ ‘대장 김창수’ ‘부라더’ ‘꾼’ ‘반드시 잡는다’ ‘기억의 밤’ ‘강철비’ ‘신과함께-죄와 벌’ ‘1987’.

2017년 한국 영화의 주연은 대개 남성 배우의 몫이었다. 여성 배우는 조연에 그치거나 혹은 남성 배우의 곁에서 주체성 없는 기능적 역할에 그치곤 했다.

이 가운데 배우 문소리가 나섰다. 그는 감독, 각본, 주연을 도맡은 데뷔작 ‘여배우는 오늘도(감독 문소리)’로 평단의 주목을 이끌어냈다. 9월14일 개봉한 ‘여배우는 오늘도’는 중견 여성 배우 문소리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작품.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극중 문소리는 감독 문소리가 만든 허구의 인물이다. 상상력의 산물인 영화에 현실의 문소리와 현실 ‘여배우’의 고뇌를 섞으니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아이러니가 탄생했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충무로의 돌연변이다. 남성 배우만 등장하는 영화가 그득한 가운데 여성 배우가 ‘여배우’의 고민과 현실을 토로하는 작품이 돌연변이가 아니고 뭐겠는가. 문소리는 한 인터뷰에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묻는 분들이 많다. 예고편을 본 여배우들이 모두 자기 이야기 같다고 연락이 오더라”라고 했다. 화려함을 걷는 여배우도 결국 사람이고, 배우는 그들의 직업이다. 문소리는 여성 배우의 고민을 관객과 나눴다. 이제 대중은 여성 배우, 중년 배우 그리고 문소리의 차기작을 기다린다.

9월21일 개봉작 ‘아이 캔 스피크(감독 김현석)’은 노년 여성 배우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영화는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나옥분(나문희)이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 공개 청문회에서 영어 연설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9급 공무원을 연기한 배우 이제훈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결국 ‘아이 캔 스피크’는 배우 나문희의 영화다.

“연기자로서 그 아픔을 사실에 가깝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런 나문희의 고민은 ‘제38회 청룡영화상’ ‘제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을 통해 그를 2017년 여우주연상 배우로 만들었다. 더불어 웃음과 눈물을 안기는 일흔일곱 노배우의 연기는 남성 주류의 한국 영화계에 미세한 틈 하나를 생성했다. 그 틈 사이로 어떤 여성 배우가 자신만의 입지를 꾸릴지는 두고 볼 일이다. 과연 주인공은 누가 될까. 2018년이 기대된다.(사진출처: 영화 ‘시간위의 집’ ‘장산범’ ‘미옥’ ‘채비’ ‘여배우는 오늘도’ ‘아이 캔 스피크’ 공식 스틸컷)

◆2017년 한국영화 종합결산 기획 시리즈◆
[2017한국영화①] 원작의 각색 그리고 상상의 나래 (12.30.)
[2017한국영화②] 반전의 구성 그리고 외적인 화제 (12.31.)
[2017한국영화③] 변화의 북한 그리고 불변의 근현대 (01.01.)
[2017한국영화④] 엄마의 이름 그리고 약진의 여배우 (01.02.)
[2017한국영화⑤] 현재의 숙제 그리고 비극의 흔적 (01.03.)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